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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성 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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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성 메나.

벽화나 모자이크 · 목판 등에 예수 그리스도 · 성모 마리아 · 성인 · 천사 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들을 그린 그림. "성화" 또는 "목판 성화", "성상화" (聖像畵)라고도 한다. 본래 이콘은 단순한 형상 · 모습(image) · 그림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동방 교회 전통을 통해 점차 목판 위에 그린 성화로 국한되었다. 이콘은 초기 교회에서부터 전례와 수도 봉헌과 신앙 생활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콘은 특히 동방 교회에서 그 전통을 이어왔다. 동방 교회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하는 전례를 보충하는 교리적 가르침을 이콘을 통해서 하였다. 동방 교회의 성당에는 제단과 신자석 사이를 가리는 성화벽(聖畵壁, icono-stasis)에 성서에서 나오는 장면들과 교회의 전례와 성사, 유명한 성인들의 생애와 삶을 묘사한 성화를 장식해 글을 모르는 신자들과 예비자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다. 그로 인해 이콘은 단순히 교회 예술의 역할을 넘어 교리와 신학적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신앙과 영성, 특히 기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이콘은 성서적 · 교부적 · 역사 신학적 · 전례적인 전승 안에서 보존되어 오는 유산이다. 또한 이콘 안에서 교회의 교의신학적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성서적 배경]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구약성서와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의 이콘, 하느님의 완전한 모습으로 소개하는 신약성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그리는 이콘의 기본 요소를 이룬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 26-27). 하느님은 인간을 물건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고 자신의 신적 생활을 나누고자 하셨다. 그래서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창조주의 무한성을 반영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 세상 생활을 초월하는 운명을 약속받아 영원한 생명이라는 깊은 실재를 대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 그분을 반영하고 대표한다고 해도 결코 하느님일 수는 없으므로 인간의 모습은 불완전하게 남는다.
신약성서는 신인(神人)인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의 이콘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삼위 일체의 제2위인 성자가 신성을 지니면서도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된 것이 이콘 영성 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볼 수 없는 실재인 하느님이 육화를 통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는 실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입니다"(요한 12, 45)라고 하였고,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요한 14, 9)라고 하였다. 성부 하느님의 완전한 반영인 예수에 대하여 바오로는 "이 아들은 그분 영광의 광체요 그분 본체의 표상" (히브 1. 3)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조물의 맏이" (골로 1, 15)라고 하였다.
구약 시대에 하느님은 말씀과 행동으로 직접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고 성조들에게 역사하였으며,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여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신 적이 없으며, 당신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구약성서에는 어떤 종류와 형태로든 인간의 손으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는 명령이 언급되어 있다. 실상 십계명에도 이런 언급이 있다(출애 20, 4 : 25, 15). "주님께서 호렙의 불길 속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 너희는 아무 모습도 보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희는·············· 모습을 본떠 새긴 우상을 모시어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신명 4, 15-16). 그런데도, 하느님은 구원을 상징적으로 가리켜 주는 형상 들인 구리뱀(민수 21, 4-9 ; 지혜 16, 5-14 : 요한 3, 14-15), 계약의 궤와 케루빔(출애 25, 10-22 ; 1열왕 6, 23-28 : 7. 23-26) 등을 만들도록 명령하거나 허락하셨다. 그리고 진정한 형상을 세상이 받아들일 때가 되었을 무렵 생명 자체인 분이 여인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났다(갈라 4, 4).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형상 금지가 신약의 형상의 하느님으로 완성되었다. 이 신비에 대해 테오도로(Theodonus de Mopsueste,350?~428)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볼 수 없는 하느님을 그리는 것은 분명히 금지되었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인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셨을 때 우리는 그분의 인간적 측면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성부와 같은 형상을 지니신 분이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양비질을 겸비한 몸의 형상을 취하시어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셨으니 눈에 보이는 그분의 초상을 그릴 수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려는 원의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 누구나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함은 당연하다."
[역 사] 그리스에서는 철학자들이 신의 상들을 만드는 문화에 대해 비판하였다. 사실 이콘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에이콘" (eikov)은 어원적으로 '모습 · 모양 또는 '우상' 을 의미하는 "에이돌론"(dool.ov)과 매우 가깝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 신들은 물론 집권자들의 초상들을 만들어 공경하였다. 이를 로마 제국 역시 모방하였다. 황제들의 초상 앞에서 취하는 행동은 황제 앞에서 취하는 행동과 동일한 것이었다. 또한, 로마 시대에 초상화가 유행하였다. 로마의 유대인들도 율법에 따라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엄격히 금했지만, 인간의 초상을 그리는 것은 반대하지 않았다. 이콘이 그리스 · 로마의 외적인 영향은 받았지만, 이콘의 내적 정신은 외적 영향과 다르다.
이콘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수많은 초상들과 미이라의 얼굴들 위에 놓여지는 헬레니즘 양식의 생전 모습의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이콘은 시나이 산에서 발견된 6세기 이전 것으로 여겨지는 성인들의 그림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적용된 기술은 불에 달구어 착색한 납화(蠟畫) 기법이다. 즉 용해된 왁스와 섞인 색깔로 그려졌다. 그중 몇 가지는 비잔틴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고, 다른 일부는 러시아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이집트식 초상과 성인들의 이콘을 비교할 때 전자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장례 초상들로 가능한 한 신앙적인 면에서 죽음의 미래들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 후자의 이콘들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모습이 불사불멸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성인과 순교자들의 이콘 그리기(ico-nography)는 동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동방 교회의 것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초대 교회 : 교회의 매우 이른 시기부터 복음 선포와 함께 여러 가지 상징들이 사용되었다. 처음에 그리스도는 목자, 양, 물고기 등으로 상징화되었다. 상징적인 것들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박해 시대의 카타콤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예수의 이콘을 놓고 기도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bius Caesariensis, 260/265?~339)는 자신의 저서 《교회사》에서 "나는 우리 시대까지 보존되어 온 구세주의 초상화와 베드로와 바오로의 초상화를 매우 많이 보았다" 고 하였다. 또한, '하혈하는 여인을 고치시는 예수 의 동상이 가이사리아의 필립비에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십계명과 그리스도론에 다른 신학적 이유로 이콘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었던 에우세비오의 이 증언은 교회가 초기부터 이콘을 받아들였음을 알려준다. 한편 신자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들 사이에서 살았으므로 그들로부터 물들지 않기 위해서 이콘 공경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콘에 대한 반대가 있었지만, 이콘의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매우 영적인 이콘들이 그려졌다고 여겨지나, 남아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1~2세기경의 것으로 여겨지는 카타콤바의 천장과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신구약 성서의 주제들을 내용으로 한 전례와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해 박해 시대 당시에 처한 여러 인생 문제에 해답을 주고자 했음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순수한 그리스 풍의 헬레니즘을 지닌 고전 알렉산드리아 미술이 교회 미술 안에 받아들여졌다.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의 이교 미술이 그리스도교 교리에 흡수된 것이다. 더불어 동로마 제국의 예식과 관습도 수용되었다. 황제들에 대한 숭배는 그리스도에 대한 흠승 예식으로 바뀌었다. 세속적인 황제 예술은 그리스도교 예술 형성의 모델이 되었다. 그래서 왕 중의 왕인 그리스도는 왕좌에 앉은 황제를 모델로 그려졌고, 구세주의 어머니는 황후로 묘사되었다. 그리스도와 순교자들 · 성인들 · 성서에 언급된 중요 사건의 장면들이 그려졌으며, 이것이 후에 신자들의 경배 대상이 되었다.
이콘의 발전에 있어서 교부들 특히 바실리오(BasiliusMagnus, 329~379) , 다마스커스의 요한(Joannes Damascenus,650?~754), 테오도로 등의 신학과 영성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콘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그리스도교 문화들의 총체적 통합의 산물이다. 로마 예술은 비잔틴의 영향을 받았으며, 슬라브 예술은 비잔틴의 도움 없이 조화로운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이콘 예술의 정신과 기술은 이렇게 제국의 국경들을 넘어섰다.
교부 시대 : 교부들은 이콘(모상)과 관련된 주제를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리스 사상에서 나온 풍부한 자료들의 도움을 입었음을 강조한다. 교부들은 하느님의 창조 계획에 의해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의 모상(이콘)을 닮도록 창조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이콘을 깨닫도록 부름을 받았는데,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이콘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이콘을 닮는다는 것이 인간이 성취해야 할 역동적인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아담이 지닌 하느님의 모상은 더럽혀졌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재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진정한 하느님의 이콘인 그리스도가 우리를 인도하여 아담이 창조될 때 지녔던 하느님의 이콘으로 안내한다. 지혜서에서도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 자체이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지혜2, 23).
니사의 그레고리오(Gregonius Nyssenus, 335?~395?)는 하느님은 항상 창조된 인간의 원형으로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는 진정한 원형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필립 2, 6) 존재하는 '하느님의 모상이다' (2골로 4,4). 이에 관한 모든 전통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존재하며, 하느님께서 중재하심으로써 이루어진 하느님의 모상이다. 따라서 인간은 모상으로부터 나온 또 하나의 모상이다. 그러나 모상이 보이는 것인가 안 보이는 것인가는 견해에 따라 다소 차이 있는 해석을 낳았다. 이레네오(Ireneus Lugdunensis, 130/140?~202)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될 때 고려되었던 원형이며, 그분은 보이는 하느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처럼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교부들(Athanasius, Origenes 등)은 자신들이 하느님에 대해 적용했던, 보이지 않는 모상이라는 필로(Philon Judaeus, 기원전 15/10~서기 45/50)의 개념을 채택했다. 보이지 않는 성질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구원론에 대한 논쟁 후에 더욱 명확해졌다는 사실을 축소할 위험성이 있다. 그 결과 증거자 막시모(Maximus, 580~662)의 균형 잡힌 통합이 이루어졌다. 더구나 에브도키모프(Paul Evdokimov)의 최근 저서들에도 나타나고 있듯이, 사람은 구세주가 육화할 때 취했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순수하게 '영적' 인 것이 구체화되고 '생명을 주는' 힘을 통해 모든 만물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성화상 논쟁 시기 : 초기 교회 시대부터 성인과 순교자들의 이콘이 발견되고 있다. 후기 성인들 초상에서는 원래의 모델과 유사하게 보존하려고 시도하였으며, 이것이 초상화의 기초가 되었다. 성인 전기작가들은 성인 무덤에 있거나 성인 이름으로 봉헌된 수도원에 있는 이콘이 성인 당사자의 것인가를 증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성인과 순교자들을 초상으로 그렸던 이콘은 기원상 예배 대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6세기에 이콘 초상이 예배의 초상으로 바뀌었다. 또한, 성화상 파괴 논쟁 시기에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무 이콘들이 동방 교회의 성물로 공경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상적인 의미로 증대되고, 마침내 성화상 파괴 논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복음서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이콘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신앙 생활의 활력소였다. 그런데, 이콘의 교육적 가치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층 남용되었다. 이콘은 심지어 세례성사나 수도자의 삭발례 때 대부나 대모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어떤 사제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콘에 있는 것처럼 이콘의 색깔을 떠내어 성물과 섞어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이콘 앞에서 전례를 집전하지 않고 이콘을 제대삼아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였다. 이를 본 신자들은 이콘이 표상하는 성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이콘화 자체를 공경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착각을 하였다.
그로 인해 동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3세(717~741)는 726년에 성화상 공경 금지에 대한 칙령을 반포하였다. 이후 많은 성화상들이 훼손되거나 파괴되었으며, 성화상을 공경하는 이들은 박해를 받았다. 또한, 이콘을 옹호하는 수도자들을 죽이고 수도원을 박해하였다. 그런데 이콘 옹호자로 황제의 어머니이자 섭정이었던 이레네(ke-ne, 752?~803)에 의해 성화상 논쟁은 잠시 중단되었다. 제 2차 니체아 공의회(786)는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였다. "하느님의 모상을 공경함에 있어서 하느님이 금하신 나무나 색깔 등 재료를 숭배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성화에 사용된 물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흠승한다. 이미지를 공경한다 함은 이콘에 그려진 분을 공경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43년 성화상 논쟁은 진정되었다. 그런데, 서방 교회에서의 성화상 파괴는 복잡한 양식을 띠고 전개되었다. 교황 하드리아노 1세(772~795)는 제2차 니체아 공의회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공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카를 대제(768~814)와 신학자들은 공의회의 결정을 엉뚱하게 번역하였으며, 790년 초에 이 결정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인들"이 성화상 공경을 "찬양"하는 것을 비난하며 이단시하였다. 이러한 비난과 거부는 카를 대제의 문서(Libri Carolini)에 잘 나타나 있으며, 794년의 프랑크푸르트 교회 회의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교황 하드리아노 1세와 레오 3세(795~816)는 제2차 니체아 공의회의 결정에 거부하는 카를 대제에게 대항하여 동방 교회를 옹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롤링거 왕조의 신학자들은 9세기까지 동방의 관습을 계속 불신하였다. 그러나 점차 성상 공경이 보편화되었고, 이외에도 프레스코 벽화나 모자이크화, 조상(彫像) 등이 문맹자들을 위해 교회 내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성화상에 대한 공경을 거부하는 경향은 종교 개혁 시대에 다시 드러났다. 그로 인해 대표적인 종교 개혁가들에 의해 우상 숭배라는 비난과 함께 미신으로 매도되었으며, 많은 성당에서 파괴 행위가 일어났다.
성화상 논쟁의 말기인 9세기 이후 이콘 공경이 실천적으로 발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콘은 공경의 대상만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차원에서 또 다른 발전이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이콘은 예배와 공경이라는 면과 예술 문화라는 점에서 분명한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구별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분명한 구별이 이콘의 원본과 이콘 페인팅 발전 사이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앙과 교리 교육을 넘어서는 이콘 예술 : 이콘의 내용을 표현하는 거룩한 인격자들은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 세례자 요한 그리고 교회의 성인들이다. 이콘의 목적은 교리 교육과 성인 공경 외에도 예술적 작품이란 목적이 있다. 10~14세기에 표현되고 그려진 이콘들은 양식사와 도상학(icomgmphp))적인 면에서 기념비적인 화술과 서적 채식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예배를 위한 봉헌적 · 신앙적 이콘들을 발전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콘이 예술로 발전되면서, 후에 그리스도교 전승과도 만나는 결과를 만들었다. 특히 동서 교회가 분리된 이래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의 이콘과는 달리 점차 실질적으로 사실주의적 입장에서 문화 예술을 수용하였다. 그래서, 제2차 니체아 공의회의 신학적 입장과 원칙보다는 훨씬 더 자유스럽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동방 교회에서는 17세기까지 제2차 공의회의 신학적 입장과 원칙을 준수하였고,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복고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신앙적인 이콘들은 교회와 수도원을 통해서 발전하였다. 14~15세기는 동방 교회의 헤시카즘-해시키아(hesychia)는 정신 집중 · 고요 · 침묵이란 의미이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가리킨다. 헤시카즘은 수도원 운동이며 사막의 교부들에게 기원을 두며, 동방 교회의 영성과 수행을 위한 신비주의이다-운동 시기로 신앙적 이콘이 보수주의자들과 수도자들을 상징하였다. 즉 이콘은 동방교회와 교의, 그리고 교회의 일치를 위한 어려움의 상징이 되었다. 교의는 교부들과 공의회가 선언한 것을 보존하였으며, 신앙적 이콘의 전승적 형태를 갖추게 만들었다.
서양 예술의 영향과 이콘 예술 : 16세기의 그리스 크레타(Creta) 화가들의 이콘에 외국의 영향인 화풍이 나타났다. 하지만, 신앙적인 이콘에서는 옛 동방 교회의 전승이 유지되었다. 16세기 미카엘 다마스키노스(Michel Da-maskinos)의 작품에서는 예술과 신앙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 그가 표현한 이콘들은 이탈리아 이콘 모델들로 부터 직접 영감을 받아 세부적으로 묘사된 얼굴들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17세기 동방 교회 이콘들의 특징이 서방의 영향으로 심각하게 달라지는데, 작가들은 가능한 전승적 모델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고대 전승들에 대한 엄격한 준수는 그 작품을 부탁한 사람들이 작가들에게 요구하기도 하였다.
[목적과 내용] 이콘은 교리 교육과 성인 공경을 위해, 그리고 성서와 성인들의 삶과 활동을 그린다. 이콘들은 신자들의 예배와 공경 즉 신앙 생활을 위해 도안되고 그려졌다. 또한 이콘들이 근본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은 성인 또는 순교자의 초상이다. 물론 성인과 순교자의 유해가 교회 시작부터 공경되어 왔던 것처럼 그 초상들이 성인과 순교자를 공경해야 할 분으로 생각나도록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콘은 그 자체로 공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성화상 논쟁 시기부터 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무 이콘들이 동방 교회의 성물들로 공경받았다. 물론 오늘날에도 공경의 대상이다. 성 바실리오는 "이콘의 가치는 이콘이 그리는 본래의 그 원형으로부터 온다"고 말하셨다. 이콘은 원형을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원형 그 자체의 반영이며, 전례와 공경의 가치를 지닌 성물이라고 교부들은 말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이콘 앞에서 큰절을 하고 무릎을 구부리며 공경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화를 공경하는 행위들은 성화 그 자체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육화하신 하느님을 알아보게 해줄 뿐이다. 곧 성화에 표하는 동작은 성화 그 자체에 표하는 동작이 아니라, 나타내고 있는 분들께 표하는 동작이다"(Thomas Aquinas, Sum. Theo., Ⅱ-Ⅱ . 81, 3, ad3).
또한 이콘을 그리는 목적은 교리 교육에 있었다. 니케포로스 총대주교는 "이콘은 천연적이고 보다 표현이 풍부한 면에서 복음보다 더 힘이 있다" 라고 말하였다. 동방 교회의 신학자들은 복음에서 교의적인 장면 열두 가지를 선택하였다. 이 장면들은 열두 축일을 암시하는데, 주님 탄생 예고 · 예수 성탄 · 예수 봉헌 · 예수 세례 · 거룩한 변모· 라자로의 부활 예루살렘 입성 · 십자가 죽음 · 고성소에 내리심 · 예수 승천 · 성령 강림 · 성모 승천 등이다. 이 이콘들은 중세 초기에 성화벽의 위 부분에 놓여졌다. 이러한 관습은 동방 교회를 통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기록적으로 남아 있는 이콘들이 열두 축일의 주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콘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구약과 복음 그리고 동정 마리아의 삶, 성인들의 순교적 삶과 활동이고, 둘째는 오직 성스러운 인물들이다. 주제가 무엇이든 이콘의 목적은 항상 같다. 모든 열정과 감정으로 부터의 자유와 내적 평화를 추구하는 신자들의 삶을 일깨우고 활력을 주는 것이다. 용모 · 자세 · 색조와 모델을정하고, 정해진 모델에 따라 그려질 때에만 이콘으로서 인정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칙과 규정] 달군 쇠로 밀랍을 녹여 붙이거나 템페라 화법(tempera painting, 안료에 수성 용매를 섞어 만든 물감 또는 그것으로 그린 그림)을 주로 사용하는 비잔틴 미술의 4대 특징은 이콘에서 두드러진다. 즉 형상의 정면성, 깊이 혹은 원근법의 결여, 모사되는 인물의 얼굴 표정과 색조의 상징성이다. 형상의 정면성은 초기 이집트 미술의 영향으로 여겨지며, 초상이 직접적으로 관객을 향하는 것은 사람들이 단 둘이 만날 때 경험할 수 있는 '마주 봄'을 뜻한다. 공간, 투영, 원근법을 취하지 않는 것은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예술의 영향으로 이콘을 현실로부터 떼어 놓는다. 이콘 화가는 실물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의 영적 깊이와 그 의미를 드러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에 젖어들게 하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이콘의 배경은 무척 단순하다. 보통 단색을 사용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초상 자체로 끌어들인다. 화면은 그 사람과의 완전한 접근을 내포하는 정면으로, 초자연적 광채로 타오른 온통 얼굴뿐인 머리를 그늘진 코로 분리시키지만 대개는 투영이 없어 차원적이 아니다. 얼굴 형태는 이집트풍을 따르면서 더욱 세련되고 심미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콘 화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인물의 눈이다. 눈은 두꺼운 눈썹과 조화를 이루고 관객을 주시함으로써, 살아 있는 초자연적인 현존이 이콘을 통해 창조된 일체를 포용하는 인상을 주도록 한다. 옆모습의 이콘은 드물게 발견되는데, 이는 모사되는 인간의 삶을 본받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함을 뜻한다. 예를 들어 <신비로운 만찬>이라는 이콘에 유다 이스가리옷은 옆모습으로 등장한다. 인물의 자태와 모습은 전통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 다만 손은 예외로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약간 위로 쳐든 손이 동시에 약간 밖으로 향한 것은 신앙심과 경건함의 상징이다. 후관이 없이 성인상을 그리는 경우, 그들의 성성(聖性)은 위로 쳐든 손에서 발견된다. 축복을 내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릴 때 손의 모양은 항상 디오니시우스의 《화가 입문서》에 있는 지시 사항에 따라 그렸다. "그리스도의 손가락 세 개를 굽히되 엄지와 무명지를 교차시킨다. 이것으로 위로 향한 집게손가락은 I를, 그 옆에 굽은 손가락은 C를 표시하여 구세주의 이름인 IC(예수)를 나타낸다. 동시에 중지는 X를, 굽어진 약지는 C를 만들어 주님인 XC(그리스도)를 그린다."
이콘의 영적 특성 때문에 이콘에서 사용하는 색깔의 의미도 풍부하다. 이콘의 목적이 미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므로, 색깔은 점차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녹색과 갈색은 땅과 식물을, 하늘색은 하느님 나라의 표지와 명상을 나타낸다. 다홍색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에만 사용되며, 진분홍 빨강은 힘 혹은 순교자의 피를 의미한다. 흰색은 순결과 볼 수 없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금색은 웅장함, 태양, 신적인 힘을 뜻한다. 색깔은 인물과도 관련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와 관계가 깊다. 예수 그리스도가 흰색으로 그려졌다면, 그것은 거룩한 변모의 장면이다. 그리스도가 푸른색과 금색으로 그려졌다면, 그 그림은 예수의 십자가 수난 전의 장면을 의미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보라색과 금색으로 모사되었다면 부활 후의 장면이다. 엷고 짙은 다양한 하늘색과 자주색은 성모 마리아의 색깔이다. 성모의 이콘에는 얼굴 가장자리를 약간 어두운 베일로 가리는 것이 기본형이다. 성모의 머리와 양 어깨에 3개의 황금 별이 있는 것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 전에도, 낳을 때에도, 낳은 후에도 동정임을 상징한다.
[이콘과 기도] 이콘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담고 있다. 이콘의 내용은 그리스도교적 삶 특히 기도 생활을 위한 영적 인도자가 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Gregomius, 329/30~3889/390)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성스러운 일을 맑지 못한 방법으로, 고귀한 것을 낮은 방법으로, 존귀한 것을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그리고 거룩한 것을 세속적인 방법으로 실행해서는 안됩니다 ···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행위 · 움직임 · 원의 · 말함 그리고 걷는 방법, 심지어 몸짓까지도 어느 정도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로고스(10gos)는 모든 것에 미치며, 하느님에 의해서 인간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콘이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교부들은 인간의 오관을 영혼의 문이라고 하였다. 우리 영혼의 모든문, 감각의 문을 닫고 마음을 모아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고한다. 이콘 앞에서 기도하고 그저 이콘을 바라볼 때, 이콘으로 묘사된 그리스도 · 성모 마리아 · 성인들이 우리의 몸이 성령 충만하여 영혼을 바르게 보존하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면 우리의 눈은 순수하게 보고, 귀는 평화롭게 들으며, 마음은 고요하고 맑아진다. 이렇게 죄로 얼룩진 우리의 모상(이콘)을 하느님의 모상(이콘)으로 닮아가도록 성령께서 안내해 준다.
이콘 앞에서 고요히 바라보며 마음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은 넓어진다. 우리 삶의 완전한 변화는 우리 마음안에 있는 하나의 단순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회심이다. 이콘 앞에서의 회심이다. 이콘은 거룩함에 이루는 길이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콘은 "눈으로 단식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콘 앞에서 우리의 감정을 일으키거나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콘은 인간적인 것을 전혀 억제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세계를 체험했던 성인들 삶의 모든 면, 즉 생각 · 지식 · 인간적 감정 모두가 이콘에 표현되어 있다. 이콘과의 접촉은 깨끗해질 수 없는 모든 것을 맑게 해 주고 극복하게 해 준다. 증거자 막시모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영혼과 육에 죄가 없으셨듯이 그분을 믿으며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의지를 통해서 죄에서 해방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이콘 안에 있는 아름다움은 영적인 청정함, 내적인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천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과 친교의 아름다움이다. 이콘 앞에서 하느님의 것과 우리의 것이 만나는 것이다. 하느님을 닮는 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이콘이 향하고 있는 곳은 우리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향하고 있듯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이콘 안의 성인은 바로 우리 앞에 현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성인의 현존 앞에서 기도하며 직접 대면해야 한다. 거룩함은 본질상 그 주변을 성화시킨다.
이콘 안에서 우리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하느님의 원형의 모상을 획득하며, 하느님이자 인간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시하고 전해 준 것을 우리의 삶에서 이룩하는 방법 중 하나를 인식하게 해 준다. 성인들의 수는 적지만, 그 거룩함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이콘은 우리에게 변화된 우주를 계시해 주며 그 안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이콘은 자연을 따라 만들어지지만, 상징들의 도움을 받아서 표현한다. 그 상징은 주님의 재림 때 완전히 계시될 세상을 표현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콘 앞에서 깨어 기도하길 주님은 원하신다. (-루블료프, 안드레이 ; 비잔틴 예술 ; 상본 ; 성모자상 ;성화상 ; 성화상 논쟁)
※ 참고문헌  Clendein B. Daniel, Eastern Orthodox Theolog(주주승민역, 《동방 정 교회 신학》, 은성, 1997)/ Cross Lawrence, Eastern Christianity The Byzantine Tradition, Sydney, Philadelphia, 1989/ Paul Evdokimov, L'art de I'icone, théologie de la beauté, Desclée De Brouwer, 1972/ Federici Tommaso, Cristo e L'uomo Icona di Dio, Roma, 1989/Quenot Michel, The Icon : Window on the Kingdom, New York, 1991/Ouspensky Leonid, Theology ofthe Icon, vol. 1, New York, 1992/ SpidlikTomas, The Spirituality of the Christian East : Systematic handbook,Kalamazoo, 1986/ 곽승룡, 《아름다움의 사랑》, 만남출판사, 2000. 〔郭承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