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159 소재. 1921년에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골롬바노. 관할 구역은 임당동 · 중앙동 · 홍제동 · 교1동 전 지역과 교2동 · 내곡동 · 사천면 · 성산면 · 왕산면 · 구정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사천 1개소. [교 세] 1955년 674명, 1960년 2,204명, 1965년 2,425명, 1970년 3,161명, 1975년 2,473명, 1980년 2,382명, 1985년 3,025명, 1990년 2,273명, 1995년 2,804명, 2000년 2,803명. 〔역대 신부] 초대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1921~1926), 2대 김인상(金寅相) 야고보(1926~1938), 3대 김학용(金學用) 시몬(1938~1941), 4대 도일(J. Doyle,都) 야고보(1941~1942) , 5대 김영식(金永植) 베드로(1942~1943), 6대 임종구(林鐘求) 바오로(1943~1945), 7대 게라티(B. Geraghty, 池) 베르나르도(1945~1946), 8대맥간(F. McGann, 韓) 프란치스코(1946~1947) 9대 헤이워드(H. Hayward, 吳) 후베르토(1947~1948), , 10대 게라티(1948~1949), 11대 맥간(1949~1950), 12대 넬리간(T.Neligan, 干) 토마스(1951~1954), 13대 부르크(P. Burke,表) 파트리치오(1954-195), 14대 카니(D. Kearney, 姜)디오니시오(1955~1960) 15대 클라크(L. Clark, 정) 레오(1960~1961), 16대 王文 뉴젠트(W. Nugent, 유) 第一 월터(1961~1962) , 17대 매니언(F. Mannion, 明) 프란치스코(1962~1968), 18대 린치(J. Lynch, 임) 요한(1968~1970) ,19대 로체(J. Roche) 요한(1970. 6~1973. 4), 20대 천신기(千信基) 요한(1973. 4~1979.4 21대 김종석(金鍾石) 토마스(1979. 4~1984. 2), 22대 김정식(金晶植) 토마스
(1984. 3~1990. 2), 23대 황영택(黃永澤) 사도 요한(1990.2~1995. 8), 24대 김명식(金明植) 가브리엘(1995. 9~2000.9), 25대 양완모(梁完模) 야고보(2000. .
[공소 시대와 본당의 설립] 영동 지역에 교우촌이 형성된 때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이다. 당시 충청 · 전라 · 경기도의 신자들이 산간 지대로 피신해 오면서 이곳에도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 중 강릉 지역은 1882~1883년에 삼정평(강릉군 구정면 여찬리) · 새울(강릉군 구정면 어단리) 공소가 설립되었고, 1887년에는 금광리(강릉군 구정면 금광리) 공소가 설립되는 등 병인박해 이후 꾸준히 신자들이 존재해 있었다.
당시 영동 지역은 1893년 이후 안변(내평) 본당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내평 본당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신자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본당의 설립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교구에서는 1921년 5월에 양양 본당을 설립하고 최문식(崔文植, 베드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양양 본당의 신설 당시, 교구에서는 이미 영동 지역에 또 하나의 본당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에 최문식 신부의 보좌로 임명된 이철연 신부는 1921년 12월에 금광리 본당(주문진 본당 · 임당동 본당의 전신)을 설립하고 강릉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금광리는 거주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전 가능성도 적어, 이철연 신부는 1923년 말에 주문진(강릉군 신리면 교항리 133번지)에 새 부지를 매입한 뒤,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주문진으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하지만 주문진에서의 전교는 활발하지 않았고, 또 지역적으로도 주문진보다는 강릉 지역의 발전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9년 1월 주문진 성당이 화재로 전소되자, 2대 주임 김인상 신부는 금광리로 본당을 옮겼다가 1931년 6월 강릉시 임당동에 12칸짜리 가옥을 매입하고 본당의 이전을 준비하였다.
[본당의 변모와 발전] 1934년 강릉으로 이전된 본당은 점차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던 가운데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 본당에서는 본당의 내실화는 물론, 사회 복지 · 교육 사업을 통해 지역 속의 본당 공동체를 구현했는데, 1946년에는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초청하여 본당 사목의 내실화를 기하는 한편, 성심보육원과 성심공민학교(1957년 폐교)를 설립하여 고아 보육과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뿐만 아니라 1951년에는 1,128평의 대지를 매입한 뒤 1955년 10월에 성당을 신축하였고, 1956년 12월에는 '증거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여 레지오 마리애 활동도 시작하였다. 이어 1962년 10월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본당 사목을 맡았고, 1964년 3월에는 갈바리아 의원을 개원하여 의료 봉사에도 힘을 쏟았다. 또 1967년에는 소화유치원을 개원하여 유아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68년에는 강릉시 내곡동과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교회 묘지를 조성하였다.
1970년대 들어 강릉 본당은 외형적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더욱 성숙해 갔다. 그리하여 1973년 3월에는 '신용 협동 조합' 을 창립하여 신자와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고, 4월부터는 울뜨레야 효성회 · 안나회 · 빈천시오회 등 여러 신심 단체가 설립되어 개인 및 가정 성화의 기초를 확립해갔다. 그런 가운데 본당의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1974년 11월에는 옥천동 본당을 분가시켰고, 아울러 본당 명칭도 강릉 본당에서 임당동 본당으로 바꾸었다.
1981년으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임당동 본당은, 11월에는 신자 재교육을 위한 교육관을 건립하였고, 1987년 10월에는 노암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또 1991년 4월에는 성당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청동 십자가, 제대, 14처, 스테인드 글라스 등을 2년에 걸쳐 갖추었으며, 1992년 11월에는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1998년 11월에는 노후화된 사제관, 수녀원,유치원을 신 · 증축하여 본당의 면모를 일신하였으며,2001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사진전 등 경축 행사를 거행하였고, 12월에는 춘천교구 대희년 전대사 지정 순례지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2002년 현재 본당에는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하여 20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쉬는 교우 찾아 나서기'라는 사목 지침하에 전 신자가 본당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춘천교구)
※ 참고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 천주교 연감》, 1956/一, 《한국 천주교 주소록》, 1957~2001/ 천주교 춘천교구, 《춘천교구 50년사》, 1989/ 천주교 주문진 성당, 《주문진 본당 70년사》, 1998/천주교 춘천교구 양양 교회, 《양양 본당 80년사》, 2001. [方相根]
임당동 본당
林塘洞本堂
글자 크기
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