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알렉시오. 1919년 4월 황해도 안악군 문산면 원성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태환(李泰煥, 시메온)은 전주(全州) 이씨로 병인박해(丙寅迫害)때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한 의안대군(宜安大君)의 17대 손인 의송(義松, 프란치스코), 붕익 (鵬翼, 프란치스코, 의송의 아들), 천조(天祖, 바오로, 의송의 손자), 김어분(金於忿, 마리아, 의송의 아내) 등의 후손이다. 그의 어머니 임용환(林用煥,요안나)의 집안도 성소자가 많이 난 가정이었다. 어려서부터 종교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이재호는 평양으로 이사한 뒤 처음에는 평양 역 앞 오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선교리 양조장 옆으로 이사하면서 장차 신학교에갈 준비를 하기 위해 성모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 이후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 과정)를 거쳐 덕원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으며, 1946년 3월 1일 평양 대신리 본당에서 교구장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곧바로 평양 관후리 본당보좌로 부임하였다가, 1947년 10월 서포 본당 8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본당 사목과 함께 서포에 있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지도 신부도 겸하였다. 1948년 10월 기림리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당시 공산당의 득세로 신앙의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 속에서 본당의 발전을 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전임 신부인 조문국(趙文國, 바오로) 신부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확보된 900여 명의 신자들에 대한 영신 생활의 지도는 물론 전교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후 1949년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정치 보위부원들의 감시는 더욱 철저해지고 마침내 12월 7일 새벽 5시 30분경 정치 보위
부원들에게 연행되어 간 뒤 행방 불명되었다. (→ 기림리 본당)
※ 참고문헌 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천주교 평양교구사》,분도출판사, 1981/ 《북녘 땅의 순교자들》, 가톨릭출판사. 〔白秉根〕
이재호 李載虎(1919~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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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