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의
教義
〔라 · 영〕do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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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적 전승은 성서에 이어 교의를 이루는 제2의 신앙 원천이다.
교의는 본래 그리스도교계의 고유한 전문 용어가 아니라, 이교적 고대 세계에서 받아들여져 널리 쓰이게 된 말이다. '교의' 라는 뜻의 라틴어 '도그마' (dogma)는 그 리스어 '도그마' (δόγμα)와 동의어이고, 그리스어 동사 도케인(δοκεῖν)에서 나왔다. 고대 비그리스도교적 그리 스 사회에서 이 단어는 타동사 '~이라고 믿는다' 와 자 동사 '바르게 보이다' 라는 의미와 함께 '결의하다' 같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이 동사에서 나온 'δόγμα' 역시 먼 저 만인들에게 바르게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견해나 교설 (敎說)을 가리킨다(Platon, Sophistes 265c ; Theaitetos 158d ; Politeia 538c). 그래서 철학과 의학 같은 학문 분야에서 과 거로부터 전승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분야와 관련되는 학설 명제들을 '교의들' (δόγματα)이라고 불렀으며, 라 틴어로 'scita', 'placita', 'decreta' 등의 말로 번역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학파는 각기 나름의 교의들을 갖는 다. 한편 'δόγμα' 는 황제나 왕, 또는 법적 상급자의 결의 나 지시 사항으로 칙령 내지 법령과 같은 정치 · 법률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Platon, Nomoi 644d, 926d). 고대 그리 스 사회에서 이 말은 대체적으로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 되었다. 〔개념사〕 성서 : 70인역 성서에서 '교의' 라는 단어는 다니엘서(2, 13 ; 6, 10)와 에스델서(3, 9. 48)에 등장한 다. 여기서 교의는 '칙령' 과 '법령' 의 정치 · 법률적 의 미로 사용되고 있다. 임금의 명령으로서 교의들은 상부 로부터 하달되기 때문에 변경해서는 안된다. 헬레니즘적 유대교에 속했던 필로(Philo, +42)는 '교의' 를 재판 선고 나 판결, 또는 기본법과 동의어로 사용하였다(Legatio ad Caium I 54 이하). 플라비우스 요셉(Flavius Josephus, +100 경) 역시 같은 취지에서 유대교 성서 내용을 '하느님의 교의들' (θεοῦ δόγματα)이라 하였다(Contra Apionem I 42 ; Antiquitates Iudaicae 15, 136). 철학자들의 인간적 '교의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율법은 하느님께로부터 오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교의' 는 다섯 번 등장한다. 먼저 70인 역 성서와 연결되어 정치 · 법률적 성격을 지닌 '칙령' 내지 '법령' 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루가 2, 1 ; 사도 17, 7). 그리고 바오로의 서간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 양(止揚)된 구약의 율법을 지칭했다(에페 2, 15 ; 골로 2, 14). 이들보다 내용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의 사항들이 교의를 뜻하는 '도그마들' (δόγματα)로 지칭된 사실이다(사도 16, 4 : "바오로 일행은 ···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δόγμα]들을 전해 주며 지키라고 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교의' 는 '신앙과 윤리 문제에 서 구속력 있는 지침' 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사도 회의 의 직접적인 관건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 스도인들의 공동 생활과 관련된 규율적이고 윤리적인 결 정들로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 미에서의 교의 결정은 아니었다. 신약에서 교의는 그리 스도교의 주요 교리를 나타내는 결정적 개념이 결코 아 니었다. 이 시기에는 후대에 전문 용어가 된 교의 개념 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교의의 원초 형식' 이었다. 성서 전통 안에서는 '신앙'(fides, πίστις), '교리'(doctrina, διδασκαλία) '고백'(professio, ὁμολόγησις)과 같은 다 양한 개념들이 '교의' 에 해당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오로는 '신앙' 개념을 그리스도의 메시지, 교리, 그리 고 원리로 이해하였다. 사목 서한들은 신앙을 교회로부 터 전승된 정통 교리로 이해하였다. "예수는 주님이시 다" (1고린 12, 3 ; 필립 2, 11 ; 로마 10, 1)와 같은 고백 정 신이 교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유설(謬說)에 대치되는 진리가 성서에서는 정통 교리(1디모 6, 5 ; 2디 모 2, 18 ; 3, 8 ; 4, 4 디도 1, 14)를 뜻하고 교의 개념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교부 시대 : 사도적 교부와 교부 시대에도 교의 용어 는 여전히 모호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교회는 교리 교육과 복음 선포, 그리고 신앙 옹호를 위해 신자 들이 믿어야 할 바를 명제로 확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 다. 이러한 필요에서 형성된 교회의 그리스도 신앙 고백 이 교의의 원천적 형태이다. 사도적 교부들은 교의 개념 을 예수 또는 복음의 가르침과 지시에 적용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주(主)와 사도들의 교의들'에 관하여 언급하였다(Magnesia 13, 1). 발라바 서 한에는 '주의 교의들'이란 표현이(Barnabas I, 6), 디다케 에는 '복음의 교의'와 같은 말이 등장한다(Didache 11, 3) .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게 '주와 사도들의 교의들' 은 주교와 신부, 그리고 부제들과 연결되어 파악되었다. 즉 그에게는 교의와 '주교에의 충실' 이 거의 같은 의미로 여겨졌다. 사도적 교부 시대의 호교가들은 그리스도교적 교의를 이교적이거나 철학적인 교의와 바꾸었다. 예컨 대, 오리제네스(Oigenes, +254)는 하느님의 교의를 인간 적 교설과 구별하였고(Περὶ ἀρχῶν 4. 1 ; Contra Celsum 1, 7 ; 3, 39), 이 통찰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유 지된 기본 통찰이었다. 복음과 주교에 의해 주도되는 교회의 진리 사이의 연 관성은 교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진리의 정경 (canon) 개념의 도움으로 이레네오에게서 광범하게 계발 되었다(Adversus haereses Ⅲ 3, 13 ; IV 33, 8). 체사레아의 에 우세비오(Eusebius Caesarea)와 같은 호교가에게는 교의가 그리스도교 교리이고 교회 내지 공의회의 지도 사항들이 었다(Historia Ecclesiae II 2. 6 ; II 43, 2 ; V 23, 2). 초기 공 의회들의 결의 사항들은 '하느님의 정통 교의' 들로서 로 마 제국의 법령으로 선언되기도 하였다. 니체아 공의회 는 '교의들' 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교회적 법령들을 뜻하 였다(DS 127). 그리하여 의회 등을 통하여 교의에 해당 되는 신앙 대상이 교리 진술의 정식(定式)에 담기게 된 것이다(칼체돈 공의회, DS 301 : "우리는··· 고백되어야 한다 고 가르치는 바이다"). 하지만 사도적 교부 시대에는 교의 단어가 그리스도교적 교리를 나타내는 전문 용어로는 확정되지 않았다. 교부들은 이 말을 유설(謬說)의 의미로도 사용하였다. 교부들은 그노시스주의와 아리우스주의 등 여러 이단자 들의 '교의들' 에 대해 언급하였다. 테르툴리아노는 교 의' 를 철학적 이론의 의미로 사용하였고(De anima 33, 1), 아우구스티노와 암브로시오 같은 교부들은 이단설을 뜻 할 때 '교의' 를 사용하곤 했다(Contra mendacium 4 ; PL 40, 523). 즉 반신적(反神的)이고 그릇되며, 이단적이고 도 착된 '교의들' 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가 일반적 으로 사용된 후 교회 문헌에 수록되었다(Ds 354 ; 520). 레린의 빈첸시오(Vincentius Lerinensis)는 성서의 권위 와 전통 원리에 의거하여 교의 개념을 신학적으로 규정 하는 데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하였다. 그에게 교의란 본 질적으로 신적이고 교회에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 으로 양도된 계시 진리를 뜻하였다. 그는 이단자들의 유 설과 대치되는 '신적이고 천상적이며 교회적인 교의' 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에게는 '어디서나, 항상, 그리고 만 인으로부터 믿어지는 것' 이 '가톨릭 교의' 로 참된 교의 였다(Commonitorium, c. 2, 5). 그는 교의를 계시 진리와 신 앙의 유산과 동일시하였다. 그런데 빈천시오는 자체적으 로 불변하고 이미 주지된 신앙 자산으로서의 교의가 적 정 한계 안에서, 즉 같은 교의와 같은 의미 그리고 같은 견지로' 개인과 전체 교회 안에서 연령과 시간의 단계에 따라 보다 깊이 이해되고 보다 명료하게 정식화될 수 있 는 한에서 교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Commonitorium primum, c. 23 ; DS 3020). 중세기 : 고 · 중세기에 교의 용어는 신학적으로 드물 게 사용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적 교의들' (divina dogmata)이나 '그리스도의 교의들' (dogmata Christi)에 관 해 언급하면서도(STh Ⅱ, Ⅱ,q. 86,a. 2 ; Ⅱ, II ,9. 11, a. 1), 이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보나벤투라는 이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기의 신학 자들은 '교의' 대신 '신앙 조문' (articulus fidei)이라는 용 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신앙 조문들은 신경(信經, Symbolum)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부분들이다. 토마스에 따르 면 개별적인 신앙 명제로서 '신앙 조문은 자신을 지향하 는 신적 진리가 파악된 것' 이다(STh Ⅱ, II , q.1,a.6). 토마스는 신앙 조문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들을 다 음과 같이 말하였다. 첫째, 신앙 조문들은 직접적이고 공식적으로 계시된 진리여야 한다. 이것은 모든 계시 진 리들이 신앙 조문들이 아님을 뜻한다. 둘째, 신앙 조문 들은 신앙과 생활에 기초가 되는 계시 진리들이어야 한 다. 즉, 신앙인들을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 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지상에서의 신앙의 중요한 내 용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조문이 되는 진리 들은 신경에 속해야 한다. 그러나 신경과의 유대성이 12 내지 14명제와의 자구상(字句上)의 연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신경에의 소속성은 모든 신자들을 하나의 신앙 고백에 결합시키는 교회 교도권의 성대한 결정을 나타낸 다(STh II I,q. 1, q. 6,q. 8). 여기에 신앙 조문이 포괄적 '가톨릭 신앙' 이나 '가톨릭 진리' 와 구별되는 개념임이 드러나며, 한편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전문 용어로서의 교의 개념이 형성되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의'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오늘 날 사용되는 의미로 확정,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때의 '교의' 는 하나의 확고한 신앙 규범, 하나의 확실한 진리, 교회의 전승(DS 1505), 또는 그릇된 유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Ds 1825 ; falsum dogma) 루터(M. Luther)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은 초대 교회 의 교의적 결정들을 내용상으로는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을 교회보다 우위에 놓고 신앙의 원천이자 규범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쟁점을 해결하는 데 최종 요체(要諦)로 규정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하느님 말씀이 신앙 조문을 설정해야지 그 밖의 어느 누구도, 천 사마저도 그럴 수 없다" (Kritische Ausgabe WA 50, 206)고 하 였다. 하느님 말씀이 외적으로 교회의 언명을 통해서 자 신을 제시하지만, 교회가 점유할 수는 없다. 루터에 의 하면 공의회 역시 이미 자주 오류를 범하였으며, 교황은 하느님 말씀을 구속력 있게 주석하여 자신을 그리스도 대신에 교회의 우두머리로 삼았기 때문에 반(反)그리스 도이다(WA 18, 629 ; 50, 245). 신경과 초대 교회의 교리 결정이 인정되는 것은 교회로부터 확인되었기 때문이 아 니라 '그것이 하느님 말씀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WA 30/2, 687). 스페인의 스콜라 신학자 카노(M. Cano)는 교의 개념을 보다 명료하게 신학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과 그리스도의 고성소행과 같은 '신앙의 교 의' (dogma fidei)들이 교회의 전통에 입각하여 형성된 사 실로서 교의를 구성하는 요소로 사도적 전승을 지적하였 다(Loci theologici Ⅲ). 카노에 의하면 교황으로부터 확인된 공의회의 결정, 교황이 친히 이룬 교리 결정, 모든 신자 들이 전통을 통하여 합심하고 지속적으로 고수한 모든 것이 '신앙의 교의' 로 간주될 수 있다(Loci theologici X Ⅱ, c.5). 그는 이러한 교의의 반대 명제를 이단(haeresis)으로 지칭하면서 사도적 전승을 성서에 이어 제2의 신앙의 원 천으로 여겼다. 교의 개념은 크리스만(P.N. Chrismann, 1751~1810)에게 서 결정적으로 계발되었다. 그는 "신앙의 교의는 교회의 공식 결정에 따라 신적 신앙으로 믿어야 한다고 선언한 신의 계시 교리이며 진리이기에 반대되는 것은 교회로부 터 이단 교설로 단죄될 것이다" (Regula fidei catholicae,c. 5)라 고 하였다. 교의에 대한 크리스만의 이러한 규정은 제1 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거의 글자 그대로 수용되었다(DS 3011). 근세 : 교의 개념은 19세기에 접어들어 고대와 중세 교회의 발전 기반과 인간 이성의 무제약적 자율성을 내 세우는 근세적 시대 조류에 대한 투쟁의 입장에서 교회 에 의해 결정적으로 정립되었다. 이때 교의의 형식적 권 위보다 구체적으로 교의를 결정하는 교도권(敎導權)이 교의를 구성하는 결정적 요소로서 고대나 중세보다 더 강력하게 부상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근세의 새로운 사상 조류의 대 두에 직면하여 레린의 빈천시오의 통찰을 수용하면서 교 의를 개념적으로 확정 선포하였고, 이 공의회에 이르러 서야 비로소 교의는 신학과 교회의 확고한 전문 용어로 정착되었다. 빈천시오가 교회에 위탁된 신앙 유산을 교 의와 동일시한 것에 비해 이 공의회는 '교의' (dogma)와 '유산' (depositum)을 명료하게 구별하였다. '유산' 은 교 회에 위탁된 계시의 총체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교의'는 교회를 통한 하느님 말씀의 진정하고 권위적이며 무 류적(無謬的)인 선포 또는 성대한 결정에 의한 특정 계 시 진리의 의미로 규정되었다. "기록되었거나 전승되어 온 하느님의 말씀 안에 포함된 것, 교회로부터 성대한 결단을 통해서나 통상적이고 일반적 교리 선포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계시된 것으로 믿도록 제시된 모든 것을 신적 ·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할 것이다" (DS 3011 ; 3020 ; 3041 ; 3073). 그래서 교황의 무류권(無謬權)에 관한 구속력 있는 교리를 나타내기 위해 교의 개념을 사 용하였다(DS 3041 ; 3073). 이러한 교회 결정을 거스르 는 입장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배척하였다(교회법 751조). 한편, 이러한 교의 개념은 프로테스탄트의 자유주의 신 학이나 가톨릭의 현대주의(modernismus)에서 논란 거리 가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자 하르낙(A.V. Harnack)은 '복 음은 하나의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하나의 기쁜 소식이 고 성령의 능력' 이다. 이에 비해 교의란 '복음의 기반 위 에서 이루어진 그리스 정신의 작품' 이라고 부정적으로 규정하였다(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I 20 ; I 48ff ; Ⅲ 901). 하르낙은 루터가 교의의 형식적 외적 권위를 분쇄 함으로써 낡은 교의적 그리스도교를 철폐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복음적 입장을 정립하였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티 즘은 복음의 화석화된 정식인 교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동 Ⅲ 689 ; 692 ; 861)고 하였다. 현대주의자들(A. Loisy · G. Tyrell · E. Le Roy)은 교의를 도 달 불가능한 절대 진리에 대한 원천적 종교 체험의 추가 된 상징 표현이라고 하였다. 현대주의자들에게 교의는 이론이 아니라 실용적 의미를 지니는, 종교적으로 올바 른 처신을 하기 위한 지침이었다. 그 밖에도 교의는 역 사적으로 다양한 삶의 표현으로써 변화 가능하며, 항상 반복해서 새로운 적응을 필요로 한다고 파악하였다. 교 회 당국은 현대주의가 신앙과 교의의 불변성을 의문시한 다고 보아 1907년에 반포된 교황 비오 10세의 교령 〈Lamentabili)와 이어 반포된 회칙 〈Pascendi Dominici gregis>와 같은 문헌들을 통해 단호하게 정죄하였다(Ds 3101~3466 ; 3475~3550). 현대 : 20세기 가톨릭 신학은 교의의 '역사성' 의 주제 를 주로 논하였다. 교의의 역사성 논의는 가톨릭 튜빙겐 학파(J.S. Drey · J.A. Möhler · J.E. Kuhn · F.A. Staudenmeier)와 뉴 먼(J.H. Newman) , 그리고 블롱델(M. Blondel) 등이 준비 하였다. 교의와 역사의 관계를 둘러싼 신학적 논의는 현 대주의의 취지를 성서와 교부 전통에 따라 보다 깊고 새 롭게 취급한 '신신학' (新神學, théologie nouvelle)을 통해 교회 안에서 커다란 현실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교 회 당국의 반발이 있었지만(Ds 3882 이하) 여러 신학자들 (K. Rahner · H.U.v. Balthasar · E.Schillebeeckx 등등)이 계속 취급 하고 있다. 교의를 둘러싸고 제기된 문제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 회에 나름대로 영향을 미쳤다. 이 공의회는 공식 발표 내용을 좁은 의미에서 교의적으로가 아니라 사목적으로 진술하였다. 물론 동방 교회가 기본 교의들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진술 등을 통해 교의적 전통을 확인하 였고(일치 14항), 교의적 비중을 지닌 진술들을 발표하기 도 하였다(교회 25항). 그러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처럼 교의 개념을 사용하여 결정적인 진술을 하지는 않 았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와 교회 신앙이 오랜 세월 동안 교회 안에서 그래 왔듯이 사물적으로보다는 인격적 이고 전체 구원적으로 이해되었다. 그 밖에 교의 진술의 역사를 명백히 인정하였다(사목 62항). 교의는 성서의 주 석에 기여해야 하는데 성서를 신학의 영혼으로 규정하였 으며(계시 24항 ; 사제 10항), 교도권이 하느님 말씀 밑에 위치한다는 매우 중요한 진술도 하였다(계시 10항 ; 일치 1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통주의자들의 비역사적 교의관과 교도권적 교의 명제의 무류성에 의문을 제기하 는 킹(H. Küng) 등의 입장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이 오늘 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 탈서구화의 취지로 형성되는 토착화 신학 안에서 교의의 '탈헬레니즘' 과 교의의 지속성에 대 한 의문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결국 교의 이해에서 지속적으로 관건이 되는 기본 문제는 보편적 진리 요청 을 내세우는 교의의 역사성에 관한 물음이다. 〔의 미〕 본질 : '교의' 는 19세기 교회의 전문 용어로 공식 확정된 이래 오늘날까지 교회 생활에서 결정적 중 요성을 지니고 사용되는 교리를 가리킨다. 교회는 구약 과 신약의 특정 내용을 계시 진리라고 공식 선포함으로 써 신자들에게 믿을 의무를 부과하였다. 고대 교회로부 터 현대 교회에 이르는 교의 개념 형성 과정에서 교의를 구성하는 두 개의 본질적 요소들이 부상한다. 하나는, 교의가 구약과 신약의 계시 진리로서 성서와 성전(聖傳) 에 포함된 진리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의 요소는, 이 진 리가 교회로부터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교도권을 통해서 혹은 공의회나 교황의 예외적 결정을 통해서 계시 진리 로 확정 선포된다는 점이다(DS 3011). 교의의 본질을 나 타내는 지표는 다섯 가지를 열거할 수 있다(Soll 20). : ① 내용 면에서 하나의 계시 진리이다. ② 형식 면에서 하 나의 교리 명제이다. ③ 객관적 타당성 면에서 하나의 무류적 신앙 진술이다. ④ 주관적 통용 요청 면에서 교 회 각 신자의 양심에 의무를 부과하는 지침이다. ⑤ 형 성 경위 면에서 역사 진행 속에서 교회를 통해 취해진 하나의 확정이다. 이해 : 교의는 협의의 의미로서는 그리스도교계 안에 서만 통용되는 전문 용어이다. 그런데 교의에서는 인간 의 구원과 상관하는 진리가 관건이 된다. 인간은 역사적 으로 제약된 언어와 언어 공동체의 매개를 통하여 이러 한 진리를 인식한다. 그리고 개인이나 집단은 사회적으 로 인정된 진리를 구원의 진리로 수락한다. 그런데 사회 적으로 인정된 진리란 구체적인 타당성을 지니는 명제로 정식화된 진리의 형태로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교의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역사적으로, 육신-구체적으로, 종말론적-궁극적 양식으 로 전달하여 인간의 비규정적 개방성을 궁극적으로 규정 하고 모든 것을 초극하는 양식으로 성취하였다는 신앙의 확신에 바탕을 둔다. 예수 안에서 드러난 진리는 하느님 과 인간에 관한 궁극적 진리이다. 교의는 이러한 복음적 진리의 명료화된 진술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인식되고 체험된 진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개별적 교의는 특정 시대에 특정한 환경에서 제기된 특정 문제에 대한 교회의 응답으로 형성되어 왔 다. 예를 들면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 개혁가들의 입장 에 대응하여 주로 이들을 배척하는 양식으로 교의 진술 을 하였다(DS 1551~1583 ; 1601~1630 ; 1651~1660 ; 1701~1719 ; 1751~1759 ; 1771~1778 ; 1801~1812).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내외의 합리주의적 입장에 대 응하여 이들을 배척하는 양식으로(DS 3021~3043), 그리 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현대주의적 주장들 을 배격하는 양식으로 교의 진술이 이루어졌다. 물론 1854년의 성모 무염 시태 교의나 1950년의 성모 승천 교의 선포는 하느님이 구원에 역사하심을 찬미하는 성격 이 현저하게 두드러져 있다(DS 2803 ; 3902). 이것은 교 의 일반이 시간적으로 제약된 진술임을 시사한다. 그런 데 초시간적이고 절대적 언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각 교의는 하나의 진술로서 하느님의 진리를 완벽하게 담지 못하여 교의로 표현된 내용은 형식을 능가하는 의 미를 지니게 된다. 구체적으로 각 교의는 형성된 시기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일차적으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한 하느님 진리의 내용을 초역사적으로 완전히 포괄 하지는 못한다. 교의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제기된 도전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한정될 수밖 에 없다. 그러므로 교의가 진리 요청을 내세우지만 하느님 진리 에 관한 모든 인간적 진술처럼 '유비적' (analogice)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유사함 (simillitudo)과 함께 보다 큰 비유사함(dissimilitudo)이 개 재하기 때문이다(DS 806). 교의는 중세의 '신앙 조문' 의 의미로서 진술된 진리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넘어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넘어가는 명제로 이해될 수 있다(STh II/II q. 1, a. 2 ad 2). 교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인식되고 생활화된 진리의 진술로서 바른 신앙의 징표이다. 교의는 '삶의 자리' (Sitz im Leben)를 교회 공동체 안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 교회 실천과의 연관 속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교의는 진술 양식의 인간적 형태와 상관하여 교회가 죄 인의 교회로 거룩하면서 항상 정화를 필요로 한다는 사 실과도 서로 관계가 있다(교회 8항). 교의도 죄의 추악성 과 인간 언어의 양의성(兩義性)을 모면하지 못한다. 교 의는 신적 진리를 지상의 그릇에 담는다(2고린 4, 7). 바 로 여기에서 역사성이 교의의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교의의 역사성은 인간 존재와 교회의 역사성에 정초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신앙인은 교의 의 진리성을 확신하면서도 전체 복음적 진리에 개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고려하면서 카스퍼(W. Kasper)는 교의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였다. "교의는 복음과 교제하 는 가운데 이루어진 교회의 역사적 체험, 성서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취된 체험의 결과이다. 이 체험은 자신 을 넘어 교회 안에서 복음을 통해 살아 계신 분으로 현 존하는 주님과의 새로운 만남을 지시한다" (Dogma unter dem Wort Gottes, 140) . (⇦ 교리) ※ 참고문헌 W. Beinert, Dogma, Dogmatische Aussage, 《LkD》, pp. 89~91/ A. Dulles, The Survival of Dogma, New York, Doubleday & Company, 1973/ M. Elze, Der Begriff des Dogmas in der Alten Kirche, 《ZThK》 61, 1964, pp. 307~350/ J.R. Geiselman, 《HthG》 1, pp. 225~241/ W. Kasper, Dogma unter dem Wort Gottes, Mainz, Matthias-Grünewald, 1965/ W. Kasper, Dogma/ Dogmentwicklung, 《NHthG》 1, pp. 176~193/ W. Kern . F.J. Niemann, Theologische Erkenutnislehre, Düsseldorf, Patmos, 1981, pp. 125~149/ G. Kittel, δογμα, δογματίζω, 《ThWNT》 2, pp. 233~235/ H. Küng, Unfehlbar? Eine Anfrage, Einsiedeln, Benziger, 1970/ P.A. Liege, Dogma, Catholicisme Ⅲ, pp. 951~962/ J. Nolte, Dogma in Geschichte. Versuch einer Kritik des Dogmatismus in der Glaubensdarstellung, Freiburg, Herder, 1971/ K. Rahner ·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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