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85년 9월 28일 충남 서산군 음악면 상홍리 속칭 가재 마을에서 아버지 이 안드레아와 어머니 이 마리아 사이에 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그곳의 공소 회장인진 야고보로부터 대세를 받았으며, 충청도 홍주에 근거를 두고 전교 활동을 하던 두세(Doucet, 丁加
彌) 신부로부터 보례를 받았고, 양촌(현 구합덕) 본당의 퀴를리에(L. Curlier, 南一良) 신부로부터 견진을 받았다. 1899년 9월 22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1913년 5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고, 공석 중이던 옥천 본당 2대 주임으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새 신부로서 의욕적인 사목 활동을 벌였으나 당시 옥천 공소 회장이던 강 마태오 회장과의 갈등과 공석 중인 공주 본당의 사목까지 겸임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어, 1914년 4월 비룡으로 거처를 옮겼고, 같은 해 11월 12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로부터 비룡 본당의 창설을 승인받았다. 비룡 본당 부임시 신자들의 화합과 전교를 목적으로 체육 대회를 성대하게 치르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으나, 1916년 여름 대홍수로 인해 비룡 본당이 큰 피해를 입게 되자 비룡 지역의 냉담자수가 급증하고 신자수 역시 감소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종순 신부는 비룡 본당이 항구적으로 본당을 유지하기가 곤란하다고 보고 대전(현목동) 본당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1919년 초 대지 매입에 착수하여 9,220평의 성당 부지를 마련한 후, 같은 해 11월 12일 비룡 본당을 폐쇄하고 새로 매입한 성당 부지 내에 있는 민가로 거처를 옮겨 대전 본당을 창설하였다. 성당 신축 공사는 1920년 봄부터 시작하여 그 해 5월 이전에 완공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이후 1924년 6월 강원도의 평강 본당으로 전임하여 9년 간 사목 활동을 한 후 1933년 5월 황해도 장연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장연 본당에서 1935년 1월까지 약 2년 간 황해도 감목 대리인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를 도와 가톨릭 여자 청년회를 조직하였고 성체 거동 행사를 주도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1935년 11월 건강이 악화되어 신병을 요양하는 데 적합한 경기도 행주(현 수색) 본당으로 전임되었으나, 휴양 중 그 해 3월 30일 향년 50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 옥천본당 ; 장연 본당)
※ 참고문헌 《뮈텔 주교 일기》 Ⅳ/ 옥천 본당사 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감수, 《옥천 본당사》 上, 천주교 청주교구 옥천교회, 1991/ 한국교회사연구소, 《황해도 천주교회사》, 1984.〔白秉根〕
이종순 李鍾順(1885~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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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