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이천시 중리동 178-5 소재. 1941년 7월 4일 남곡리(현 양지)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관할 구역은 이천시 창전동, 관고동, 중리동, 진리동, 신둔면, 마장면, 호법면 전 지역과 증포동, 갈산동 일부 지역. 〔교 세〕1941년 812명, 1944년 1,072명, 1983년 1,527명, 1989년 3,846명, 1995년 5,878명. 〔역대 신부〕 초대 박동헌(朴東憲) 마르코(1941. 7~1948. 2), 2대 장금구(莊金龜) 요한 그리소스토모(1948. 2~1948. 8), 3대 이계선(李啓先) 레오(1948. 8~1954. 1), 4대 김유룡(金裕龍) 필립보(1954. 1~1956. 2), 5대 박지환(朴址煥) 요한(1956.2~1961. 4), 6대 정욱진(丁旭鎮) 토마스(1961. 4~ 8), 7대 신원식(申元植) 루가(1961. 8~1964. 7), 8대 장근실(張根實) 비도(1964. 7~1967. 1), 9대 하한주(河漢珠) 요셉(1967. 1~1973. 5) , 10대 백명기(白明基) 마르코(1973.5~1981. 6), 11대 윤석원(尹錫元) 요셉(1981. 6~1985. 2) 12대 배영무(裵英武) 라우렌시오(1985. 2~1990. 11), 13대 김병렬(金炳烈) 보니파시오(1990. 11~1997. 2) 14대 윤민구(尹敏求) 도미니코(1997. 2~1998. 1), 15대 유진선(柳眞善) 레오(1998. 1~현재).
〔본당 설립과 변모〕 남곡리 본당의 관할하에 있던 이천 군내에는 1922년 당시 공소가 5개였으며 신자수가 50명 이상인 곳은 단내, 다래촌, 밤골이었다. 이천 읍내는 그때까지 신앙 공동체(공소)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미개척지였는데 남곡리 본당의 박동헌 신부는 1938년 11월에 이천읍에 와서 첫 공소를 열고, 가을 판공을 실시하였다. 이 공소 모임을 계기로 남곡리 본당은 즉시 이천 본당 설립 준비를 착수하였고, 그 해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이천 성당 기성회' 를 결성하였다. 신자수는 많지 않았으나, 본당 창설 준비는 예상외로 빨리 진전되어 공소가 설정된 지 2년 만인 1940년 12월에 서울교구청에서 부담한 자금으로 중리 241-1번지(현 성당 위치) 소재 민가(함석 도당 집, 대지 740평)를 매입하여, 성당으로 사용할 건물을 마련하였다. 1941년 7월 박동헌 신부가 남곡리 본당을 떠나 이천읍에 정식 부임하고, 이천읍 공소는 남곡리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43년 8월 29일 신축 성당의 봉헌식을 가졌으며 1948년 4월에 성당을 증축하였다. 일제 말기에 침체되었던 각종 평신도 사도직 운동이 광복 이후 재개되기 시작했는데, 이천 본당은 일찍이 1946년 6월 남녀 가톨릭 청년회를 결성하고, 이 청년회를 중심으로 본당의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였다. 교세의 확장으로 1950년 4월 여주 본당이 분리되었다. 6 · 25 전쟁 중에 이천 본당은 폭격으로 전소되었는데, 당시 주임이었던 이계선 신부는 성당 마당에 임시로 천막을 가설하고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다 1952년 읍내 창천리에 자리하고 있던 일제시대의 신사(神社) 터(약 3천 평)를 교구청 지원으로 사들여 성당을 건축하고 이전하였다. 5대 주임 박지환 신부는 본래의 성당 터인 중리에 다시 성당을 건립하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현대식 성당 건물을 건축하기에는 대지가 너무 협소하여 우여곡절 끝에 인접 대지를 불하받을 수 있었다. 성당 신축은 공사비의 부족으로 착공 3년 만인 1959년에 이루어졌다. 1958년 7월에는 경안(현 광주) 본당을 분리하였다. 6대 주임 정욱진 신부는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10대 주임 백명기 신부 재임기인 1980년 11월에 새 사제관이 완공되었다. 또 1981년 3월에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여 이천 지역 사회의 명문 유치원으로 발전시켰다. 11대 주임 윤석원 신부가 부임한 후, 비로소 재정적인 자립을 이루었다. 12대 주임 배영무 신부는 전교의 일환으로 '외짝 교우' 를 해소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1987년 9월부터는 이천 성지 개발위원회가 결성되어, 이천군 모가면 어농 2리에 윤유일(尹有一, 바오로, 1795년 순교) 등 파평 윤씨(坡平尹氏) 순교자 일가의 묘지를 조성하였다. 또 이천군 호법면 단천리(단내)에 정은(鄭激, 바오로, 1866년 순교)과 이천 출신 순교 성인들인 이호영(李鎬永, 베드로, 1838년 순교), 이호영의 누이 이소사(李召史, 아가타, 1839년 순교), 그리고 이문우(李文祐, 요한, 1840년 순교)의 순교 기념비 건립을 포함한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1989년 6월에 윤유일과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의 동상을 어농리 성지에 건립하였으며, 1989년 성당 증축 공사가 착공되었으나, 신축으로 계획이 수정되어 공사가 진행되었다. 13대 주임 김병렬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 신축 공사를 마무리 짓고, 1991년 12월 준공 검사를 필하였으며 공사비도 처리하였다. 15대 유진선 신부는 성당 및 지하실, 영안실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1993년 2월 가남 본당, 1998년 1월 아미동 본당, 2000년 1월 모전동 본당이 이천 본당으로부터 분리되었다. (→ 박동헌 ; 박지환; 수원교구 ; 양지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金志煥〕
이천 본당
利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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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