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李春根(1915~ 1950?)

글자 크기
9
1 / 2
베네딕도회 수사 신부. 세례명은 라우렌시오. 본관은 전주. 1915년 3월 8일 경기도 양주군 남면 신암리에서 아버지 이공명(李公明, 바오로)과 어머니 홍 베로니카의 3남 4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 학교 4년 과정을 마친 뒤 예수 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6월 24일 명동 성당에서 라리보(A. Larribeau,元亨根)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황해도 사리원(沙里院) 본당의 보좌로 1년 간 사목한 후, 1940년 7월에 경기도 장호원(현 감곡) 본당으로 전임되어 3년 간사목하였다. 이 신부는 영신 생활에 매진하기 위해서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있는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입회를 신청하였고 허락을 받아 냈다. 그는 수사 신부가 되면서 자신의 세례명인 스테파노를 수도 본명인 라우렌시오로 바꾸었으며, 수련을 마치고 1945년 8월 15일에 종신 허원을 한 뒤 덕원 신학교 감독 신부 겸 교수가 되었다.
1948년 10월 평양교구에서 공산당의 박해로 사제가 부족하여 베네덕도회에 지원을 요청해 오자, 이춘근 신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지도 신부 겸 서포 본당 9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1949년 1월부터 북한 정권의 교회에 대한 탄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그 해 5월 9일에 원산교구장 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독일인 성직자, 수도자 전원, 한국인 성직자 4명이 체포되고, 수도원과 신학교가 해산되었으며 모든 교회 재산도 몰수당하였다. 서포 수녀원 지도 신부로 다른 신부들보다도 비교적 나중까지 사목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춘근 신부는 1950년 5월 14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공산 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되고 수녀원 건물 일체가 몰수되자 서포 본당 소속의 순안(順安) 공소로 거처를 옮겼지만, 그 해 6월 25일 정치 보위부원들에게 연행되어 행방 불명되었다.
※ 참고문헌  평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 《북녘 땅의 순교자들》, 가톨릭출판사, 1999.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