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 순교자. 세례명은 마르티노. 본관은 전주. 경기도 여주(驪州)의 소론(少論)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797년 사촌인 원경도(元景道, 요한)와 함께 김건순(金健淳, 요사팟)의 전교로 입교하였으며, 신앙 생활을 독실히 하는 가운데 신주를 버리고 제사도 폐지하였다.
1800년 4월 이중배는 원경도와 함께 정종호(鄭宗浩)의 집에서 부활 대축일을 보내고 있었다. 정종호와 교우들은 길가에서 '알렐루야' 와 '부활 삼종경' 을 외우고는 바가지를 두드려 가며 기도문을 노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여주 관장은 곧바로 포졸들을 보내 이들을 체포했고, 관아로 압송하여 무수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중배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냈으며, 결국 10월에 경기 감영으로 이송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중배는 약간의 의술(醫術)이 있었는데, 옥에서 의술을 발휘하여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이후 형 집행을 위해 다시 여주로 보내진 이중배는 1801년 4월 25일 원경도, 최창주(崔昌周, 마르첼리노)등과 함께 여주 관아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아내 조희(趙喜)는 남편에게 천주교를 배운죄로 울산(蔚山)으로 유배되었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帛書》/ 《推案及鞫案》/ 柳洪烈,《韓國天主教會史》 上, 가톨릭출판사, 1989. 〔孫淑景〕
이중배 李中培(?~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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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옥중에서 병자들을 고쳐 준 이중배 마르티노(탁회성 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