이육희 李六喜(?~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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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유관검(柳觀儉)의처. 1801년 10월 22일 동서 신희(申喜), 조카 며느리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조카 유문석(柳文碩, 요한)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옥에 수감되었고, 11월 11일에 평안도 위원으로의 유배가 결정되었다. 이육희와 가족들은 국법에 따라 죽기를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1월 18일 유배 길에 올랐다. 그러나 곧바로 유배형이 취소되고 재차 전주 옥에 갇혔으며, 여기서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 1802년 1월 31일 유중성 · 신희 · 이순이 등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들의 유해는 용지면 제남리 바우백이에 묻혔다가, 1914년 전주 본당의 보두네(Baudounet, 尹沙勿) 신부와 회장들에 의해 전주 본당에 임시로 옮겨졌으며, 4월 19일에 다시 승암산(즉 치명자산)으로 옮겨져 가족 합동 묘로 조성되었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邪學懲義》/ 《純祖實錄》.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