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언 李日彥(1766~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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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욥. 그의 이름은 태문(太文)으로도 나오나 흔히는 안의(安義) 이씨(李氏)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충청도 홍주(洪州)의 대벌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이점손(李占孫)에게 천주교를 배워 신유박해(辛酉迫害) 이전부터 수계 생활을 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가 경상도 안의로 귀양을 갔었다. 유배지에 이르러 그곳 관헌에게 미움을 받아 다시 옥에 갇혀 10년 동안이나 고생을 하였다. 옥살이하는 동안 그는 하루에 한 끼 또는 이틀에 한 끼밖에 못 먹었으며, 심지어 물도 제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모욕과 학대를 참다운 신앙심으로 달갑게 받았다. 그러자 관헌들의 마음도 차츰 부드러워져 마지막에는 개인 집에서 연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 1815년에 아내가 그곳으로 찾아와 1826년 5월까지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석방되어 전라도 임실군(任實郡) 대판이로 가서 살았다. 그가 대판이라는 마을에 자리를 잡자마자 1827년 정해박해(丁亥迫害)가 일어났다. 그의 아내는 피신하라고 권고하였으나 오히려 그는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가 빨리 오지 않는 것을 한탄하며 뜨거운 눈물을 평평 쏟았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을 때 전주 포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를 체포하였다. 그는 기쁨을 걷잡지 못하며 포졸들을 따라갔다. 여러 날 심한 매질을 당하고서도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관장은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사형 집행은 옥에 갇혀 또다시 13년을 고생한 뒤에야 이루어졌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동안 그의 아이들이 울며 따라오자 그는 그들에게 기쁜 말투로, "내가 여러 해 동안 옥에서 고생하다가 이제야 천국으로 가게 되었으니 슬퍼 말고 나의 행운을 기뻐
하라. 그리고 너희들도 훌륭한 신자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기해박해가 일어난 뒤인 1839년 5월 29일 다른 4명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73세였다. (→ 기해박해 ; 정해박 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pp. 116~119, 421/ 趙珖 역주, 《사학징의》 1,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2001, p. 266/ 《承政院日記》 헌종 5년 4월 12일.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