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세례명은 마르티노. 충청도 덕산(德山) 용머리(충남 삽교읍 용동리 1구의 주래)의 교동 인씨(喬桐 印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신분은 양반이며, 평소 친분이 있던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입교 후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주(神主)를 강물에 버렸으며, 맏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주문모(周文謨,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런 다음 맏아들 요셉을 신부 곁에 남겨 두고, 둘째 아들은 당시 교우들 중에서 명성이 높았던 집안에 장가들였다. 인언민은 그 후 가산을 모두 버리고 공주로 이주해 살다가, 1799년 공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청주로 이송되었다. 청주에서 심한 고문을 당한 그는, 감사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관할하는 해미 진영(海美鎭營)으로 압송되었고, 1800년 1월 9일 63세의 나이로 이보현(李步玄, 프란치스코)과 함께 매맞아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보감》/ 《推案及鞫案》. [孫淑景]
인언민 印彥敏(173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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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해미로 압송되는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탁희성 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