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영J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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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아시아의 인도양과 남태평양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바(Java) · 수마트라(Sumara) · 보르네오(Borneo) · 셀레베스(Celeces)와 같은 큰 섬을 포함하여 대략 13,67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 국가.
공식 명칭은 인도네시아 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 동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와 아라푸라 해, 남쪽과 서쪽으로는 인도양, 북서쪽으로는 안다만 해, 북쪽으로는 말라카해협, 남중국해, 셀레베스 해, 태평양 서부 해역과 이웃한다. 면적은 1,919,317k㎡이고, 인구는 209,260,000명(2001)이며, 수도는 자카르타(Jakata)이다. 공용어는 바하사 인도네시아어(Babasa Indonesia)이고, 자바족, 순다족, 마두루족, 말레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다수가 무슬림 신자이다.
인도네시아에는 1세기경부터 인도 문화가 전해졌는데, 인도 상인들을 통해 전파된 불교와 힌두교는 왕조 국가의 토대를 만들어 5~6세기경 힌두 왕국인 칸타리 왕국과 말라유 왕국이 세워졌다. 9~13세기에는 말레이인이 세운 슈리비자야 왕국이 번영을 누리다가 쇠락하였고, 12세기 말부터 인도네시아를 지배한 자바의 마자파히트 왕국은 한때 그 영토가 말레이 반도와 필리핀 남부 해역까지 도달하는 번영을 누렸다. 13세기 인도에서 온 이슬람 상인을 통해 수마트라에 이슬람교가 전래되기 시작하였고, 15세기 후반에 마자파히트 왕조가 쇠퇴하면서 16세기에는 신생 이슬람 무역국들이 여러 섬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였다. 1511년 포르투갈이 몰루카(Moluccas) 제도에 상륙한 이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의 서구 열강이 이 섬을 장악해 갔으며, 무역 활동을 하던 네덜란드인은 18세기 수 차례에 걸쳐 발생한 왕위 계승 전쟁으로 타람 왕국이 무너지자 자바 내정에 깊이 개입하여 왕국을 두 개로 분할하였고 점차 인도네시아 군도의 통제권을 장악하였다. 1927년 수카르노(Sukmo, 1901~1970)를 총재로 한 인도네시아 국민당이 결성되어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1945년 일본의 패망 직후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포하였고, 1949년 11월 헤이그 협정을 통해 네덜란드와 연방 관계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1954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이리안바라트(서뉴기니, 지금의 이리안자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연방 관계를 해체하였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민족주의자로서 1955년에는 반식민주의와 민족주의, 평화 공존 등을 주창한 반등 회의를 개최하는 등 아시아, 아프리카 신생국의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공산당을 인정하는 정책을 취하기도 하였다. 한때 인도네시아의 공산당은 300만 명의 당원을 확보하기도 했으나 육군 전략 사령관이었던 수하르토(Suharto, 1921~ )가 펼친 공산당 탄압 정책으로 인해 쇠퇴하 였고, 공산당에 대한 탄압 정책을 반대했던 수카르노는 1966년 수하르토에게 권력을 넘기게 되었다. 결국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1968년 수하르토가 대통령에 취임하여 장기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는데, 1998년 경제난과 부정 부패로 인한 민중들의 봉기로 수하르토의 장기 독재 체제는 종말을 고하였다. 하비비가 임시로 정권을 이양받았다가 1999년 10월 국민 협의회(MPR)에서 와히드(Adurahmaman Wahid)가 대통령으로,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Megawan Soekarnoputi)가 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54년 만에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와히드는 부패에 연루되어 탄핵 절차를 통해 대통령직에서 추방되었고, 2001년 7월 제5대 대통령으로 부통령이었던 메카와티가 선출되었다. 한편 1975년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받아 합병되었던 동(東)티모르는1999년 8월, 25년 간의 투쟁의 결실로 인도네시아의 동의하에 주민 투표를 실시하여 독립을 결정하였고, 2002년 5월 공식적으로 독립하였다.
가톨릭의 전래 : 인도네시아 지역에 처음 복음이 전래된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3세기 후반~14세기 초, 인도 지역을 여행한 작은 형제회 회원들이 인도네시아 몇몇 항구를 방문하여 복음을 선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11년 포르투갈인이 도착하면서 선교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1534년 선교 본부가 몰루카, 암보이나(Amboina) , 테르나데(Ternat)에 설립되었다. 1546~1547년경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506~1552)는 인도네시아에 14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테르나테 섬을 방문하였고, 현지인 신부 양성을 위한 대학을 설립하였다. 또한 예수회 회원들은 셀레베스의 북쪽 해안과 인근 지역을 방문하였다. 1562년에는 도미니코 수도회가 진출하여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6세기 말경 가톨릭 교회는 인도네시아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신자수는 50,000명 가량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초부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가톨릭 선교 단체들의 활동을 금지하였고, 대신 칼뱅주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모든 종교에 대한 자유가 인정되면서, 1808년에는 최초로 네덜란드 신부가 자바에 도착하였고 가톨릭 교세도 점차 성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1845년 총독은 바타비아 대목구 초대대목구장으로 부임한 그루프(J. Grooff) 주교의 태도가 '반식민지적' 이라는 명목으로 그루프 신부를 몇 달 만에추방하였고, 정부도 법을 제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 활동을 금지하였다.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있던 가톨릭 교회는 1858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선교 활동을 통해 공급되는 다양한 제도와 물품이 필요해지자 네덜란드 예수회의 입국을 허가함에 따라 다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예수회의 활동이 자신들의 의도를 충분히 만족시키자 20세기 초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카푸친회, 신언회 등도 차례로 초청하였다. 선교회, 특히 예수회의 활발한 전교 활동을 통해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하였으나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기간 중에는 교회 성장이 일시적으로 답보 상태에 빠졌다. 1945년 독립 이후 정부는 독립 투쟁 과정에서 교회가 수행했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교육 제도나 다양한 방면의 정부 운영에서 교회를 조력자로 고려하였다. 1981 ~ 1996년까지 가톨릭을 집단적인 신성 모독 단체로 간주한 프로테스탄트와 40회 이상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3명의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가톨릭 신자의 구타로 사망하였다. 1990년대 들어 인도네시아 경제가 어려움에 처함으로써 특히 몰루카 섬을 중심으로 무슬림과 가톨릭 신자들 사이의 폭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교회 지도자들은 자제와 대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2001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6,000,000명이며, 대교구 8, 교구 26, 본당 1,021, 군종교구 1개에, 추기경 1, 대주교 9, 주교 30, 신부 2,830(교구 소속 1,062, 수도회소속 1,768), 종신 부제 14, 수사 876, 수녀 6,802명이 있다.
동티모르 : 포르투갈 식민지었던 동티모르는 1975년 인도네시아에 의해 침공받았고 이듬해에 합병되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 합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톨릭 교회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독립을 위해 무력전을 펼치는 게릴라들 사이에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99년 12명의 시민들이 사망하였다. 2001년 현재 총 인구는 852,000명이고,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86%인 736,000명이며, 교구 2, 본당 31개에 주교 2, 신부 121(교구 소속 50, 수도회 소속 71), 종신 부제 1, 수사 16, 수녀 331명이 있다.
※ 참고문헌  7, pp. 478~481/ 2002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19/ Ammuario Pontificio 1998, Cittàdel Vaticano, 1998/ Les Chiffres du Monde, PP. 282~283. 第一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