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李孝祥(1906~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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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독문학자. 정치가. 세례명은 아길로. 호는 한솔. 1906년 1월 14일 대구에서 출생하여 사립 해성(海星)보통학교를 거쳐 1922년 대구 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 야마구치(山口)고등학교 문과를 마치고 1930년 3월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4년에 남방천주공회(南方天主公會, 대구교구) 학생회 학생부장, 1927년 도쿄 제국대학 가톨릭 연구회지 《광》(光)의 편집인 겸 총무, 1928년부터 〈천주교회보〉(天主敎會報) 편집동인, 1930년 남방천주공회 청년회장 등을 맡았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26년 방학 때부터 대구 교남학교(嶠南學校)에 출강하였고, 대학 졸업에 앞서 1929년 5월부터 교사로 독일어와 조선어를 담당하며 〈천주교회보〉와 《가톨릭 청년》에 시와 논설을 발표하였다. 1940년 교남학교를 대륜중학교(大倫中學校)로 승격시키는 데 노력하였으며, 해방될 때까지 교장으로 재임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경상북도 학무국장을 거쳐, 한국 전쟁 중에는 문총구국대 경북지대장을 맡았으며, 1951년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교수로 부임하여 곧 문리과대학장을 맡았다. 1954년 벨기에 루뱅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연구하였으며, 1956년 대구매일신문사 이사를 겸하며 대구교구의 가톨릭 관계 여러 단체의 대표직을 역임하였다. 1960년 4 ·19 혁명 이후 초대 참의원(경상북도)에 당선되어 정치에 투신, 예산 결산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5 · 16 군사 쿠데타 이후 민주 공화당에 참여하여 제6 · 7 · 8 · 10대 국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제6 · 7대 국회 의장(1963~1971)과 민주 공화당 의장 서리, 총재 상임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65년 경북대학교에서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독일 1급 대십자 훈장, 교황청 대십자 기사 훈장, 말레이시아 최고 훈장 등을 받았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정계를 은퇴하여 대구 근교에서 시작(詩作)과 번역에 몰두하다가 1989년 6월 18일 지병인 고혈압으로 선종하여 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동 소재 대구대교구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차남이 대구대교구장인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대주교이다.
이효상은 종교적 명상 속에서 신성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경건한 심정적 사념(思念)을 찾는 계시주의와, 조국 강산에 대한 애국적 관념을 표현하였다. 또한 가톨릭적인 철학 사상에 조예가 깊어 1971년에 5권으로 된 테야르 드 샤르댕(P.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의 전집을 번역, 간행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산》(1948), 《바다》(1951), 《인생》(1954), 《나의 강산아》(1966) 등이있고, 《한솔 이효상 문학 선집》 6권(1966, 1970)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시 및 논문 등의 번역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괴테나 토마스 만등의 독일 소설 번역도 많다.
※ 참고문헌  이효상, 《한솔 이효상 문학 선집》, 文豪社, 1966/ 국회 도서관 입법 조사국 편, 《李孝祥國會議長演說文集》, 국회도서관, 1970 · 1971.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