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그의 이름은 '종일' 로도 나온다.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으로 성질이 끗끗하고 바르고 관대하여 모든 이가 우러러보고 존경하였다. 20세가 넘어서 입교한 그는 고향에서 자유롭게 천주교를 받들고 실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집안과 재물과 이웃을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산골에 은거하였다. 그 뒤 여러 고장으로 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겪었으나 기도와 성서일기에 늘 꾸준하고 열심이었다. 그의 남다른 인내심과 박애심에 탄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1827년 정해박해(丁亥迫害)가 일어나자 그는 세속의 교제를 피하고 집안 사람들을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다.
경상도 순흥(順興) 고을 곰직이(현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로 추정됨)에 정착하고 있을 때에 포졸들이 그를 잡으러 왔다. 그는 기꺼이 포졸들을 따라가 안동 진영(鎭營)에 출두하였다. 그는 관장 앞에서 천주교가 사교(邪敎)가 아님을 당당하게 변호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날 동안 혹독한 매질을 당하였지만, 그는 모든 형벌을 끗끗하게 이겨냈다. 그 후 그는 대구 감영(監營)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세 차례나 더 받았지만 그의 신앙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은 그는 박사의(朴士義, 안드레아), 김사건(金思建,안드레아) 등과 함께 13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리다가 기해박해가 일어난 뒤인 1839년 5월 26일 그들과 더불어 참수(斬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 기해박해 ; 정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pp. 175~177, 420/ 《承政院日記》헌종 5년 4월 12일/ 李晚采 編,《闢衛編》 〈丁亥三道治邪〉, 열화당,1971,p. 390/ 金貞淑, 〈대구 순교자들에 관한 사료 분석〉, 《대구 순교사 연구》, 천주교 대구대교구 시복 시성 역사위원회, 2001, pp.67~68. 〔孫淑景〕
이재행 李在行(1775~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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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