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본관은 전주. 세례명은 요셉. 호는 호세(好世). 1910년 7월 12일 서울 종로구 도염동(都染洞)에서 이인관(李仁寬)과 남양 홍씨의 장남으로 출생. 1929년 3월 경성공립중학교(京城公立中學校, 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 영문과 를 거쳐 1934년 히로시마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진학하였다. 1937년 3월 졸업과 동시에 평안남도 시학(視學)에 취임하고 평양공립상업학교와 평양공립중학교 교유(敎諭)를 겸하였다. 1943년 평양 서문고등여학교(西門高等女學校) 교유를 거쳐, 1945년 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와 조선 총독부 교학관(敎學官)을 겸임하였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청주 제1 공립중학교장에 부임하였다가 1946년 4월 성신대학 교수로 옮겼으며, 1952년 4월 경북대학교 사범 대학 교수, 1954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를 거쳐 1961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이후 1963년 교학처장, 1967년 교무처장 겸 사범대학장, 1973년 총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 정치 문화사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 한양대학교를 퇴직한 후 캐나다로 이민하여, 1989년 11월 몬트리올에서 사망하였다.
이해남은 혜화동 성당에서 유수철(柳秀徹, 도미니코)신부와 함께 크리스천 성가정 운동(C.F.M.)을 한국에 소개하였고, 1967년 제1회 꾸르실료 모임을 수료하여 한국에 꾸르실료 운동을 개척한 주역의 한 사람이었다. 그에 앞서 1948년에 레오 13세의 회칙 〈노동 헌장〉(Rerumnovarum)과 비오 11세의 회칙 〈40주년〉(Quadragesimoanno)를 번역, 해설하여 《사회 질서의 대헌장》으로 간행한 바 있고, 1961년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도 번역하였다. 문재(文才)가 뛰어났던 그는 1932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희곡 〈마장〉이 2등 입선된 뒤, 1933년과 1934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희곡과 노래 등이 입선된 바 있으며, 1955년에는 《가톨릭 청년》에 희곡 〈서학란〉(1946 초연)을, 1961년에는 장편 소설 《에와의 자손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의 문집으로 《사라진 청운(靑雲)》이 있다. 《국민 교육학》(1949), 《세계 문화사》(1950), 《학생과 사색》(1954), 《세계사대관》(1966), 《교육 문화사》(1968), 《국민 윤리》(1972), 《학생과 사상》(1972) 등 많은 교과서를 집필하였다.
※ 참고문헌 李海南, 《사라진 青雲》, 青樹社, 1970/ 《李海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一潮閣, 1970/ 《柏洞半世紀》, 천주교 혜화동 교회, 1977/ 《한국 꾸르실료 30년사》, 꾸르실료한국협의회, 1998/ 〈조선일보〉 1987. 11. 14. 〔崔起榮〕
이해남 李海南(1910~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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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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