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원칙과 실천을 제시한 공식 문서. 공의회 제3 회기 중인 1964년 11월 21일에 "일치의 재건" (Unita-sRedintegraio)이라는 제목으로 선포되었다.
[배 경] 교회 일치에 대한 관심 증진 : 19세기 후반기부터 교황청은 그리스도인 일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857년 9월 8일 영국 런던에서 앵글로-가톨릭 교회적인 성향(Anglo-Catalilimm)을 지닌 영국 성공회의 신부 리(F.G. Lee, 1832~1902)가 라이슬(A.P. Lisle,1809~1878)과 퓨긴(A.W. Pugin, 1812~1852) 등과 같은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 모임으로 그리스도교 일치 촉진 협회(Association for the PromotionoftheUnity ofChristiendom)를 창설하였다. 이에 대해 교황청 검사성성(현재의 신앙 교리성)은 영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1864년 9월 16일에 편지 (Ad Omnes Episcopos Angliae)를 보내 앵글로-가톨릭 교회 성향의 그리스도교 분지설(Theory of Branches)을 배격하였다. 동시에 동방 교회를 그리스도교의 단일성을 파괴한 열교(裂敎)로 묘사하고, 영국 교회를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교회 일치는 이교자들과 이단자들이 자신들의 오류를 버리고 일치의 원천인 베드로와 그 후계자인 로마 사도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교황 비오 9세(1846~1878)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를 소집하기 전인 1868년 9월 8일에 동방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낸 공의회 소집을 알리는 편지에서, 지난날 그들의 선인(先人)들이 제2차 리용 공의회(1274)와 피렌체 공의회(1439~1443)에 참석하여 공의회 교부들과 함께 교회 일치 교령을 선포했던 것처럼 공의회에 참석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동방 교회의 원천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9월 13일에 교황은 프로테스탄트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교황 교서를 통해서 가톨릭 교회의 단일성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분열된 모습을 비교하면서 그들의 선인들이 떠나갔던 가톨릭 교회로 돌아올 것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가톨릭 교회 밖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자세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새롭고 긍정적인 교회 일치 정책을 처음으로 실시한 교황이었다. 첫째로 가톨릭 용어에서 동방 교회인을 지칭하던 '열교자' 와 프로테스탄트인을 일컫던 '이단자 라는 단어가 '갈라진 이 라는 호칭으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정교회인' (Orthodoxi) 또는 '동방 교회들' (Eccle-siae Orientales)이라는 고유한 명칭이 사용되었다. 둘째로 레오 13세는 갈라진 그리스도인 형제들과의 화해를 위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를 도입하였다. 교황은 1895년 5월 5일에 성령 강림 대축일 전에 하는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9일 기도를 제정하였고, 회칙 <하느님의 직무>(Divinum illud, 1897. 5. 9)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화해와 일치는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에서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셋째로 교황은 회칙 <명백한 증거들〉(Prae-clara testimonia, 1894. 6. 20)과 <충분히 인식된 사실>(Satiscognitum, 1896. 6. 29)을 통해서 교회 일치는 신앙의 일치와 행정의 일치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동방 교회 총대주교들의 특권과 고유한 전례를 인정하고 가톨릭 교회와 큰 차이가 없다고 언급하면서 일치 시기가 가까이 오기를 희망하였다. 이어서 교황은 프로테스탄트인들에게는 신앙의 일치를 이루자고 호소하면서 가톨릭 교회인들은 형제적 사랑을 갖고 가톨릭 교회 신앙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교황은 교황 교서<자애로운 원의>(Amantissimae voluntatis, 1895. 4. 14)를 통해서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치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함께 협력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인들에게 보낸 회칙 <사랑의 연구>(Caritais Studium, 1898. 7.25)를 통해서는 두 공동체가 '공유하는 성서' 와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사랑' 을 제시하면서 일치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교황은 현대 가톨릭 교회 일치 운동에 초석을 놓았고, 이 초석 위에서 후임 교황들은 교회 일치에 대한 견해를 더욱 발전시켰다.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1922년 동방 교회 연구소를 설립하여 동방 교회의 신학과 전례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였다. 또한 <하느님의 교회>(EcclesiamDei, 1923. 11.12)와 <동방 교회 문제들>(Renm orientalium, 1929.같은 동방 교회에 관한 회칙을 통해서 대신학교들은 동방 교회에 관한 학과를 도입하고, 라틴 교회인들은 동방교회에 대한 깊고 올바른 지식을 갖춤으로써 그리스도인 사랑을 지니게 되고 이는 교회 일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아울러 프로테스탄트 교회 일치 운동을 향한 노력의 단계로 창설된 "생활 실천(LifeandWok) 운동이 1925년에 스톡홀름에서 첫 총회를 갖고 1927년에 로잔(Lausanne)에서 "신앙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이 제1차 세계 대회를 소집한 이후 교황은 회칙 <사람들의 마음>(Mortalium animos, 1928. 1. 6)을 반포하였다. 이 회칙은 신앙 직제 운동이 제시한 신앙교리에 대한 비교방법론(Comparative Method)을 반대하였고, 생활 실천 운동이 내세운 신앙 교리의 차이가 있더라도 상호 협력을 강조하는 범그리스도교(Pan-Cmintaint) 운동을 비판하였다. 이 문헌은 스톡홀름 총회와 로잔 회의 구성원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그러나 교황이 발표한 일치 사도직을 촉진하는 문헌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이 회칙은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아니라 경고를 표현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신앙 교리의 일치가 없이는 참된 일치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교황의 경고는 가톨릭 교회가 교회 일치 운동에 관심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프로테스탄트 생활 실천 운동의 제2차 옥스퍼드 총회(1927)와 신앙 직제 운동 제2차 세계 대회인 에딘버러 회의(1937)에 가톨릭 신자들이 비공식 참관인으로 참석하였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다가오는 성년>(Sacrovergente anno, 1952. 7. 7)과 <동방 교회들>(OrientalesEcclesiae, 1952. 10. 15)과 같은 회칙, 그리고 <동방 교회의자랑>(Orientalis Ecclesiae decus, 1944. 4. 9), <모든 동방 교회인들>(Orientales ommes, 1945. 12. 23)과 같은 담화문을 통해서 동유럽에서 박해받고 있는 동방 교회들에 대한 염려와 동방 교회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가톨릭 교회와의 일치를 호소하였다. 아울러 교황은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ci corporis Christi, 1943. 6. 29), <인류>(Humanigeneris, 1950. 8. 12), <영원하신 왕>(Sempitemus Rex, 1951.9. 8)과 같은 회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구성원이 아닌 갈라진 형제들이 하나이고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기를 요청하면서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함께하는 일치 운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비오12세는 많은 메시지 특히 성탄 메시지들을 통해서 갈라진 형제들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 신앙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인들에게 가까운 이웃이라고 간주하면서 사회 정의와 세계 평화와 같은 공동선을 위한 공동 협력을 호소하였다. 이러한 호소를 통해서 교황은 지난날 갈라진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 손상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고, 이로써 가톨릭 교회가 교회 일치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갖추도록 이끌었다.
비오 12세는 교회 일치에 대한 정관(靜觀) 자세에 만족하지 않았다. 교황은 검사성성을 통해서 오늘날 '가톨릭 교회 일치 운동의 대헌장 이라고 불리는 훈령 <가톨릭 교회>(Ecclesia Catholica, 1949. 12. 20)를 발표하여 교회 일치는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추진되는 운동으로 인정하고, 교회의 직무이며 책임임을 선언하면서 유의 사항과 권장 사항을 제시하였다. 유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톨릭 신자는 주교의 지도 아래 교회 일치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교회가 과거 잘못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셋째,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정통 교리를 위태롭게 하는 '거짓 교파간 평화주의' (Irenicism)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권장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교들은 교회 일치 운동을 힘써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둘째, 주교들은 교회 일치 운동을 지혜롭게 지도하고 증진해야 한다. 셋째, 주교들은 진리와 참 교회를 탐구하는 사람들을 돕고 교회 일치 운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서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처럼 교황청은 훈령을 통해서 가톨릭 교회의 일치 운동가들을 격려하였다. 더 나아가 훈령으로 교회 일치 신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아울러 훈령은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회원 교회인 동방 교회인, 영국 교회인, 프로테스탄트인들에게 가톨릭 교회는 회원 교회는 아니지만 참된 교회 일치 증진에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결과 가톨릭 신자들이 참관인으로 신앙 직제 운동의 룬트(Lund) 총회(1952)와 오벌린(Oberlin) 회의(1957)에 참석하였다.
작성 배경 :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이 작성된 배경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교황 요한 23세(1950~1963)의 등장이었다. 교황은 교황 사절로서 불가리아(1925~1934), 터키와 그리스(1934~194)에서 동방 교회를 접촉하면서 애정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교황은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과 가톨릭 교회 쇄신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적 체험과 역사적 지식은 교황이 그리스도인 일치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고, 그리스도인 일치에 대한 관심과 열망으로 이어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소집으로 옮겨졌다. 1959년 6월 29일에 요한 23세는 첫 회칙인 <베드로좌를 향하여>(Ad Petri Cathedram)를 발표하여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치를 호소하면서 공의회의 성공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였다. 아울러 교황은 교회 일치 신학자들에게 과거처럼 교회 일치에 관한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을 때 교황청 검사성성으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저서 발간이 금지되거나 교수직을 박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말고 교회 일치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거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였다. 이러한 교황의 배려는 그리스도인 일치를 소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다루던 문제에서 모든 가톨릭인들이 관심을 두고 다루어야 하는 과제로 발전시켰다. 교회 일치 신학자들의 견해들 중 많은 부분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받아들여져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이라는 결실을 내었다.
둘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집이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969~1970)에서 교황의 무류성(無謬性, Infal-libility) 교리가 선포된 이후 모든 권한은 교황의 직무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국 교황은 일방적으로 모든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비공식적으로 주교들의 여론을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도권은 교황에게 있었다. 따라서 교황의 군주제주의(君主制主義)와 하나로 통제된 교회 구조는 프로테스탄트인들에게 가톨릭 교회의 모습으로 고착시켰다. 이러한 모습은 교황 비오 12세의 무류성을 통한 성모 승천 교리 선포로 프로테스탄트인들에게 확인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황이 비공식 통로가 아니라 성대하게 소집된 공개적 회합(공의회)에서 주교들에게 문의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인들이 싫어하는 가톨릭 교회 모습인 교황의 군주제주의와 1인 통치는 사라졌다. 이러한 특성은 제1 회기(1962) 중 10월 13일에 교황청이 일방적으로 위촉한 10개 위원회의 16명의 위원에 대한 선거 계획이 교부들의 반대로 연기된 사건에서 확인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또 다른 특성은 요한 23세가 동방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대표들을 공의회에 초대한 점이었다. 동방 교회들의 대표들과 프로테스탄트 국제 기구의 대표들이 참관인으로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그들은 단순한 참관인이 아니라 총회에서 발언권과 투표권은 없었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참관인들은 정기적으로 가톨릭 교회 신학자들과 만나 토의 안건에 대해 토의하였고, 공의회 교부들은 회기 중에 참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고 교회 일치를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셋째는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사무국의 창설과 활동이었다. 이 사무국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관련되어 창설된 교황청의 공식 기구로 독자적 운영권을 갖고 교회 일치 문제들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과거에는 교회 일치에 관한 견해가 개인적인 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교회 일치 문제가 공식적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 일치에 대한 관심을 실현할 수 있는 기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 사무국의 장관으로 베아(A. Bea, 1881~1968) 추기경이 임명되었다는 점은 사무국의 창설이 단순히 형식적인 겉치레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베아 추기경은 공의회의 주요 지도자들 중 하나였고, 사무국을 공의회 안에서 교회 일치 문제를 다루는 영향력이 강한 중요한 기구로 만들었다. 더욱이 성서학자인 베아 추기경이 사무국을 책임 맡은 점은 성서를 중하게 여기는 프로테스탄 교회들 입장에서 교회 일치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마지막으로 이 사무국은 공의회가 진행되는 동안 교회 일치 문제들을 다루는 공의회의 자료들은 대부분 다루고 있었다. 아울러 사무국은 공의회 교부들과 다른 그리스도인 참관인들이 교회 일치에 관한 문헌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를 매주 마련하였고, 교부들은 참관인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사무국은 단독으로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작성하여 내놓았다.
〔선포와 내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1 회기 중에 세부서에서 교회 일치에 관련된 문서 초안이 총회에 제출되었다. 첫째는 신학 위원회가 마련한 교회 헌장 중 11장에서 작성한 초안이었고, 둘째는 동방 교회 위원회가 동방 교회에 관련하여 준비한 초안이었다. 셋째는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사무국이 준비한 자료였다. 1962년 12월 1일 첫 회기가 끝난 다음 세 초안을 하나의 문서로 작성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새 문서를 준비하는 업무를 맡은 사무국은 1963년 제2 회기 중 11월 18일에 5장으로 구성된 교회 일치에 관한 문서를 총회에 제출하였다. 이 문서를 제출한 교부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교회 일치는 아주 새로운 것이고 과거 공의회에서는 다루어진 적이 없었으며 최근에야 신학에서도 논의된 내용입니다." 제출된 문서에 대해 열띤 찬반 토론 과정 속에서 수정을 요구하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반대하는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즉 문서는 가톨릭 교회가 유일한 참된 교회라는 점을 더욱 강조해야 하고, 교회 일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 일치는 종교 무차별주의로 이끌 수 있고 신자들을 당황하게 할 수 있으며, 가톨릭 교회의 진리는 불변하며 교리에 대한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음을 교회는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반면, 지지하는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문서는 훌륭하지만 너무 소심하여 좀더 대담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과거 교회 분열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책임을 문서에 삽입해야 하고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탓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열띤 토론과 서면 제안의 결과 문서를 다시 작성하도록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사무국에 보내져 5장 중 제4장(종교 자유)과 제5장(비그리스도교)은 떼어내고 3장으로 작성된 문서는 1964년 여름 검토를 위해 교부들에게 보내졌다.
1964년 공의회의 제3 회기 중인 11월 19일에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종 문서에 대한 투표가 실시되기 하루 전, 따라서 총회에서 토론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때 였기에 '위로부터' (by high authority) 지시 즉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의 요구로 19개 부분이 수정되었다. 이는 소수파 보수주의 교부들이 40개 부분의 수정을 요구하자, 교황은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사무국과 의논하여 21개 부분을 기각하고 19개 부분을 다시 수정한 것이다. 이러한 재수정은 교부들의 불만을 샀다. 불만은 세가지 이유였다. 첫째로 공의회의 협의 체제에 비추어 볼 때 교황의 일방적 결정은 반(反)합의적 조처였다. 둘째로 교황이 수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안건을 총회의 토론에 넘겨야 했다. 셋째로 대부분이 문구 수정이지만 그 중에서 하나라도 핵심적 내용과 관련되고 있다면 문서 전체의 논조가 위태로울 수 있다. 이러한 강한 반발의 목소리는 공의회의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개 부분 수정 사건' (The Case ofNine-teen Interventions)은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중대하게 불행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수정이 심각하게 문서의 교회 일치적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았다. 주교들의 반대가 남아 있었지만 교령은 다음날 압도적 다수표(2,054대 64)로 인준되었다. 다음날인 11월 21일 최종 투표에서 반대표가 11표로 줄어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이 교령은 머리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일치의 재건을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촉진하려는 것"(1항)임을 밝히면서 교회 일치 운동은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시라고 고백하는 개인과 공동체가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재건하려는 운동"(1항)이라고 규정하였다. 제1장(1~4항)은 하나인 교회 그리고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 운동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면서 가톨릭 원칙들을 밝히고 있다. 교회 일치 운동은 갈라진 형제들과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언행을 제거하는 노력이고, 교파 상호간의 교리와 생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나누는 신학 대화를 지칭하였다(4항). 제2장(5~12항)은 일치 운동의 의무와 이유, 내적 쇄신, 기도와 전례, 갈라진 형제 교회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 신학생과 수도자와 성직자에 대한 교회 일치 교육, 일치의 관점에서 이루지는 교리 설명, 사회 활동의 협력과 같은 영역에서 일치 운동을 실천하라고 권고한다. 특히 일치 운동은 가톨릭 교회 구성원 모두가 실천해야 하는 의무이고(5항) 참된 일치 운동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내적 회심이다(7항). 따라서 기도를 통한 '영적 일치 운동' (Oecumenis-mus spiritualis)을 장려하였다(8항). 제3장(13~24항)은 로마 사도좌에서 갈라진 교회와 교단들을 다루고 있다. 첫째로 동방 교회의 특징, 동방 교회의 전례와 규율, 신학을 설명하면서 가톨릭 교회와 동방 교회들의 일치를 염원하였다. 둘째로 서방의 갈라진 교회들을 언급하면서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그 공동체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 교리와 성서관, 실천하는 세례와 성찬, 복음적 윤리를 살펴본 다음 가톨릭 교회와 갈라진 교회들의 일치 운동을 전망하고 있다.
[교회 일치적 의미] 첫째,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에서 과거 교회 일치와 관련된 용어가 수정되거나 사라지고 새로운 단어로 대체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는 가톨릭 교회 일치 운동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참 교회인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는 것이었지만, 이 교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를 회복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되었다(1항, 24항). 그리고 열교자 또는 이단자라는 호칭은 '갈라진 형제' 라는 명칭으로 대체 되었고 다른 그리스도인 단체를 '교회' 또는 교회적 공동체' 로 인정함으로써(3항) 그 동안 프로테스탄트를 단순한 개별적 종교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가톨릭 교회의 자세가 사라졌다. 교령의 제1장 제목이 처음에는 '가톨릭 교회 일치의 원칙' (De Principiis Catholici Oecumenismin)이었다. 이 말은 프로테스탄트 교회 일치' 와 '동방 교회 일치' 처럼 여러 형태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 신학적으로 적당하지 않고 언어학적으로 모호하기에 교회 일치는 하나의 일치만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일치 운동의 가톨릭 원칙' (De Catholicis Oecumenismi Princi-piis)으로 바뀌었다. 이 말은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들이 활동 영역은 다르더라도 기본적으로는 함께 일치 운동에 종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가톨릭 교회가 일치 운동을 원하고 있음을 뜻한다.
둘째,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은 가톨릭 교회의 교회 분열에 대한 책임을 세 가지로 명백하게 언급하면서 교회 일치 정신을 밝히고 있다. 먼저 교령은 초창기의 교회 일치를 언급한 다음 교회 분열에 대한 공동 책임을 인정하였다. "후세기에는 더 많은 불화가 생겨 적지 않은 공동체들이 가톨릭 교회의 완전한 일치에서 갈라졌으며, 어떤 때에는 양쪽의 사람들의 잘못이 없지 않았다" (3항). 그리고 이 교령은 가톨릭 교회가 복음에서 떨어져 있을 때에는 언제나 쇄신되어야 함을 인정하고 있다. "나그네 길에 있는 교회는 그 자체로서 또 인간적인 지상 제도로서 언제나 필요한 이 개혁을 끊임없이 계속하도록 그리스도께 부름받고 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관습에서나 교회 규율에서나 교리의 진술 방법에서-이것은 신앙의 유산 자체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올바르지 않은 . 것이 보존되어 왔다면 적절한 시기에 마땅히 바르게 혁신되어야 한다" (6항). 마지막으로 교령은 교황 바오로 6세의 제2 회기 개막식(1963. 9. 29) 연설(《AAS》 55(1963), 853)처럼 분열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타인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1요한 1, 10). 요한 사도의 이 증언은 또한 일치를 거스르는 죄에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도록 하느님께 또 갈라진 형제들에게 겸손되이 간청한다”(7항). 셋째,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은 앞으로 교회 일치가 발전하기 위한 세 가지 특별 지침을 내리고 있다. 먼저 공동 대화에 대한 지침이다. "갈라진 형제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에 따라 선의의 연구를 해야 한다. · 쌍방이 각기 동등한 입장에서 다루는 모임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이러한 대화에서 가톨릭 교회의 진정한 입장도 더욱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갈라진 형제들의 생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신앙도 그들에게 더 적절히 보여줄 수 있다" (9항). 그리고 공동 활동에 관한 지침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협력은 그들을 이미 서로 묶어 주는 그 결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며, 종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더욱 밝은 빛 속에 드러내는 것이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협력은 더 더욱 완성되어야 한다" (12항). 마지막으로 공동 예배에 대한 지침이다. "일치를 위한 기도나 일치 운동을 위한 모임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허용될 뿐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8항). 이렇게 바람직한 공동 기도는 지역 교회에서 매년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1.18~25)에 시행되고 있다.
넷째,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그 자체가 잠정적 문서임을 인정하고 있다. 교령은 교회 일치에 관한 마지막 문서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첫 공식 문서일 뿐이다. 이 교령에 대해 일부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은 의문을 제기하거나 유보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들은 교령의 제1장과 제2장은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일치이지만 제3장은 가톨릭 교회 중심의 교회 일치 내용을 담고 있어 교령이 내용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교령은 가톨릭 교회 일치의 목적이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인상을 피하고 있지만, 이러한 복귀에 대한 개념은 교황 비오 9세 이후 일치 교령이 선포되기까지 가톨릭의 교회 일치에 대한 사고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가톨릭의 일치 학자들은 교령에 나타나는 소심한 태도에 낙담하기보다는 개방적이며 수용적 자세에 대해 유념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선포된 일치 교령은 초안보다 더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교령이 선포된 이후 가톨릭 교회의 일치 활동은 계속 증대되고 있다. 그래서 일치 교령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 자녀들의 활동이 갈라진 형제들의 활동과 결합되어, 하느님 섭리의 길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고 또 성령의 미래 인도를 가로막지 않고 발전하여 나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24항). 가톨릭 신학자들은 교령이 예상보다 더 빨리 교회 일치 상황에 새로운 요소들을 도입하고 있고 교회 일치에 관한 옛 견해가 교령이나 가톨릭 사고에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지도자의 상호 방문과 신학 대화와 같은 활동과 공동 선언, 교황 교서, 지침서와 같은 공식 문서의 발간으로 옛 견해는 사라지거나 수정되면서 참된 의미로 발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일치 운동은 개방되어 있으며, 교회 일치의 미래 방향은 가톨릭신자들의 교령에 대한 적응 실천과 이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인들의 응답에 달려있다. (→교회 일치 운동 ; 레오 13세 ; <리마 문서> ;바티칸 공의회, 제2차 ; 비오 11세 ; 비오 12세 ; 영국성공회 ; 요한23세 ; 우나 상타 운동)
※ 참고문헌 Norman P. Tanner(ed.), Decree of the EcumenicalCouncils, vol. 2, Georgetown, Sheed & Ward Limited, Georgetown Univ.Press, 1990/ Thomas Stransky, The Decree on Ecumenism, New Yrok, Paulist Press, 1965/ Walter Abbott(ed.), Documents of Vatican II, NewYork, Herder and Herder, 1966/ Bernard Leeming, The Vatican Council and Christian Unity, New York, Harper & Row, London, Darton, Longman & Todd, 1966/ Ruth Rouse · Stephen Charles Neil(eds.), A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vol. I : 1517~1948, 3rd ed., London, SPCK, 1986/Harold E. Fey(ed.), A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vol. I :1517~1948, 2nd ed., London, SPCK, 1986/ R.M. Brown, The Ecumenical Revolution. An Interpretation of the Catholic-Protestant Dialogue, NewYork, Doubleday & Company, Inc., 1967/ Gregory Baum, The Catholic Questfor Christian Unity, London, Sheed and Ward, 1963/ Gregory Baum, That They May Be One A Stucty ofPapal Doctrine(Leo XIII~Piua XI), Westminster, Newman, 1958/ John XXII , Joumal ofa Soul, New York, McGraw-Hil, 1964/ L. Swidler, Bloodwitnesssfor Peace and Unity Life of M.J. Metzer, Denville, NJ, Dimension, 19771 Michael Walsh, An Illustrated History ofthe Popes, New York, Bonanza Books, 1980/ F. Peter Wigginton, The Popes of the Vatican Council Ⅱ, Chicago, Franciscan Herald Press, 1983/ Richard P. McBrien, Lives of the Popes : Pontifjs.fom St. Peter to John Paul I , New York, Harper Collins Publishers Inc., 199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엮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라틴어 대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헨리쿠스 반 스트라렌, 현석호 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 총서》 3, 성바오로출판사, 1991/ 김성태,《歷史 안의 敎會》, 분도출판사, 1985. [金聖泰]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一致運動 - 閼 - 敎令 [라]Unitatis Redintegr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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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