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송 李義松(1821~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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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황해도 백천(白川) 출신으로 의업(醫業)에 종사했다. 1857년에 상경(上京)하여 차동(車洞)에 거주하며 정의배(丁義培, 마르코)에게 교리를 배웠고, 1859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교리책과 묵주, 십자패 등을 만들어 보급하였고, 이덕보(李德甫, 마태오)와 함께 황해도의 12개 마을에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1866년 10월 16일 박해를 피해 경기도 시흥 봉천(奉天, 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으로 피신하였다가 아들 이붕익(李鵬翼, 베드로), 아내 김이쁜(金於盆, 마리아)과 함께 체포되어 10월 22일 45세의 나이로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달레 교회사》 下/ 《右捕盜廳謄錄》/ 《日省錄》.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