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장 印章 [라]sigiluum [영]s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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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뼈, 철 등으로 만들어진 도장 그 자체나 그 도장에 의하여 표면에 찍힌 모양. 법적 상업적 공적 문서를 보증하거나 확증하기 위하여, 혹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인장(Sigilumm)이 "봉인" (封印)이라는 말로도 사용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문서의 기밀을 보호하기 위하여 보내는 사람의 반지에 각인된 인장으로 공문서 봉투를 밀랍이나 금 · 은으로 밀봉하고 날인한 데서 유래한다. 봉인된 문서는 합당한 권한이 있는 당사자에 의하여서만 개봉될 수 있었다.
[성서 고고학에서의 의미] 고대 근동 지역의 후기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돌로 만든 동물 모양이나 네모 혹은 세모 등의 모양으로 된 부적을 간직하였었다. 부적의 표면에는 빗금, 마름모꼴, 물결 무늬, 혹은 V자 같은 기하 무늬가 새겨 있었다. 이러한 무늬는 당시에 일상 용기로 사용한 토기나 사람들이 주술적 용도로 만든 모신상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기원전 4000년경 금속 연장의 개발과 농경지 확대로 시장 경제가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부적은 개인의 소유를 나타내고 확인하는 증표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기원 전 35세기에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면서 거래한 내용을 밝히기 위하여 부적을 인장처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관습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전 40~30세기에 사용되었던 수천 개의 부적 또는 인장이 발견되었지만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개별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 개인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인장이 경제 활동에 전적으로 사용된 것을 기원전 40세기경 물표(物標, tokens)를 사용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성 국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인장 : 기원전 40세기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시장 경제의 중요한 매개체로 일정한 모양과 크기의 작은 돌들을 물품의 명목과 가치를 나타내는 물표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상거래에 약속된 일정한 양의 물표를 점토로 쌓아 서로가 보관하였다. 또한 상거래의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물표를 쌓아 봉한 점토 덩이 표면에 소유주의 고유 무늬를 그리거나 개인의 부적을 표면에 찍기도 했다. 그래서 누구도 훗날 그점토 덩이를 깨서 물표의 수효를 바꾸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발전된 물표는 물품의 다양한 종류를 세분화하기 위해 점토 덩이를 작은 모양의 여러 형태로 만든 것이다. 시장 경제가 점차 분화되면서 한 종류의 여러 품목을 구별하기 위한 방편으로 물표의 위 표면에 개별적인 모양의 상징적인 선(線)을 그어서 물표를 만들었다. 보편적으로 상거래에 사용되었던 인장의 출현은 이 시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동석(凍石)과 같은 단단한 돌로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인장을 만들어, 그 표면에 고유 무늬를 음각(陰刻)으로 새겨 소유주를 나타냈다. 물표를 점토로 쌓아 봉하고 그 표면에 이러한 인장으로 찍어서 소유주를 명기했다. 인장은 상하 혹은 좌우로 구멍을 뚫어 끈으로 매어 사용하였다.
기원전 33세기경 물표를 쌓아 봉하는 이러한 점토 덩이가 납작한 점토판으로 바뀌고 점토판 위에 물표를 뜻하는 상형 문자와 물표의 수효를 기호로 표기하였다. 점토판 위에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한 인장으로 편평한 표면에 굴려서 사용할 수 있는 원통형 인장이 개발되었다. 단단한 돌이나 보석으로 만든 원통형 인장 표면에 소유주의 고유 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다.
초기 단계의 인장에는 네모꼴이나 꽃무늬 등 단순한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기하 무늬가 주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40~35세기의 물표 표면 문양이 대부분 선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무늬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이나 염소의 모양이 새겨져 있는 인장도 있다. 원통형 인장에 여러 종류의 그림을 새겨 넣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기원전 30세기경 원통형 인장에 동물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이나 연회(宴會)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황소나 뱀, 전갈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전갈이 나오는 것은 추분에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별자리가 전갈자리이며, 추분에 추수절과 성혼례 의례 행사를 했다는 사회 풍속을 보여 준다. 독수리를 타고 나는 장면이나 용사가 황소와 싸우는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영웅전의 내용을 인장 그림에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 수호신이 예배자의 손을 잡고 앉아 있는 큰 신에게 인도하는 내용도 있다. 인장에는 신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달신은 초승달로 상징되며 바빌로니아의 최고신 마르둑은 바다의 용을 누르고 서 있는 호미 모양으로도 나온다. 고대 이집트 문화의 영향권에 가까이 있었던 지중해 연안 동쪽 지역에서는 쇠똥구리 모양의 인장이 많이 발굴되었다. 쇠똥구리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의식(儀式)에 자주 사용하였던 것으로 '되다, 만들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신들의 아버지, 천지 만물의 창조주로 언급된다. 두 날개를 편 쇠똥구리 모습이 새겨진 인장은 지중해 동쪽 연안 지역에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처럼 인장에 새겨진 것은 다양한 종류의 그림이며 점차 소유주의 이름도 명기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인장 : 고대 근동의 우월한 문명권의 교차 지역에 위치했던 이스라엘에서도 인장이 사용되었으며, 소유주의 이름뿐 아니라 신적인 그림을 그려 넣었다.
기원전 8~7세기의 이스라엘과 유대 왕국 지역에서 출토된 히브리 이름의 인장 약 700여 개가 출토되었다. 이 중에 이름과 함께 신상(神像)을 그려 넣은 인장은 전체의 10%도 안되고 500여 개에는 오직 이름만이 새겨져 있으며 나머지 중 대부분이 빈 공간을 꽃무늬 등 장식으로 채웠다. 그렇지만 인장에 황소, 사자 등 동물상이나 신상을 새겨 넣는 풍조가 기원전 7세기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신은 형상으로 표상될 수 없기에 신상들을 부수고 신당을 허물었던 유대 왕국의 왕 히즈키야(기원전 716~687)와 요시아(기원전 640~609) 시대의 종교 개혁 지도자들은 인장에서도 신적인 그림을 뺄 것을 종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7세기경에 유대 왕국에서 사용되었던 인장으로 찍은 봉니(封泥)에는 대부분 이름만이 나온다. 봉니는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감아 묶은 끈에 부드러운 점토덩이를 부착하여 그곳에 인장을 찍어 눌러 만든 것이다. 점토인의 뒷면에 파피루스에 눌린 섬유질의 무늬와 파피루스에 묶은 끈의 모양을 보여 준다. 봉니의 가장자리에 때로는 날인하기 위해 인장을 잡은 사람의 지문이 보인다. 다양한 문서의 증인들이 각자 자기의 이름을 봉니에 날인한 것을 알 수 있다. 봉니가 되어 있는 파피루스나 양피지는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봉니는 이스라엘의 지도층 사람들이 사용했으며, 그들의 인장에 이름만을 명기한 점은 당시 주변 국가에서 발견된 신상이 그려진 인장들과 비교된다. 이를 통해 기원전 7세기에 유대 왕국에서 신상을 부수는 종교 개혁이 진행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 참고문헌  안성림 편, 《다윗의 도시와 성서의 세계》, 중앙일보 · 예술의 전당, 1998/ D. Collon, First Impressions. Cylinder Seals in the Ancient Near East, London, 1987/ 0. Keel . C.Uehlinger, Gottimen,Gotter und Gottessymbole, Fribourg, Herder Verlag, 1992 ; Gods, Goddesses, and Images ofGod in Ancient Israel, Fortress Press, 1998. [安星林]
(교회에서의 의미〕 성서적 의미 : 이스라엘 민족은 타민족의 영향으로 인장을 사용하였다. 이집트 파라오는 자기의 옥새 반지를 요셉에게 끼워 주어 그를 이집트의 통치자로 삼았다(창세 41, 42). 페르시아의 아하스에로스왕 때 하만은 각 민족들에게 보내는 칙서를 받아쓰게 한 후 왕의 이름으로 서명하고 왕의 인장 반지로 봉인하여 발송하였다(에스 3, 12). 다리우스 왕은 다니엘을 사자 우리에 넣고 그 우리의 문을 막은 다음 돌에 봉인하여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다니 6, 17).
봉인된 문서는 증거 문서이며(이사 8, 16), 합당한 권한이 있는 당사자에 의해서만 개봉될 수 있다(묵시 5, 2-9). "저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봉인한 다음, 증인들을 세우고 그 은을 저울에 달았던 것입니다"(예레 32, 10. 44).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제자들이 옮겨가지 못하도록 봉인되었다. "그들은 가서 돌을 봉인하고 경비대로 하여금 묘소를 단단히 지키게 하였다"(마태 27, 66). 인장의 단순한 소지는 위임권을 상징하기도 한다(창세 41, 42 ; 에스 3, 10 : 마르 6. 15 참조). 성서에서 '인장' 이란 말은 "보증, 확증, 기밀" 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신명 32, 34 :로마 4, 11 참조).
교회법적 의미 : 교회법에서 인장(Sigillum)은 교회 문서의 공신력을 드러내는 공적인 도장이다. 이 도장은 개인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직무상 사용되기에 직인(職印)이라고도 불린다. 교회법에 의하면 "본당사목구마다 고유한 인장이 있어야 한다." 이 인장은 공문서에 사용되는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교회법적 신분에 관한 증명서는, 법적 중요성이 있을 수 있는 모든 기록 문서와 마찬가지로, 본당 사목구 주임 본인이나 그의 대리자에 의하여 서명되고 본당 사목구의 인장으로 날인되어야 한다"(교회법 535조 3항).
신자들의 교회법적 신분에 관한 증명서에는 세례 증명서, 견진 증명서, 혼인 증명서, 교적 등의 문서가 있다. 이 문서들이 교회의 공문서인데 "교회의 공문서들은 공인이 교회 내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법으로 규정된 요식 행위를 지켜 작성한 것들이다"(1540조 1항). 이 공문서들이 그 내용에 대하여 공신력을 가지려면 합법적인 권한자나 그 대리자에 의하여 고유한 인장으로 날인되고 서명되어야 한다. 날인과 서명은 필수 요건으로써 날인이 누락되거나 혹은 서명이 누락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 참고문헌  정진석, 《교회법 해설》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93/ J.A. Coriden · T.J. Green . D.E. Heintschel, A.A., The Code of Canon Law, A text and Commentary, The Canon Law Society of America, Paulist Press, New York, 1985/ T.H. Weber, (NCE) 13, pp. 13~14/ 0. Tufnell, 254~259. [宋悅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