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때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Declaration des droits deihomme et du citoyen, 1789. 8. 26)을 시작으로, 국제 연합(UN) 총회의 결의에 따라 채택되고 선포된 '세계 인권 선언'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1948. 12. 10)에 이르기까지 유엔, 유엔 관련 기구 및 각 대륙 · 국가에서 선포된 인간의 권리 선언. 통상적으로는 유엔의 세계 인권 선언을 가리킨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과정 :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1774~1793)는 특권 계층의 저항을 극복하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자신이 부족하였던 탓에 성직자 · 귀족 · 평민의 세 계급에서 선출한 대표자들이 모이는 삼부회(三部會, Etats-Generaux)의 소집을 수용하였다. 이때 루이 16세는 제3 계급(평민)의 수를 배(倍)로 하는 것을 수락하였으나, 공동 토의와 1인 1표에 의한 투표 원칙은 거절하였다. 1789년 5월 5일부터 제3 계급의 대표들은 공동으로 국정을 감사할 권한을 요구하였다. 1개월 이상 각 계급별로 개별적인 논의를 거친 끝에 시에예스(E.J.J.Sieyes, 1748~1836)의 제의에 따라 제3 계급은 모든 국민대표들에게 자신들과 합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일부 성직자의 참여로 수를 불린 이들은 자신들을 6월 17일부터 국민 회의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6월 27일 루이 16세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에게 제3 계급에 합세할 것을 명하였고, 제헌 국민 회의는 프랑스 헌법을 만들기 위한 작업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기본 원칙은 일시에 논의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정립해 나갔다. 선언의 기본 원칙은 7월 9일에 상정되어, 그 해 8월 4일에 확정 · 채택되었고, 8월 19일에 모형과 정확한 절차를 갖추게 되었다. 이어 8월 20~26일까지 신속하게 전문과 17개 조항이 표결됨으로써 선언이 완성되었다.
구성과 내용 : 이 선언은 정치 조직의 원리와 자연적 권리의 인정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성격의 조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골격은 천부적이고 양도할 수 없으며, 신성한 인간의 권리를 공포하기로 한다는 의도를 담은 전문과 17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인간의 선천적인 자유, 권리의 평등 상태로의 탄생과 생존의 존중(1조),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되지 않는 권리의 보전이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이다(2조), 주권 재민의 원칙(3조), 자유는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4조), 법률로 금지되지 않은 모든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5조), 의사표현의 자유 보장과 법률 앞에 평등 원칙(6조), 법률의 공정하고 엄정한 집행의 원칙(7조), 합법적 법률의 적용에 따른 처벌의 원칙(8조), 유죄 선고 전에는 무죄로 추정될 권리(9조), 종교상의 견해 표현의 자유(10조),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의 권리(11조), 인간과 시민의 권리 보
장을 위한 공권력의 필요성 인정(12조), 공권력의 유지를 위한 공동 납세의 불가피성 인정(13조), 조세의 필요성 확인 및 조세 관련 사항을 결정할 권리(14조), 공무원에게 사회가 설명을 요구할 권리(15조), 헌법 소지의 조건으로써의 권리 보장과 권력 분립 보장(16조), 재산권의 보장(17조)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후의 과정 : 선언이 마련된 이후 미비점들이 드러나 보완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즉시 보완되지 못하고 대체되다가 1793년, 1795년, 1814년, 1830년, 1848년의 보완 과정을 거쳐 1852년에야 비교적 효력을 갖는 형태로 반영되었다. 이후 1946년, 1958년의 프랑스 헌법 전문에 언급되고 보완되었다.
의의와 평가 :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앞선 경험들(영국)과 로크(J. Locke, 1632~1704)와 같은 사회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이 선언이 특히 프랑스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먼저 이 선언은 봉건 체제로부터의 해방을 촉진함으로써 인간 해방의 새로운 단계를 가져왔다. 둘째, 국민과 권력(정부)의 관계에서 국민이 새로운 인권의 소유자가 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자 정당성의 근거로 여겨지게 되었다. 셋째, 권력의 형태에 관한 원리로써 민중의 정치 참여를 배제할 수 있고, '국민 대표' 와 그 성원을 '인민'의 통제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국민 주권' 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봉건적인 할거 체제를 부정하고 법률로써 그 형태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지방 공공 단체 지도를 설정하고, 도량형을 통일하여 통일적인 국내 시장을 창
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전개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정신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문학, 예술, 과학이 비약적 ·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서구 민주주의의 발전과 유엔 인권 선언에도 내용적으로 큰 기여를 하였다.
〔유엔 인권 선언] 과정 :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타났던 가공할 인권의 침해에 대응하고, 유엔이 창설 당시부터 부여받은 국제 사회의 희망과 권위를 토대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국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하였다. 유엔은 인권에 관하여 부여받은 위임 권한을 경제 이사회에 넘겼다. 유엔 경제 이사회에서는 1946년 2월 제1차 회의를 소집하여, 인권 분야에서 부여받은 위임 권한을 수행하기 위해 인권 관련 핵심 위원회를 설치하고, 9명의 위원을 선출하였다. 이 위원회는 인권 위원회로 불렸고, 위원장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미망인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부의장 중국의 창(P.C. Chang), 보고자 레바논의 말리크(Charles Malik), 위원 프랑스의 카상(ReneCassin), 벨기에의 드우스(Femand Dehousse), 오스트레일리아의 허지슨 (William Hodgson), 인도의 메타(Hansa Metha), 캐나다 출신으로 유엔 사무국 사회부 인권 국장인 험프리(Hohn Humphrey)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1946년 4~5월에 모여 이 위원회의 전체 임무를 구성하고, 관련 용어와 작업 방식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경제 이사회에 제출하였다. 이사회는 이에 준하여 1946년 6월에 총 18명의 위원을 선출하여 전체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는 1947년 1~2월에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위원회는 험프리의 지원을 받는 말리크, 창, 루스벨트 여사 등으로 초안 위원회를 구성하고, 후에 영국, 소련, 프랑스,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들을 추가하여 범위를 확대하였다. 초안 위원회는 1947년 6월 9일에 1차 모임을 소집하고, 이후의 작업을 통하여 408쪽에 달하는 《문서 개요》를 완성하였다. 이 개요에는 사무국이 기초한 권리 장전의 초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의 과정에서 도덕적인 강제력이 있는 선언과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나 조약의 대안을 놓고 논란을 벌였는데, 초안 위원회는 두 가지를 모두 진행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언에 관심을 집중하였고, 선언 중심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초안 위원회는 내부에 4명으로 임시 작업단을 구성하고, 이들은 카상에게 사무국의 문서 개요를 바탕으로 선언 초안을 제안하도록 요청하였다. 초안 위원회 총회는 작업단에서 제출한 초안을 원안으로 삼아 위원회에 제출할 최종 문서를 준비하였다. 위원회 전원회의는 1947년 12월에 제2차 회의를 개최하였고, 이때 세 가지 보고서를 마련하였다. 또한, 이 회의에서는 작업단을 셋으로 나눠 선언, 규약, 이행 수단 등의 세 방향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회의 끝 무렵에는 각 정부에 제출한 초안을 거의 완성하였다. 협약 초안은 미완성 상태이긴 했지만, 각국 정부에 논평을 위해 보내졌다. 1948년 6월 3차 회의에서 위원회는 각국 정부에서 제출한 논평을 검토하고, 이를 기초로 초안을 보완하여 경제 사회 이사회에 제출하였고, 이사회는 간단한 검토를 거쳐 다시 총회에 제출하였다. 1948년 9월 파리 총회 개최 3개월 전에 선언문 초안이 제출되었다. 채택까지 무려 85차례 회의와 여러 하위 위원회의 20여 회에 걸친 논의 끝에, 유엔 총회는 1948년 12월 10일 찬성 48, 반대 0, 기권 8의 표결로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하였다.
구성과 내용 : 이 선언은 전문을 포함하여 30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에는 유엔 회원국 국민과 회원국 관할권 아래 있는 영토의 국민들 모두에게 권리와 자유의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인정과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힘쓰도록, 모든 국민들과 나라들이 성취해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써 선포한다고 명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모든 인간의 자유, 존엄성과 권리의 평등, 제2조 모든 인간이 아무런 차별 없이 선언에서 제시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 제3조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 제4조 인간의 모든 형태의 노예화 반대, 제5조 고문이나 가혹 행위의 처우나 형벌의 금지, 제6조 법 앞에서 모든 인간이 인격체로 인정받을 권리의 보장, 제7조 모든 인간의 법 앞에 평등, 모든 차별에서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 보장, 제8조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하는 기본권을 침해당할 때 유효하게 구제받을 권리의 보장, 제9조 자의적 체포 · 구금 추방을 당하지 않을 권리 보장, 제10조 죄형 법정주의와 공정하고 공적인 심문을 완전 평등하게 받을 권리, 제11조 형사 소추시 변호 및 유죄 판명시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의 보장, 제12조 사생활 · 통신에서 자의적인 간섭 · 명예 · 신용에 대하여 공격받지 않을 권리, 제13조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누릴 권리, 떠난 어느 곳에서든 자국으로 돌아갈 권리, 제14 조 박해를 피해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누릴 권리, 제 15조 한 국가의 국적을 가질 권리, 제16조 아무 차별 없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권리, 제17조 타인과의 협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단독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 제18조 모든 인간이 사상 · 양심 ·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 제19조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 제20조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 제 21조 직접 · 간접 방식에 의해 자국의 통치에 참여할 권리, 제22조 사회 보장 제도에 대한 권리, 제23조 일, 자유로운 직업의 선택,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 조건, 실업에 대한 보호 등의 권리, 차별 없는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보수의 권리, 정당하고 충분한 보수를 받을 권리, 제24 조 합리적인 노동 시간의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 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 제25조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와 위급시 보장 제도를 누릴 권리, 제26조 기초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 제27조 자유롭게 공동체의 문화 생활에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전과 그 혜택을 나누어 가질 권리, 제28조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 제29조 모든 인간의 이러한 권리를 보호해야 할 합당한 의무, 제30조 누구도 서언과 선언에서 제시한 권리를 파괴할 권한이 없다.
의의와 평가 : 이 선언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종 · 성 ·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이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새로운 국가들과 헌법을 개정하는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어 근본 정신이 이들 국가의 헌법에 반영되었을 정도로 보편적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규정력을 갖지 않는 도덕적 요청 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인간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제시한 것은 보편적인 인권 보장의 헌장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선언 자체가 타협과 정치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는 견해도 적지 않으나 문화 · 인종 · 지역 · 정치적 이해의 차이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유엔과 유네스코가 채택한 인권에 관한 국제 선언] 세계 인권 선언 이후 유엔과 선언의 몇 가지 주요 원칙들을 실행할 책임을 맡은 유네스코(UNESCO)는 선언의 내용을 구체화하였다. 또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선언을 발표하고, 규칙을 제정하고 있다. 다음은 최근까지 시도된 선언과 규칙의 목록이다.
선언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 사회와 해당 국가,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정부가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실제로 이를 실행할 때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다. 사실 인권 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도 세계는 냉전을 겪으면서 인권 탄압의 새로운 양상들을 노출하였고, 이전 시대와는 다른 맥락에서 인권을 위협하는 상황들에 직면해 왔다. 21세기인 현재 에도 인권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보다 규정력을 갖는 형태로 해당 국가나 사회에서 받아들일 때 인류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그러나 선언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인류 앞에 남아 있다. (⇨ 세계인권 선언 ; → 인권)
※ 참고문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인권이란 무엇인가-유네스코와 세계 인권 선언의 발전과 역사》, 도서출판 오름, 199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편, <교회와 사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한상범, 《인권-민중의 자유와 권리》, 교육과학사, 1992/ -, 《현대 인권론》 상 . 하,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8/ 杉原泰雄, 《人權の 歷史》, 岩波書店, 1992(석인선 역, 《인권의 역사》, 한울, 1995)/ Jean Morange, La Declaration des Droits de I'Homme et du Ciyoyen, PUF, 1989(변해철 역,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탐구당, 1999)/Wolfgang Huber · Heinz Eduard Tödt, Menschen Rechte,3-Perspekiven.einer menschlichen Welt, Kreuz Verlag, Sttutgart, 1977. [朴文洙]
인권 선언 人權宣言 [영]Declaration of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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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와 삼부회의 회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