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 因果律 〔라〕principium causalitatis 〔영〕principle of caus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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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혹은 우연적인 존재자가 절대적인 존재에 의존해 있다고 하는 것. "인과 원리" 혹은 "인과 관계" 라고도하는 인과율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가 확정하고 스콜라 철학이 이어받은 존재론적 · 형이상학적인 원리이자 형식이다.
〔원리와 형식〕 인과율에 대해 설명하려면 먼저 능동인(efficient cause)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능동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능동인은 운동이나 정지의 첫 원리이다." 여기서 "원리" 라고 하는 것은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하며, '처음의 것' 이라고 하는 것은 실천 질서에서 첫째인 것을 뜻한다. 실천 질서에서 능동인은 다른 원인들을 선행한다. 사실 능동인이 작용하지 않으면 질료(質料)가 형상(形相)을 받거나 형상이 질료를 현실화 혹은 형상화(形相化)하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능동인을 더 쉽게 풀어 다음과 같이말하였다. "능동인은 그 작용으로써 다른 것의 존재에 영향을 주는 외적 원리이다."
여기서 논하는 인과율은 존재론적인 것이다. 우리는 가변적이며 다수인 유한 존재(有限存在)에 대해 능동인의 필요성을 고찰한다. 이런 유한유(有限有)들은 내적으로는 현실태와 가능태의 합성으로 설명되고 외적으로는 능동인으로 말미암아 설명된다. 그것은 어떠한 사물도 현실태에 있는 유(有), 즉 존재자에 의하지 않고는 가능 태에서 현실태로 현실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율을 활용하여 "움직이는 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신학 대전》 제1부 제 문제 제3절)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원리로 운동 즉 사물의 생성과 사물의 실체적 내지는 우유적 변화만을 설명하였는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원리로 사물의 첫 기원인 존재의 무(無)로부터의 생성(창조), 즉 사물의 존재론적 발생을 설명하였다.
인과율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갖는다." 이 형식은 좋은 것이긴 하지만 동어 반복의 위험이 있다. 둘째,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은 다 자기 충족 원인을 갖는다." 이 형식은 한편으로는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에만 인과율의 보편성을 제한하는 것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과율의 더 근본적이며 필연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사물의 생성 변화에 능동인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이유는 유가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지 않고 그런 유의 우연성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절대자 혹은 영원자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우연유의 영원으로부터의 창조로 가능하다. 즉 시작을 배제하면서도 인과율이 성립될 수 있다. 셋째,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다 원인을 갖는다"는 형식이다. 이것은 "모든 우연유(contingent being)는 능동인을 갖는다"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우연유, 즉 우연적 존재자는 그 존재상 자체 내에 존재의 충족 이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 존재의 충족 이유를 제공하는 원인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 형식이 인과율의 가장 좋은 형식이다.
〔반대론과 그에 대한 비판〕 근대와 현대에 인과율에 대한 강력한 반대론이 제기되었다. 그중 중요한 몇 가지는 아래와 같다.
흄 : 흄(D. Hume, 1711~1776)은 원인의 관념이 경험 세계에서 객관적 내지 존재론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여겼다. 경험은 현상의 연속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경험은 결과에 대한 원인의 존재론적 연결과 영향을 알려 주지 않는다. 흄에 의하면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은 원인을 갖는다" 라는 인과율에 있어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란 관념 안에 원인의 관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과적 확신은 두 현상의 반복적인 발생을 연속해서 보는 데서 성립된다. 흄은 인과율에 근거를 주는 고유하고 유일한 근거는 특유한 인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인상을 그는 습성 · 습관 · 신념 등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인과의 연결은 흄에 있어 주관적이며 심리적인 것이고, 객관적이며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성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 부록에서 이런 설명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흄의 이런 인과율의 주관적 심리적 설명은 우리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 때문에 일어나는 것과 현상의 지속적인 연속 관계 즉, 하나 다음에 다른 것이 오는 연속 관계, 예컨대 인간이 의도적으로하는 건축의 경우 토목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 집이 지어지는 것과 학교에서의 시간 배열 즉 첫 시간은 영어, 둘째 시간은 수학인 경우 수학 시간이 영어 시간 다음에 연속하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어 시간 때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 다음에' 와 '이것 때문에'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인과율의 존재론적 가치를 부정하면 학문 특히 자연 과학의 기저를 흔들어 놓는다. 자연 과학은 사물의 존재론적 인과 관계를 전제로 성립된다. 또한 인과율의 존재론적 가치를 부정하면 윤리의 가치도 그 존재론적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경우 개인적 또는 사회적 인간의 삶 전반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즉 인과율이 거부될 때 어떠한 윤리적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거나 상환을 할 수 없게 된다.
칸트 : 인과율에 대한 흄의 심리주의를 배척한 칸트(I.Kant, 1724~1804)는 현상계에 대한 인과율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가치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원인 개념은 선험적 범주이며 주관적 현상이다. 인과율은 선험적 · 종합적 원리이다. 종합적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어가 주어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선험적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어가 경험에 유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과율은 다른 선험적 종합 판단과 같이 현상계에만 적용되고 물차제(物自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식이 필연적으로 인과율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인 개념을 경험을 통해 후험적으로 얻는다. 즉 우리는 우리의 내적 · 외적 경험에서 지성 작용으로 원인 개념을 갖게 된다. 지성의 기능은 감각적 소여(所與)를 반성하고 그것을 설명한다. 지성은 감각적 경험과 그 소여에서 인과율을 포착한다. 인과율은 종합적이 아니고 분석적이다. 왜냐하면 인과율의 형식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충족) 원인을 갖는다" 혹은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충족) 원인을 갖는다"에 있어 주어 즉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 혹은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 안에 설명어가 명시적으로나 형상적(形相的)으로는 아닐지라도 내포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그런 설명어가 주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으로써 주체 안에 포함된다. 주체의 분석에서 그 설명어가 해명된다. 따라서 인과율은 자명 원리, 즉 분석 원리이기에 충분한 이유를 갖는다. 사실 설명어가 주체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분명하면, 그런 설명어는 보편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주체에 대해 서술된다. 물리학 : 현대 일부 물리학자들 특히 원자 물리학에서는 인과율의 가치가 상실되었다고 생각한다. 원자 물리학에서는 고전 물리학의 결정률이 아니라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자계에서의 현상은 인과율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고 우연 법칙에 의해 움직여지며, 모든 물리적 법칙은 통계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적 인과율은 고전 물리학의 결정률과도 다르고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와도 다르다. 사실 인과율은 구체 원인이 어떤 것이며 그것이 구체적 결과를 어떻게 내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유한유 혹은 우연유는 존재하기 위해 원인이 필요하다는 것만을 주장한다. 물리학의 결정률은 인과율에 반대되는 것도 아니고, 인과율과 동일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과율이 구체적 원인과 결과 관계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결과는 원인을 갖는 것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인과율은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반대되지도 않는다. 불확정성 원리는 원자 세계 내 요소들의 어떤 위치나 속도 등을 정확히 결정할 수 없고, 계속되는 현상들에 대해 개연적으로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불확실성이 성립되고 개연성만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계의 현상들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 할지라도 그것에 상응하는 원인은 있게 마련이다.
이 밖에도 인과율에서는 일반적으로 질료인(質料因) · 형상인(形相因) · 목적인(目的因) · 도구인(道具因) · 모형인(模型因)들이 고찰된다.(→ 형이상학)

※ 참고문헌  정의채, 《 형 이 상 학》, 열 린, 1997/ C. Fablo, Partecipagione e causalità secondo S. Tommaso d'Aquino, Torino, 1960/G.F. Kreyche · T.C. O'Breien · M.R.E. Masterman, Causality, Cause final, 《NCE》 3, pp. 342~352/ R.M. Mcgnerung, Being, 《NCE》 2, pp. 230~232/A. Guzz · F. Barone · T. Beck, 《EF》 2, pp. 155~178/ A. Frauchi · L.Pagello, Ente, 《EF》3, pp. 110~111/ Adriano Alessi, Metafizica, Las-Roma, Roma, 1992/ Joseph de Finance, Conoscenza dell' essere, Editrice Pontificia Universit Gregoriana, Roma, 1993. 〔鄭義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