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모르탈레 데이> [라]Immortale 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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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11월 1일에 발표된 그리스도교적인 국가 건설과 그 질서에 관한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회칙 .
이 회칙은 "지극히 자비로우신 우리 하느님께서 지으신 불멸의 걸작인 가톨릭 교회는 영혼의 구원과 천국 행복의 보장을 그 타고난 직접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시작되는 첫 문장 앞머리의 두 낱말인 "임모르탈레 데이"(Immortale Dei)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회칙은 그리스도교 국가의 이상을 펼치며 주로 국가의 권위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밝히고 있다. 국가의 발전을 등지고 있다는 비난과는 전혀 다르게, 교회는 국가의 번영과 인간 문명에 커다란 혜택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교황 레오 13세는 역설한다. 비록 교회의 사명이 영적 질서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교회는 또한 현세적 질서에 진보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교리 발전의 특징과 그 주요한 측면들을 볼 수 있는 이 회칙은, 교황 레오 13세의 선임인 교황 비오 9세(1846~1878)가 교황령(敎皇領)을 모두 상실한 19세기 말의 시대적 상황에서 실제적인 국가 통치력이 없는 영적 지도자인 교황이 현세 국가 건설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펼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내 용] 국가에 대한 교회의 역할 :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세워진 교회는 마치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설립된 것처럼 새로운 문명을 촉진시키고 있다. 참으로 교회는 자신이 발을 닫는 곳마다 곧바로 사물의 면모를 바꾸어왔고, 또 전에는 모르던 새로운 문명과 덕목으로 사람들의 도덕적 기풍을 진작시켜 왔다. 사실 교회의 역사 전체가, 교회는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거스르고 있다는 중상을 배척해 준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그러한 중상과 비방에 시달려 왔으며, 제국의 적이라는 증오와 매도를 당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증오에 찬 비방은성 아우구스티노(Augusinus Hipponensis, 354~430)의 날카로운 천재적 필봉을 분기하게 하였다. 성인은 《신국론》(De civitate Dei, 413~426)에서 그리스도교적 지혜의 가치를 공공의 안녕과 관련하여 명쾌하게 설파하였다. 그는 단순히 그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대의를 변호한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모든 시대를 위하여 진실에서 극도로 벗어난 온갖 비난들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회가 국가에 가져다주는 선익과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각자의 신체적인 연령만이 아니라 정신연령이 요구하는 대로, 어린이들은 매우 온화하게, 젊은이들은 활력에 넘치게, 노인들은 극히 정중하게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자녀들이 부모를 자유롭게 섬기도록 자녀들은 부모에게 복종시키고, 부모들이 인자한 규범으로 자녀들을 다스리게 한다. 인간이 모두 똑같은 어버이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줌으로써 시민과 시민, 국가와 국가, 그리고 전인류를 사회적으로만이 아니라 하나의 형제애로써 함께 결합시켜 준다. 왕들에게 자기 백성의 이익을 돌보도록 가르치고, 백성들한테는 자기 왕에게 복종하라고 권고한다. 온갖 정성을 다해 교회는 저마다 마땅한 영예와 애정과 존경과 경외와 위로와 권고와 격려와 훈련과 책망과 징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가르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그 누구에게도 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교회는 보여 주고 있다.
교황 레오 13세는 "복음의 철학"이 유럽에서 문명화의 역할을 수행하며 과거 여러 나라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쳐 왔는가를 설명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거부되어, 교회와 국가라는 두 권력이 협력을 중단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은 무너지고 말았다. 한때는 여러 국가가 복음의 철학으로 다스려지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그리스도교적 지혜의 힘과 신적 덕목이 시민 사회의 법률과 제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다. 교회와 국가는 우호적인 선의의 교류와 화합 속에서 즐거이 일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국가들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중요한 업적들을 성취하였으며, 그 위업의 명성은 원수들의 어떠한 술책으로도 결코 지워지거나 가려질 수 없는 무수한 증거들로 아직도 입증되고 있으며, 또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유럽은 야만 민족들을 순화시켜 야만 상태에서 문명화된 상태로, 미신으로부터 진정한 예배로 바꾸어 놓았다. 또한 모든 문화의 지도자요 스승으로서 다방면에 걸쳐 진정한 자유의 혜택을 전 세계에 부여하였으며, 극히 현명하게도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는 수많은 기관들을 설립하였다. 교회와 국가라는 두 권력의 일치가 계속되었더라면, 분명히 그와 같은 상태는 지속되었을 것이다.
부당한 비방과는 정반대로, 교회는 근대 국가들을 격려하고 있으며, 사회에 유익한 학문과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지식의 진보에 기여하는 사람은 누구나 교회의 환영을 받고 있다. 교회가 현대의 정치 체제를 적대시한다거나 현대 학문 연구의 제 발견들을 배척한다고 하는 비난은 우스광스럽고도 터무니없는 것일 뿐이다. 교회는 난폭한 견해들을 배척하며 사악하고 선동적인 계획들을 단죄하며, 아울러 하느님에게서 떠나는 완고한 정신 자세를 단죄한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필연적으로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교회는 모든 진리 안에서 학문 연구로 신적 지혜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 질서 안에 있는 모든 진리는 계시의 가르침을 믿는 신앙을 파괴할 힘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신앙을 확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새로이 발견된 모든 진리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지식을 증진시켜 줄 것이므로, 교회는 지식의 영역을 넓혀 주는 것은 그 무엇이든 언제나 기꺼이 환영하고 있다. 교회는 다른 분야의 지식에서 그러하듯, 자연을 탐구하는 모든 연구를 언제나 격려하고 증진시켜 나갈 것이다. 이러한 탐구로써 인간 지성은 전에 알지 못하던 그 무엇을 발견하여야 하며, 교회는 결코 이를 반대하지 않는다. 교회는 생활의 개선과 편의를 위하여 쓰여질 사물의 연구를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전에도 그러하였듯이 태만과 나태만을 적대시하며, 또 인간의 재능이 계발 연마되어 갈수록 더욱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온갖 예술과 공예를 장려하고, 또 자신의 영향력을 통하여 진보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이 덕행과 구원을 향하도록 이끌어 나가며, 인간의 지성과 연구가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천상 사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진력하고 있다.
신자들의 국가에 대한 관심과 노력 :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의 개인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 그리스도교적 덕행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자들은 또한 모든 차원에서 정치에 적극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신자들의 행동은 사적인 문제와 가정사 또는 공공의 문제와 관련된다. 사적인 문제에 관하여, 첫째 의무는 복음의 계명을 지키고 그 계명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덕행이 감내하기 어려운 희생을 요구할 때에도, 이러한 의무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모든 신자들은 교회를 공동의 어머니로서 사랑하여야 하며, 교회의 법에 순종하고 교회의 영광을 드높여야 하며, 교회의 권리를 수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자기 아랫사람들도 교회를 존경하고 사랑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공공의 복지와 관련하여, 자치 단체의 행정에 현명하게 참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며, 하나의 그리스도교 백성이 되도록 청소년들의 종교 교육과 참된 도덕 교육을 위한 공공 정책이 이루어지도록 효과적인 조례를 도입하려는 노력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일들에 모든 국가의 번영이 달려 있다.
더 나아가서,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시켜 전국적인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이것은 마땅하고도 유익한 일이다. 공공 문제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 또한 공동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공동선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일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이 고백하는 신앙 교리로써 그러한 의무 이행에 강직하고 충실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하다. 만일 신자들이 수수방관해 버린다면, 국가의 안녕에 별 도움이 못 되는 주장들을 하는 사람들이 한층 더 쉽게 정부의 요직을 장악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교회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손상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자들이 정치 활동에 참여하여야 할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정치 활동에 참여하면서 신자들은 정부의 시책에서 비난받아야 할 일을 승인해 주는 책임을 떠맡아서는 안되며, 가능한 한 진정하고도 참된 공공 선익을 추구하도록 정책 자체의 전환을 모색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국가의 모든 혈관 조직에 그리스도교적 지혜와 덕행의 건전한 피와 활력을 불어넣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빛을 가져다줌으로써 이교 사회들을 변혁시켰다. 고대로부터 그리스도교적 생활 양식은 사회의 모든 측면들을 변화시켜 왔다. 이교도들의 도덕과 열망은 복음의 그것과 크게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곳에서 이교도들의 미신 중에서도 순결하게 살아갔으며, 언제나 자신에게 진실하면서도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담대하게 앞장서 나갔다. 국가에 대한 충성의 모범을 보이고, 모든 분야에서 주변에 성덕의 후광을 비추었다. 자기 동포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로 이끌어 들이고자 진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덕을 잃지 않고서 영예와 품위와 직책을 유지할 수 없을 때에는, 즉시 공직 생활에서 물러서거나 자기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용기와 각오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은 개인의 집안은 물론 병영과 원로원 그리고 황제의 궁전에까지 급속히 퍼져 들어갔다. 그리하여 복음의 선포가 합법화되고 난 후 그리스도교 신앙은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나타났으며, 왕성한 힘을 갖춘 모습으로 드러났다.
이 시대에 우리 선조들의 그러한 모범을 되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들로서 알려지기를 바라고, 또 그 이름을 지니기에 합당한 가톨릭 신자들은 그 훌륭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곧바로 거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진리와 정의의 진보를 위하여 정직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라면 민간 단체들을 활용하여야 한다. 행동의 자유가 하느님의 법인 자연법으로 정해진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도록 분투하여야 하며, 그리스도교의 양식과 형태로 모든 시민 사회를 회복시키도록 진력하여야 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의 의무이다.
[평 가] 교황 레오 13세의 이 회칙에 제시된 이른바 "사회 교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며 크게 발전되어 더욱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115년도 더 지난 가르침을 특히 현대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소박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복음의 지혜로 국가 사회를 건설하도록 진력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신자들의 올바른 정치 참여에 대한 촉구는 모든 신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인구 대비 신자율보다 정치인들과 여론 지도층에 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있음에도, 복음 정신에 따른 사회 변혁의 추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정치 현실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신자들은 교황 레오 13세의 이 회칙에 제시된 가르침에 따라, 특히 민족 화합이나 남북문제의 논의 바탕에 복음 정신을 다져야 할 의무가 있다. (→ 교회와 국가 ; 교회와 정치 ; 레오 13세)
※ 참고문헌  교황청 정의 평화 평의회, The Social Doctrine ofthe Church Revisited, A Guide for Studyl Herve Carrier, S.J. 편, 강대인 역,<사회 교리란 무엇인가-연구를 위한 길잡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2. 〔姜大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