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사목위원회 移住司牧委員會 〔영〕Migration Pastoral Com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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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24일 주교 회의 '해외 교포 사목부' 로 설립하여 1981년 10월 16일 주교 회의 '이주 사목위원회' 로 개칭하였다. 위원장, 총무, 해외 교포 사목부, 관광 사목부, 국내 외국인 사목부, 해양 사목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 제2장 18항 특수 환경의 사목(1965. 10. 28)과 교황청 주교성 〈이민 사목에 관한 훈령〉(1969. 8. 22) 및 교황청 이주 사목위원회 〈이민에 관한 사목적 배려〉(1978.5.4), 각국 주교 회의에 보내는 서한 〈교회와 유동인구〉(1978) 등이 설립의 바탕이 되었다.
〔설립 목적〕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마태 9, 37-38)는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하여 한국 교회는 급격한 경제 성장과 교통 수단의 발달로 국내는 물론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주 사목의 문제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해졌으므로 그 중요성을 깨달아 공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고자 설립하였다.
〔주요 업무〕 이주 사목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주요 국제 이주 사목 관련 회의 참석, 교황청 이주 사목 평의회 및 각국 이주 사목위원회와 업무 협조, 해외 한인 공동체 교포 사목자 선임과 파견 업무, 해외 한인 공동체 설립과 철수에 관한 업무, 해외 한인 공동체가 있는 현지 교구장 주교와 한국의 소속 교구장 사이의 연락 창구 역할, 해외 한인 교회 사목 방문, 부활과 성탄 메시지 발송, 매월 사목 자료 책자 발송, 해외신자 수첩 제작 발송(연 1회)과 회보 제작 발송(연 4회), 해외 한인 천주교회 현황 및 통계 작성과 자료집 발간, 신앙 도서 발송(연 4회), 교납금 및 후원회비 접수와 교포 사목 후원회 회원 관리, 해외 한인 공동체 요구에 따라 피정 지도 등 행사 주관, 해외 한인 공동체와 공문 및 서신 왕래 · 신앙 서적 안내 · 신청 도서 발송, 해외 한인공동체 달력 수주 · 발송, 해외 한인 공동체에서 보낸 자선 기금 국내 기관에 전달, 사무국 방문, 해외 한인 공동체 교우들과의 상담 등이다.
〔활 동〕 한국의 산업을 공업화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농촌 인구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고 이런 이향 신자들은 본당과의 결속이 끊어지면서 신앙 생활 또한 소홀히 하게 되었다. 이향 신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던 텔리에(J.O. Tellier, 태) 신부는 1968년부터 이들과 서신 왕래를 시작, 1969년에는 90여 명과 연락을 가지면서 이향 신자 사목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2년 주 교회의에서 이향 신자들에 대한 사목의 긴급성을 인정하고 주교회의 산하에 이향 신자 사목부를 설치하였다. 한편 해외 교포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해외에 많은 한인 교회들이 설립되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간 교포 사목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해외 교포 사목부가 1971년 6월에 신설되어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주교를 그 담당 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8년 박정일(朴正一, 미카엘) 주교가 그 후임으로 임명되면서부터로 4월 7일 주교 회의 특별 사목부로 '해외 교포 사목부' 를 정식 발족하였다. 해외 교포 사목부는 총무 신부인 정은규(鄭銀圭, 시몬) 신부가 수녀 파견을 요청, 1981년 5월 1일 남 벨라뎃다 수녀가 부임하면서 해외 교포 사목 후원회도 창립되었다. 1981년 10월 16일 주교 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이향 신자 사목부, 해외 교포 사목부, 국내 외국인 사목부, 해양 사목부 및 관광 사목부를 통합하여 이주 사목위원회라 개칭하고, 위원장에 박정일 주교, 총무에 정은규 신부를 임명하였다. 1983년 8월 9일 박정일 주교는 북미주 교포 사목 한인 사제협의회를 결성하였고, 11월 23일 주교 회의에서 해외 교포 사목부의 제도적 보완을 위해 북미주 지역 교포 사목부 대표로 박창득(朴昌得,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임명하였다. 1987년 11월 19일 2대 위원장에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가 부임하였고, 1988년 3월 24일 총무 신부로 우제국(禹濟國, 필립보) 신부가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14일 제5차 해외 교포 사목위원회 정기 총회를 열어 회칙을 개정하였으며, 《교포 사목부 10년사》를 발간하였다. 1989년 5월 3일 미국 주교 회의와 해외 교포 사목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1990년 11월 3대 위원장에 정명조(鄭明祚,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선임되었고, 8월 21일 총무에 백남익(白南翼, 디오니시오) 신부가 임명되었다. 1992년 5월 18일 백남익 신부는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가톨릭 이민위 원회 총회' 에 참석하여 운영 위원에 선임되었다. 1993년 4월 1일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 교구 이주 사목위원장 멕케릭 대주교가 내한하여, 미국 내 한인 교회를 위한 모든 사목적 협조 사안은 양국 주교 회의 이주 사목위원회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합의하였다. 1995년 2월 20일 정명조 주교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교황청 이주 사목평의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1996년 10월 14일 4대 위원장에 김지석(金智錫, 야고보) 주교가 선임되었고, 1997년 5월 1일 총무에 정병조(鄭柄兆, 베드로) 신부가 임명되었다.
1998년 10월 1일 교황청 이주 사목 평의회가 편찬한관광 사목 총 지침서 《지상의 나그네》(Peregrinans in te-rra, 1969. 4. 30)와 각국 주교 회의에 보내는 서한 〈교회와 유동 인구〉(1978), 〈대희년의 순례〉(1998. 4. 25), 교황 성하의 〈제2차 세계 관광 사목 대회 연설〉(1979. 11.10) 등을 번역 · 발간하였으며, 11월 30일 〈해외 한인 천주 교회 통계〉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2000년 2월 29일 관광 사목 자료 《골고타에서 새남터까지―하느님 나라로 가는 순례》를 간행하고, 8월 15일부터 20일까지 제15차 세계 청년 대회 기간 중 주교 회의 이주 사목위원회와 북미주 지역 한인 사제 협의회 후원의 북미주 순례단과 한국 참가단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또한 이주 사목의 중요성을 신자들에게 일깨우고 기도를 권장하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주교 회의 2000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해마다 사회 복지 주일 전 주일을 '이민의 날'로 정하였다.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