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 성체 수도회 隣保聖體修道會 〔라〕Congregatio Caritatis SS. Sacramenti [영]Blessed Sacrament Sisters of Charity(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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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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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 전경.

1956년 11월 19일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 1907~1971) 신부가 교회와 세계 안에서 요구호자(要求護者)를 돕는 사회 사업과 복음 선포에 직접 협력함으로써 인보(隣保)의 덕을 실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한몫을 하고자 설립한 수녀회. 총본부는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 361번지에 있다.
〔수녀회의 설립과 변천] 인보 성체 수도회를 설립한 윤을수 신부는 1907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여 1920년 9월 용산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32년 12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어 충북 장호원 성당 보좌 신부로 사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34년 4월부터는 소신학교 교사로 재임하면서 성서 신학과 호교론에 관련된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36년 7월에는 라선 사전(羅鮮辭典)을 출간하여 후학들을 도왔다.
1937년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1939년 <조선의 유교사>라는 논문으로 한국인 성직자로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42년 8월 15일 프랑스어판 《준주성범》을 번역 · 출판하였다. 1948년 3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신학 대학) 2대 학장으로 취임하였고, 같은 해 교황청 직속 전교회 한국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1950년 서울교구 비서실장 및 경향신문사 상임 고문을 겸직하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군종 신부로 참여한 윤 신부는 전쟁으로 인한 조국의 참상을 직접 체험한 후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기 시작하였으며, 아이들의 수가 증가하자 1951년 3월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벌응절리(伐應節里, 현 원미구 역곡동) 산 4번지에 전쟁 고아들의 보금자 리인 골름바(Columha)사(肚)를 설립하였다. 이와 함께 1953년 '한국 가톨릭 사회 사업 협회' (Caritas Coreana, 현 사회 복지위원회의 전신)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지냈던 그는 1956년 8월 서독 윈헨(Minchen)에서 개최된 국제사회 사업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선진국의 전문적인 사회 복지 실태를 파악하게 되었다. 유럽 선진 국가의 사회 사업이 양로원 · 보육원 · 무료 급식소와 같은 형태의 자선 사업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 복지 및 개발 위주의 사회 사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윤을수 신부는 한국의 사회 사업 또한 광범위한 사회 복지 사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 1956년 9월 윤을수 신부는 골롬바사 내에 훗날 인보성체 수도회의 모체가 된 우리 나라 최초의 사회 사업 전문 학교이자 여성 사회 사업가 양성 기관인 '구산후생학교 (鳩山厚生學校, 1964년 6월 2일 폐교)를 설립하였고, 11월 19일에 개교하면서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그 곳에 수도 성소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반을 별도로 편성하였으며, 1958년 6월 5일 서울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24명의 회원이 첫 서원을 하였다. 1960년 10월 1일 노기남 주교에 의해 서울교구소속 수도회로 인가되었으며, 1965년 11월 25일에는 수도회가 전주교구로 전속됨에 따라 본원이 경기도 소사에서 현 소재지로 이전되었다. 이때 수도회의 명칭이 '인보' 를 뺀 '성체회' 로 바뀌었다가 1985년 10월 15일 다시 처음의 명칭으로 전주교구장 박정일(朴正一, 미카엘) 주교에게 승인을 얻었다.
[영 성] 윤을수 신부는 평등 사상에 입각한 인보 정신으로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어려운 이웃〔要求護者〕에게 인보의 덕을 실천하는 것이 곧 성체성사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임을 가르쳤다. 인보 성체 수도회의 영성의 기본은 바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남겨 주신 성체성사에 박힌 정신을 시대와 지역사회의 요구에 따라 구현하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참된 겸손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보 정신의 근간을 이루며, 마음 바르게 부지런히 살며, 넘치는 행복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참된 의미의 전교이다. 인보 성체 수도회 회원들은 현 시대의 문화와 사회 안에서 물질적 · 정신적 · 영적으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을 이웃으로 섬기며, 만나는 모든 이들의 인격을 존중한다. 이와 함께 시대의 징표를 민감하게 읽어 사회 사업과 복음 선포에 임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자 한다.
[사도직 활동] 설립 초기에는 우리 사회 안에 날로 증가했던 고아, 미감아, 나환우, 결핵 환자, 빈곤 가정 등을 대상으로 서울, 소사, 청평, 충무, 백령도, 성 라자로 요양원, 성 라자로 보육원, 덕산 등지에서 육영, 요양, 자활 및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1958~1959년경에는 교회가 구호 물자를 보급하면서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수녀회 회원들은 일로, 예산, 영등포, 해방동, 인천 답동, 원주 원동, 인제, 강화, 영산포, 흑산도 등 35개 본당 및 공소에 파견되어 선교 활동에 주력하였다.
현재는 68개 본당의 사목과 더불어 서울대교구 '성체유치원' , '율곡 어린이 집' , 수원교구 '인보의 집' (무의탁 노인 보호 시설), '인보 마을' (실비 노인 요양 시설), '요한의 집' (뇌성 마비 아동 보호 및 조기 교육 시설), '용인 성체유치원' , '성남 성체유치원' , 광주대교구 '광천동 사랑의 집'(장애인 행려자 보호 시설), '용두동 사랑의 집' , '예리고의 집' (무의탁 노인 보호 시설), 전주교구 '인보 노인 종합 복지관' , '군산 장애인 복지관' , '전주 사랑의 집' (행려자보호 시설), '팔복 성모 어린이 집' 을 운영하는 등 유아, 장애인, 행려자, 노인 사목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해외 선교로는 미국, 페루, 일본에서 교포 및 원주민들을 위한 본당, 직업 학교, 유아원, 양로원을 운영하고있다. 2002년 6월 현재 종신 서원자 327명, 유기 서원자 41명, 수련자 11명, 청원자 9명, 지원자 8명 등 총 396명의 회원이 있다. (- 윤을수)
大學 ※ 참고문헌  인보 성체 수도회 편, 《윤을수 신부 유고집》, 인보성체 수도회, 1983/ 인보 성체 수도회 편,《새감의 얼》, 인보 성체 수도회, 1984/ 한영순, 《새감 윤을수 라우렌시오 신부》, 인보 성체 수도회, 1998/ 서상요 엮음, 《성 라자로 마을 50년사》, 유림문화사, 2000/ <교회와 역사》 304호(2000. 9). [인보 성체 수도회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