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티아. 1895년 1월 12일 전북 완산군 운선면 승치리에서 태어났다. 1911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6월 소학과를 수료한 후, 9월 20일 그 해 가을에 개교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중등과에 입학하여 1917년 9월 대학과로 진학, 1922년 9월 졸업한 뒤 대구 계산동 주교좌 본당에서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다음날인 9월 24일 신설된 상주 퇴강리(1969년 폐쇄)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그 해 사무실을 건립하고 1924년에 성당을 지었으며, 1930년 교회 사업 보조와 가톨릭 운동 실천을 목적으로 청년회를 조직하였다. 본당에서 9년 동안 정열을 쏟아 사목하던 중 병환을 얻게 되었고, 신병 치료차 1931년 11월 대구 날뫼(현 비산동) 본당 4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당시 날뫼 본당은 계산동 본당 관할 공소인 상태였으나 이종필 신부가 부임함과 동시에 다시 본당으로 승격하였는데 70평의 성당을 마련하는 등 제대로 설비를 갖추었다. 그 후 경남 마산(현 완월동) 본당 주임과 진주 장재동 본당 3대 주임을 거쳐 1946년 11월 경남 진영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본당 최초의 신심 단체인 성모회를 조직하였다. 1948년 8월 대구교구 부주교 겸 남산동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부임하였지만 숙질(宿疾)인 만성 방광염으로 인하여 1953년 4월 은퇴하였다. 이후 교구에서 경영하는 해성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1954년 7월 4일 향년 59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교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비산동 본당 ; 진영 본당 ; 퇴강 본당)
※ 참고문헌 《남산 본당 70년사》, 천주교 대구대교구 남산 교회, 1999/ 《가톨릭 사전》/ 《진영 본당 50년사》(1935~1985), 천주교 마산 교구 진영 교회, 1985/ 《서문동 본당 50년사》, 천주교 서문동 교회,1987/ 《드망즈 주교 일기》/ 《대구대교구 총람》. 〔편찬실〕
이종필 李鍾弼(1895~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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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남산동 본당 주임 시기 첫영성체 어린이들과 함께한 이종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