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효론 人效論 [라 · 영〕ex opere opera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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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의 유효성과 성사 은총의 전달이 성사 집전자의 성덕과 신앙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
인효론의 개념에는 성사 수령자의 신앙이 성사 은총을 받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포함되기도 한다.
〔교의의 형성과 변모]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사가 교회의 의향에 따라 거행되면 집전자의 성덕과 신앙에 좌우되지 않고 성사 은총을 전한다는 사효론(事效論, ex opere operato)을 가르쳐 왔다. 하지만 교회가 성사의 유효성을 판가름하는 데에 있어서 인효론을 배척했다고 하여, 인효론의 근본 취지마저 거부한 것은 아니다. 이는 성사 집전자에게 적어도 최소한의 준비를 요구한 데에서 드러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 1225~1274)는 유효한 성사를 위해서는 적어도 성사 집전자의 지향(intentio)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S. Th., Ⅲ ,64, 8), 피렌체 공의회(1439)는 성사가 유효하게 거행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지향"이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Ds 1312). 이 가르침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63)에서도 수용되었다(DS 1611). 오늘날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 교회가 전통적으로 성사의 사효성을 강조한 데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해서 너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최소한의 경우가 아니라 최선의 경우를 상정해서 이를 성사 집전의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대표적으로 스킬레벡스(E. Schillebeeckx, 1914~ )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교회가 자신의 본질로부터 본래적으로 요구하는 정상적인 상황이란 집전자가 자기 직무의 행위를 사도직에 자기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표현으로, 그리고 자기가 수여하는 성사를 통해 사람들을 진정으로 성화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수행하는 성사 집전이다"(Chinitus, Sakra-ment der Gottesbeggnuung, 107). 이들 신학자들은, 성직자는 성사를 집전하는 데에 교회의 의도에 따라 교회에서 규정한 절차를 어김없이 집행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세상에 전하는 사도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증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유효한 성사가 성립되기 위해서 성사를 받는 사람의 신앙과 준비가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가르쳐 왔다. 성사를 통해서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어떠한 인간적 응답을 선행하고, 성사는 인간이 응답을 하지 않는 때에도 은총의 참된 보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사 수취자의 신앙과 준비가 전혀 필요 없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유효한 성사가 성립되기 위해서 성사 수취자의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유효한 성사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수취자의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은총이 사효적으로 부여된다고 천명하는 동시에(DS 1618) 성사를 받는 사람 개인의 마음 준비와 협조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즉 "아무런 장애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non ponentibusobicem) 은총이 부여된다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된다(DS1616)고 명시하였다. 수동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성사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 인간의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사 은총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 성사 수취자에게 내적 장애가 없어야 한다는 수동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성사를 받으려는 준비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 예를 들어서 유아 세례나 의식이 없는 사람이 병자 성사를 받는 경우까지도 포함시키려 하였기 때문이다.
[신학적 조명 및 교리] 현대 신학은 성사 수취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정을 논하거나, 장애물 제거 등의 소극적인 자세를 탈피해서 좀 더 적극적 준비를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런 적극적 준비가 성서의 정신에 더 적합하다. 세례와 성체 성사가 공동체의 삶 안에서 확고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던 초대 교회에서도 세례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서, 성찬례를 통해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서 제시한 요구 사항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신앙 없이는 세례를 받을 수가 없었다(사도 2, 41 : 8, 12.37 : 마태 28, 19 ; 마르 16, 16). 죄 많은 삶을 청산하는 것을 포함하는 회개 없이 세례를 받을 수가 없었다(사도2, 38). 무엇보다도 세례에 앞서서 짧은 형태로든(8, 31 ;10, 34-48) 긴 교리 교육의 형태이든(8, 4-25) 하느님 말씀의 선포가 이루어져야 했다. 사도 행전에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것을 나타내는 데에 '말씀을 받아들였다' 는 일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2, 41 이하 ; 8, 14).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서 준비 없는 정신 상태나 윤리적인 자세로써는 안된다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은 고린토 전서 11장 17-34절이다. 여기서는 주님의 성찬에 합당치 못한 자세들, 즉 공동체 안에서의 파당,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 가난한 이를 부끄럽게 하는 행동, 자기 양심에 대한 성찰의 결여 등이 언급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형제적인 일치의 예식을 불성실하고 위선적인 행위로 변질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서의 정신을 수용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사는 신앙을 전제한다" (전례 59항)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도 성사가 사효적으로 효력을 가진다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재확인하면서 "성사의 결과는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1128항), "성사는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다" 고 명시하였다(1131항).
[의 미] 모든 성사 거행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이루는 데에 있다. 진정한 만남은 서로가 함께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성사 집전자는 성사를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성사 수취자는 성사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일 수 있도록 신앙과 응답의 열린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10 사효론; → 성사 ; 성사신학)
※ 참고문헌  손희송,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나타난 성사 이해>,<신학 전망》 114, 1996, pp. 12~13/ 0. Semmelroth, Opus operatum-Opusoperantis, (LThK》7, pp. 1184~1186/1 E. Schillebeeckx, Christus, Sakrament der Gottesbegegnug, Mainz, 1959/ A. Ganoczy, Einfihhrung in die katholische 大學 Sakramentenlehre,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84. 〔孫熙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