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利子 〔라〕fenus, foenus 〔영〕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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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나 어느 기관의 신용 또는 화폐를 사용한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 소득의 한 형태이기도 하며 채무 증서를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소득이다.
〔고대와 성서의 규정〕 고대 세계에서 차용인은 원금과 추가 부담금, 즉 이자를 갚도록 되어 있었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일이 허용되었으나, 같은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레위 25, 37 ; 신명 23, 19-20).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에게서 빚을 받아 낼 수 있었으나 유대인들의 빚은 7년마다 탕감해 주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신명 15, 2). 이러한 규정들은 불우한 이웃들을 어떻게 배려하였는지 알게 해준다. 또한 원금은 물론 이자도 갚을 능력이 없어서 때로 자신의 전 재산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채무자의 비참한 사정을 인정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기 자금을 무상으로 나누려는 고상한 이상이 언제나 잘 실현된 것은 아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흉년이 들었는데도 가난한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려 줄 때 높은 이자를 붙임으로써, 빚을 갚지 못해 노예로 팔려 간 유대인들에 대한 원성이 백성들간에 들끓었다. 느헤미야는 돈놀이하는 자들의 잘못을 회중들 앞에서 비난하고, 이들을 설득하여 사람들의 토지와 재물을 돌려주도록 하였다(느헤 5, 1-13).
그리스인들에게도 이자는 일반적인 관행이었고 법으로 규제되었지만, 이에 대해 반대하였다. 플라톤(기원전428/427~348/347)과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 383~322/321)는, 화폐는 본질상 교환의 수단일 뿐 그 자체로 는 "과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빌려 주는 대가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법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 달란트의 비유(마태 25, 14-30 ; 루가 19, 11-27)에서는, 종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돈을 잘 관리해서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게으른 종은 주인으로부터 가차없이 비판을 받는다. "너는 내 은전들을 돈놀이하는 사람들에게 내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이자와 함께 내 돈을 돌려받았을 것이다"(마태 25, 27).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모범으로 현대 기업가들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그는 빚에 허덕이고 있는 이들을 측은히 여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부득이 빚을 지고 있는 이들에게서 이득을 취하려 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그 빚을 기꺼이 전액 탕감해 주어야 한다. 주님의 기도에서 예수는 이들에게 아버지께 어떻게 기도할지를 가르쳤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했듯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소서"(마태 6, 12). 루가 복음사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지상의 재물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이자를 금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간다. 그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줄 것" (루가 6, 35)을 권고했다. 이 구절은 빌려 준 돈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을 전적으로 금지한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 자주 인용된다.
〔교회의 가르침〕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와 이후 여러 공의회의 교부들에 의해서, 또 여러 교황들과 스콜라 전통의 신학자들은 이자에 대해 단죄하였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이 처음에는 성직자들에게 금지되었고, 12세기 이후에는 평신도들에게도 금지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따라 "빌려 준 돈을 사용한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은 본래 옳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지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중세 신학자들은 화폐를 음식이나 설탕과 같은 소비재로 여겼다. 그래서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 소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결정에 따라 편찬된 《로마 교리서》(Catechismus Romanus)에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은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하면서 살인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다. 교회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을 천년 이상 비난해 온 것은 과도하게 높은 이자율 때문에 사람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내세운 논거들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 논거들은 루가 복음 6장 35절을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이었다. 또한 시장 경제가 대두되었음에도 시대에 맞지 않는 화폐관, 즉 화폐는 "과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그리고 오랜 세기 동안 이자를 단죄해 온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16세기 말엽에 이르러 은행가들과 기업가들은 화폐와 신용이 생산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이에 신학자들은 이자가 신법과 자연법을 중대하게 거스른다는 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고 규제된 이자율을 인정할 논거를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은행가들과 기업가들은 화폐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이전의 가르침은 그대로 둔 채, 돈을 빌려 주는 사람이 이자를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뒷받침할 여러 부차적인 이유들을 보여 주었다. 예컨대 모험적 사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투자된 자본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투자의 위험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이것은 유용한 해결 방안으로 인정되었다.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을 금지하는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었지만 점차 완화되었다. 마침내 회칙 〈사십 주년〉(QuadragesimoAnno, 1931. 5. 15)에서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투자는 고용 기회를 늘릴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시대의 필요에 완전히 부합하는 훌륭하고도 중요한 행동으로 간주 되어야 한다" (22항)고 밝혔다. 1983년에 반포된 교회법에서는 교회의 관리자들은 지출하고 남아서 유익하게 투자될 수 있는 돈을 기금의 이익을 위하여 투자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교회법 1284조 6항, 1305조). 사실 차 용 자본의 활용을 통해 사회의 공동선이 증진될 수 있으며, 그것이 없이는 현대 경제 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의 문제점〕 공정한 이자율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오늘날 기본적인 대출 이자율은 수요와 공급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대출에 이용할 수 있는 화폐의 양은 소득자들의 저축 결정과 중앙 은행이 방출한 자금에 따라 결정된다. 즉 화폐에 대한 수요는 기업의 사정과 소비자들의 자금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전반적인 은행 이자율은 중앙 은행의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기에,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가 기관의 하나인 중앙 은행이 공동선을 고려하여 결정한 이자율은 공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험도가 크거나 수금 비용이 많기 때문에 이자율이 높게 책정되는 것 또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금융 회사들의 높은 이자율도 과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회사들은 조사, 부기, 수금 등의 비용이 높기 때문이다. 부정 행위는 할부 판매에서 일어날 수 있다. 첫째, 구매자는 자기가 부담하게 되는 실제 금액에 대해 종종 속는다. 둘째, 구매자가 끊임없이 빚을 지고 있는 처지에 있도록 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들은 이러한 일을 하지 않지만, 신용 위험도가 높거나 교육 수준이 낮은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엄청난 이자율로 거리낌없이 빌려 주고 법정을 자기들의 수금 기관으로 활용한다. 이것보다 더 나쁜 것이 분별 없는 차용인들을 등 쳐먹는 고리 대금업자들이다. 이들은 흔히 불과 며칠 동 안 돈을 빌려 주고 20% 이상의 이자를 받는다. 이것을 연간으로 치면 1,000%가 넘는 이자율이다.
고리 대금에 의한 착취는 가혹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주요 경제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법을 개선하고 신용 조합을 발전시키고 적절한 경제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구제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돈을 관리할 줄 모르거나 소득을 노름이나 음주로 탕진해 버리는 분별 없는 사람들은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도덕 지도와 어쩌면 정신병 치료를 받아야 한다. 법과 사회 기관들은 그러한 경우를 도와 줄 수 없다. 그러나 사회는 피치 못할 사정이나 무지로 인해 대금업자들의 착취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리 대금 ; → 돈)
※ 참고문헌  John Eatwell · Murray Milgate · Peter Newman, ed.,The New Palgrave A Dictionary of Economics, vol. 2, London and Basingstoke, Macmillan Press, 1987/ John Cronin, Social Principles and Economic Life, Milwaukee, Bruce Publishing Company, 1964/ Pierre Bigo, La Doctrine Sociale de l'Églis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66/ Michael Glazier · Monika K. Hellwig, ed., The Modern Catholic Encyclopedia,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1994. 〔韓弘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