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정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생기는 잉여 가치. 이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사회의 공동선에 대한 관심에 근거한다. 이윤이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하는 문제를 추상적으로 평가하거나, 개인주의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윤 창출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결과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 경제 활동에서 생기는 이윤은 그것이 사회 전체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도에 따라 정당하고 윤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윤 창출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부당하고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평가된다. 즉 이윤은 직접적인 수혜자들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평가된다. 부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만의 개인적인 거래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사회의 검사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세계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윤은 '어떤 특정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생기는 잉여 가치' 이다. 여기서 상품은, 여러 주체들에 의한 복합적인 인간 활동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자연 자원을 캐내서 완제품으로 변형시키는 수단은 자본가들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들은 상품 생산에 소요되는 자금, 즉 자본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본가는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유일한 주체가 아니다. 다른 집단의 사람들, 즉 노동자가 원자재를 채취하거나 공개 시장에서 판매하게 될 제품을 조립하는 일을 한다. 자본가나 노동 자는 생산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며 똑같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보수를 임금의 형태로 받는 반면, 자본가들은 제품 판매에서 생기는 이윤의 형태로 보수를 받는다.
이때 상품에서 이윤을 얻으려면, 자본가는 원자재 비용과 생산 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높게 완제품의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원자재와 노동으로 측정된 상품의 생산비와 최종 시장 가격의 차액이 이른바 잉여 가치이며, 본질적으로 이윤과 같다. 물론 어떤 상품의 잉여 가치가 클수록, 이윤도 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상품의 잉여 가치는 이론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상품에 대한 필요가 클수록 그 상품의 이윤이 크고, 그것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잠재적 이윤의 폭도 크다.
이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이윤을 발생시킨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도에 따라 다르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자본주의적 이윤 생성 방식을 인정한다. 물론 여기에는 그 방식에 내재된 남용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경고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교회 가르침에 드러나 있고 현대의 교황들과 주교들의 문헌들, 특히 〈어머니와 교사〉(1961), 〈민족들의 발전〉(1967), 〈노동하는 인간〉(1981)과 〈사회적 관심〉(1987) 등의 회칙들에 재천명되어 있다. 이 교회의 가르침들에는 이윤을 근본으로 하는 체제에서 사람들이 이윤을 얻기 위해 공동선을 남용할 유혹에 직면해 있음을 지 적한다. 때로 공동선이 개인이나 계급과 관련된 단기적인 이득 추구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은 많은 산업 국가들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경제 활동의 목적은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인간적 발전이지 개인이나 집단의 부의 축적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윤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다. 개인들과 모든 사회 집단들이 인간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이윤을 창출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 행한 현실이다. 그 결과 이윤이 인간적 삶보다 우선하는 왜곡된 체제가 되었다.
생산에 필요한 자원에 지불하는 가격과 이 자원을 채취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을 최소화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자본가들은 종종 자원에 대해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였다. 동시에 이 원자재들을 완제품으로 변형시키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수준에 못미치는 보수가 주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를 대립적인 가치와 역할을 지닌 계급들로 나누어 분노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회칙 〈노동 헌장〉(1891)에서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회칙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상품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공정하고 형평에 맞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생산 과정은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의식하는 데 핵심이 되는 기본적인 인간 활동이다.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공동 사업에 참여한 대등한 동료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은 경제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심오한 소망을 표현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회를 건설한다. 노동을 통해 자기 주변 의 세계를 변혁시킴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누구이며 자연계와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경제 활동에 관한 교회 가르침의 핵심은 경제 체제가 사회 각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과정들은 특정 소수나 다수가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도움을 준다. 경제 생활의 목적은 최대 다수의 시민들에게 최고 수준의 복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은 보다 인간답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다. 자본은 자본가들의 배타적인 재산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의 신탁 재산이기에 가장 믿을 수 있고 공정하게 사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은 보수만을 위해서 하는 노동자 개인만의 활동이 아니다. 노동은 매우 중요한 창조적 과정이다. 노동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며 가정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의 근본 구조들을 만들어낸다(〈노동하는 인간〉 9~10항 참조). 따라서 노동자들은 이 창조적 과정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교황의 이러한 가르침은 이윤 창출이 노동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경제 체제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다.
경제 활동에서 생기는 이윤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모든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는 일종의 공동 재산이다. 생산을 위해 원자재를 제공하는 사람들, 이를 완제품으로 변형시키는 노동자들, 그리고 생산 과정에 자금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보상은 그들이 한 일의 성격을 올바로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느 집단도 다른 집단이나 국가의 이해 관계나 이윤 때문에 생산 과정 또는 원자재나 노동에 대한 보수에서 차지하는 정당한 지위를 거부당하면 안된다. 만일 그렇다면 사회를 계급과 국가별로 분열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의 부(富)인 이윤을 파괴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과 국가들을 이윤이란 명목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교회는 경제 생활에서 이윤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이 결코 공동선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 가톨릭 사회 교리 ; 경제 윤리 ; 공동선)
※ 참고문헌 John Eatwell · Murray Milgate · Peter Newmans eds.,The New Palgrave A Dictionary of Economics, vols. 3, London · Basingstoke, Macmillan Press, 1987/ John Cronin, Social Principles andEconomic Life, Milwaukee, Bruce Publishing Company, 1964/ Pierre Bigo, La Doctrine Sociale de I'Églis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66. 〔韓弘淳〕
이윤 利潤 〔라〕lucrum 〔영〕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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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