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적 편견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갈등.
[개념과 정의] "신체적 특성에 의해 분류한 인류의 종별"이라는 의미를 지닌 인종(人種)이라는 용어는 16세기 초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연대기적인 질서' 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라시오"(atio)에서 유래되었다. 본래 이 용어의 논리적인 의미는 생물학적인 어의(語義)를 지닌 것이었으나, 후에 동일한 혈통 내에서 조상들과 후손들을 상호 연결시키는 생물학적 · 심리학적인 특징의 총체로 이해되었다. 오늘날 인종이라는 용어는 타자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고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종주의(人種主義, racialism)와 인종 차별을 구별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종주의는 어떤 가치나 접근 · 참여를 결정하기 위해, 또 이 같은 기준에 의해 다른 사람을 여기서 배제시키기 위해, 인종적이거나 자기 민족 중심적 특성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종주의는 반드시 우열의 가치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은 인종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사람이 인종을 이유로 다른 사람과 교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인종 차별은 사회적 실체이며 정치적 · 경제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근거인 정치 이념(ideology이다. 인종 차별의 이념은 민족 중심적인 특성에 가치를 부여하며, 생물학적인 특성과 문화적 특성 사이의 결정적인 관련을 주장한다. 또한 인종 차별은 권력에 관한 것이다. 하나의 이념으로서의 인종 차별은 지배 집단이 인종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며, 다른 사람이 의사 결정에 영향력있게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고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그들을 착취하려는 수단이다.
하지만 인종 차별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않다. 그 이유는 첫째, 인종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민족들을 중심으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종 차별이란 때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차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둘째, 인종 차별은 확실하게 정립된 하나의 과학적 이론이기보다는 전후 연결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이론과 신념, 견해 및 행동 양식들의 종합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종 차별이 보편적 자연 현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님을 의미한다. 즉 인종 차별이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사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개체로서의 자아와 타자를 구분하고, 내가 속해 있는 인종과 다른 인종이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이 경우 인종은 단순히 차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그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를 수반하기 때문에 별다른 위험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셋째, 인종 차별은 내가 속해 있는 인종이 다른 인종과는 구분된다는 인식을 토대로, 자신이 속해 있는 인종이 어떤 손해를 입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고 뚜렷하게 입증하려는 목적으로 타인의 공포심을 자극하던가 혹은 타인을 공격하려는 욕망에 의해 야기된 태도들인 동시에 행위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인종이라는 용어 그 자체내에 차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과는 다른 인종이라는 이유가 그 인종에 대한 공격의 이유와 정당성으로 나타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주의(主義)로서 인종 차별의 개념이 형성된 16세기 이래, 그 개념은 생물학적인 차이점들에서 그 근거를 발견하였다. 또한 그러한 차이점들은 심리적이거나 혹은 문화적인, 실질적이거나 혹은 상상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인종 차별의 개념에는 생물학적, 실질적 혹은 상상적 차이점들을 지닌 보다 중요하고 일반화된 가치가 부여된다는 점이다. 특히 그러한 차이점들은 유전된다는 믿음이 수반되기 때문에 하나의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지적으로 ·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며, 따라서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도출된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인종 차별 : 선민 의식] 구약 및 신약성서에서 인종은 곧 민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외모와 관습이 아닌 하느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민족의 구별이 이루어진다. 즉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은 아브람에게"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되리라.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에게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라.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창세 12, 1-3)고 하였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유대 민족의 배타적 선민 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즉 "유대인들은 수호자를 모시고 그분께서 명령하신 법을 따르기 때문에 결코 침해할 수 없는 민족이라고 선언" (2마카 8, 36)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민 의식은 먼저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대 민족 내에서는 상호 손해를 입히던가 혹은 공격을 해서는 안되며,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난다. 즉 "네 동포들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동포들에 대하여, 네 겨레의 아들딸들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교만한 마음을" (토비 4, 13) 품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 모세는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나무라며(출애 2, 13),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는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출애 2, 11-12)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 동족을 무자비하게 학살" 하였으며, "동포들을 희생시켜 얻은 성공이 가장 큰 불행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승리가 적군을 누르고 얻은 것이지 동족을 누르고 얻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2마카 5, 6)하였던 야손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또한 "제 이웃에게 거저 일을 시키고, 아무런 품삯도 주지 않" (예레 22, 13)거나, "사람들의 살갖을 벗겨 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 내" 고 "살을 먹고 그 살갖을 벗기며 그 뼈를 바순다. 내 백성을 냄비에 든 살코기처럼, 가마솥에 담긴 고기처럼 잘게 써는"(미가 3, 2-3) 사람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둘째로, 이 선민 의식은 유대 민족을 다른 민족의 공격으로부터 수호해야만 하는 사명으로 이어진다. 즉 유대인들은 "아이들이 잡혀 가지 않게, 여자들이 끌려가지 않게, 자기들이 상속받은 성읍들이 파괴되지 않게, 성소가 더럽혀져 치욕스럽게도 이민족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유딧 4, 12)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우리 민족과 성소가 잘못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다"(1마카 3, 59)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의 선민 의식은 이방인들의 생활 풍습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난다. 즉 "이방인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리고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행동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고 악을 저지르는" (1마카 1, 14-15) 것이었다. 이방인들의 생활 풍습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같은 민족들 중에서 "아내를 택"(토비 4, 13)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민족인 "그들의 딸을 아내로, 또 며느리로 맞아들입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씨가 이 지방 백성들과 섞이는데, 수령들과 관리들이 이 배신에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에즈9, 2)라는 보고에, 에즈라는 "저희가 당신의 계명들을어기고, 역겨운 짓을 저지르는 이런 백성들과 통혼하였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에즈 9, 14) 하고 한탄한다. 이는 선민인 유대 민족의 순수성이 퇴색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특히 에즈라의 이러한 탄식은 유대 민족의 선민 의식이 단순히 민족의 구분이라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20세기 나치에 의한 유대인 차별과 상당히 유사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근대 그리스도교 국가들에서의 인종 차별]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유대인들의 선민 의식은 구약 시대에 비해훨씬 약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나는 혈통상으로 나의 동족인 나의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로부터 갈라져 기꺼이 저주라도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아들 되는 자격과 영광과 계약들과 율법의 제정과 예배의 언약들이 다 그들의 것" (로마 9, 3-4)이라는 바오로의 고백은 구약성서적인 선민 의식의 발로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의로움을 추구하지 않던 이방 민족들이 의로움을 받았다" (로마 9, 30)는 상황에서 유대인들의 회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그런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 (마태 12, 50)라는 예수의 선언이나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대한 예수의 태도(마태15, 21-28)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만 한다. 즉 인종 혹은 민족이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소유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서양 중세 시기에도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중세에는 서로 다른 인종 간의 접촉과 이해의 대립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의 인종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누구든 사람으로 태어나는 자는, 즉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은 그의 피부색, 행동, 목소리가 달라도····한 조상의 자손임을 의심할 수 없다"는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의 이론에 기초한 단일 인종 기원설은 세계의 다양한 민족을 생물학적이 아닌 종교적으로 구분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다른 인종이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인종이나 민족이 사악한 존재, 징벌해야 할 존재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 소위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지자, 단일 인종 기원설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유럽인들은 그 원주민들이 사람일까 아니면 짐승일까 하는 논쟁은 물론, 그들이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에 합당한가 하는 논쟁을 제기하였다. 신학적인 논쟁을 거쳐 1537년 교황 바오로 3세(1534~1549)는 그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교서를 발표하였으나, 상당수의 유럽인들이 갖고 있었던 의구심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으로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침탈하려는 목적을 지닌 유럽인들에게는 원주민들이 인간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선언은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하위"에 있으며 사악한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아메리카에서 포르투갈이 "문명화를 위한 선교 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이 활동을 통하여 그들은 정복과 유럽적인 제도의 합법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고 판단된 한 집단이 열등하다고 규정된 다른 집단을 공격하고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은 식민지 개척의 시초로 인식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열등함만이 아니었다. 사악함 역시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의 주요한 요소였다. 유럽인들은 그 요소의 근거를 구약성서의 노아와 세 아들의 이야기에서 찾았다. 즉 흰 색은 하느님 · 순결 · 덕성 · 아름다움 · 은혜로움 등을 상징하지만, 검은 색은 악마 · 더러움 · 죄악 · 비열함 · 추함 · 사악함 등을 상징한다는 믿음이 제기되었다. 사악함은 처벌 혹은 교정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행위는 종교적 임무로 간주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더욱이 17세기 중반에 백인과 유색 인종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창조되었다는 인종 다원설까지 등장하였다.
이처럼 근대 초기에 인종 차별과 관련된 많은 주장이 등장하였지만, 그리스도교적인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18세기에 "역사를 지닌 그리스도교인들은 문명인이며, 유일신 개념과 역사와 발전을 결여한 이교도들은 야만족"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점차 힘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으며, 세속적 학문에 기초한 인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적 단일 인종 기원설과 인종 다원설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과학적 인종주의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는데, 즉 학자들은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기초로 인간은 모두 한 조상의 후손들이지만 양한 인종이 존재하는 것은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와 인류는 조상이 다른 여러 인종으로 구성되었으며, 인종간의 차이는 유전되는 형질 때문이라는 견해 사이의 논쟁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그 논쟁의 실질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양측의 견해 모두 흑인, 나아가 유색 인종의 열등함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 열등함을 과학적 이론으로 입증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 차별에 관련된 주장은 19세기에 등장한 민족주의 및 제국주의와 함께 더욱 발전되고 확산되었다. 특히 다원(C.R. Darwin,1809~1882)의 진화론과 결합된 인종 차별주의는 전승국이 패전국의 영토와 국민을 지배할 권한의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또한 열등하다고 판단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을 문명화시키는 작업은 우수한 인종인 백인의 사명감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개척의 중요한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우월한 인종과 열등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파급된 결과 나치 독일에서는 유대인의 강제 수용과 민족 학살로 이어졌으며,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보다 열등하다고 판단된 민족들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주도권을 합법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슬라브 국가들에서의 범슬라브주의 운동은 문학, 풍속 및 언어를 통하여 우월성의 증거를 찾으려 시도하였다. 그러한 우월성은 유대인 학살을 인정하거나, 심지어 그러한 학살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앵글로색슨 국가들 역시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생학에 관한 갈튼(Anglais Galton, 1812-1911)의 연구 결과에 따라, 앵글로색슨 학자들은 20세기 초부터 런던에 모여 백인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지도 모를 다른 종족들의 증가를 저지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방법을 논의하였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인종학적 십자군을 장려하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 우월주의가 그 제도적인 토대를 마련하였다.
[교회의 입장]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 4. 11)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인종 차별은 적어도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인간 사회의 건설을 위해 대단히 큰 의미를 제공한다. 인간이 권리들을 의식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그들 의무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권리들의 소유는 이 권리들을 이행할 의무를 포함하는데, 바로 인간들은 인간적 존엄성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인간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4항). 이를 통해 교황은 존중받고 싶다면, 다른 이들도 존중하라는 논리를 통해 모든 인간은 타고난 존엄성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한편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 3. 26)에서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을 위한 공정한 통상 관계를 언급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인종 차별주의는 새로 독립한 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새로 독립한 국가에 있어서 부족이나 정당의 대립 속에 숨어 있는 인종 차별주의는 정의를 크게 해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 차별주의가 식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건설적인 상호 이해를 방해하였으며 실제로 당하는 모욕에 대해서 심한 원한을 품게 하였다. 인종 차별주의는 또한 후진국들 사이의 상호 협력을 방해하고 국내에 있어서도 개인이나 가족들이 인종이나 피부색 때문에 억울하게도 다른 시민들의 특권 범위에서 제외되고 불가침의 인권마저 무시당할 때마다 불화와 미움의 씨가 되곤 하였다"(63항). 교황은 이 회칙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간략히 하였다. 이를 통해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인종 차별은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함을 밝혔다. 또한, 교서 <팔십 주년>(Octogesima adve-niens, 1971. 5. 14)에서는 "민족적 차별을 묵인하거나 인정하는 법을 유지하거나 새로 제정하거나 민족적 선입견에 의거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절대로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며 극력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동일한 본성을 가졌고, 따라서 같은 존엄성과 같은 권리와 같은 기본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동일한 초자연적 목적에로 부르심을 받았다"(16항)고 하였다.
[의 미] 과학적 토대가 희박한 혹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종 차별은 세계의 각 지역적인 특수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결국 생물학적 우월성이라는 명목으로 하나의 민족 집단이 폭력과 살인을 비롯한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이용하여 다른 집단을 억압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인종 차별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절망적으로 되어 감에 따라서 인종주의가 개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집단의 정체성을 제시해 주고, 그럼으로써 더욱 호소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족 차별을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책임을 전가하고 호도하는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이는 다수 민족의 영향력을 집권자에게 결집시키는 동시에, 집권자 개인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민족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다수의 민족이 그 이념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는 것, 나아가 그 이념 자체를 제거하는 것은 여전히 세계 사회의 의무이고 노력이자 교회의 임무로 남아 있다.(→ 노예 제도 ; 민족 말살)
※ 참고문헌 Albert Memmi, 《EU》 19, pp. 438-440/ Michael Banton,Racial Theories, New York, 1990/ David Theo Goldberg (ed.), Anatomry of Racism, Minneapolis, 1992/ Dominick Lacapra (ed.), The Bounds ofRace : Perspectives on Hegemomy and Resisatmce, Ithaca and London, 1991/ 황혜성, <인 종주의>, 김영한 엮음, 《서양의 지적 운동 Ⅱ》, 지식산업사,1998, pp. 253~2791 <교회와 사회 -사회 교리에 관한 교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邊琪燦]
인종 차별 人種差別 [라]racismus [영]ra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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