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국 李鍾國(1874~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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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874년 4월 3일에 태어나, 1884년 7월 10일 페낭에 도착하여 신학교에 들어갔다. 1890년 11월 25일 페낭을 출 발하여,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1899년 10월 1일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직후인 10월 9일 갓등이(현 왕림) 성당의 알릭스(J. Alix, 韓若瑟) 신부가 본국에 가서 가을 공소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임시로 갓등이로 가서 가을 공소를 주기도 하였다. 1901년 5월 봉산군 산수면 용현리 검수동에 신설된 검수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당시 2개에 불과하던 봉산 군내 공소를 11개로 증가시키는 사목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신학교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종국 신부는 결국 병이 악화되어 1905년 6월 3일 향년 31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 왕림 본당)
※ 참고문헌  《뮈텔 주교 일기》 Ⅱ /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최석우,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교구 연보》 I (1878~1903) · Ⅱ (1904~1938), 명동 천주교회/ 왕림 본당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왕림(갓등이) 교회―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집》 1, 천주교 왕림 교회.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