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본당

仁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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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구미시 인의동 312 소재. 1979년 1월 1일 왜관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관할 구역은 구미시 인의동, 진평동, 구평동, 양포동 전 지역. [교 세] 1980년 481명, 1985년 494명, 1990년 921명, 1995년 2,067명, 2000년 2,700명. [역대 신부] 초대 보타와(H. Wottawah, 허창수) 헤르베르트(1979. 1~1985. 9), 2대 소이페를링(A. Seuferling, 민공도) 알로이시오(1985.9~1987. 1), 3대 허연구(許淵九) 모세(1987. 1~10), 4대 김충(金忠)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7. 10~1991. 6), 5대 김홍수(金興洙) 실바노(1991. 6~1995. 6), 6대 이형문(李亨文) 안토니오(1995. 6~2000. 11), 7대 이재원(李在元) 욥 (2000. 11~현재).
낙산 본당 관할 금전동에 사는 방우영(타데오)이 1905년 세례를 받고 주민들에게 전교를 시작하여 30여명이 입교한 이후 낙산 본당 5대 주임 투르뇌(V. Tour-neux, 呂東宣, 빅토리노) 신부가 방문하여 판공을 보고 미사를 봉헌하면서 공소로 발족하였다. 1947년 금전동에서 황상동으로 공소를 옮기면서 왜관 본당의 관할이 되었다. 1956년 현 본당 부지에 공소 건물을 지어 인동공소로 명명되었고 이때부터 매주일 미사가 봉헌되었으며, 1957년에 유급 전교 회장이 부임하였다. 1970년부터 신자수가 증가하자 1978년 2월 인보 성체 수도회 수녀 2명이 파견되었고, 7월에는 정학근(鄭學根, 모세) 신부가 임시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준본당으로 발돋움했다. 1979년 1월 1일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보타와 신부가 부임하였다. 4대 주임 김충 신부 때 당시 사목 협의회 부의장이던 유 요셉이 땅을 기증함으로써 본격적인 성당 건립을 할 수 있었다. 5대 주임 김흥수 신부는 현 위치에 성당(대지 1,596평, 연건평 728평)을 완공하여 1993년 3월 28일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6대 주임 이형문 신부 재임기에 본당의 교세가 확장되어 분리를 계획하였는데, 7대 주임 이재원 신부 재임기인 2001년 10월 1일 인동 본당으로부터 분리하여 중리 본당이 설립되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총람》, 1986.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