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본당

任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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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 588소재. 1956년 9월 6일 남원(南原, 현 쌍교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관할 구역은 임실읍, 강진면, 관촌면, 덕치면, 성수면, 신덕면, 신평면, 운암면, 청웅면 전 지역. [교 세] 1964년 756명, 1968년 1,042명, 1972년 794명, 1976년 868명, 1980년 1,088명, 1985년 876명, 1990년 1,574명, 1995년 1,351명, 2000년 1,089명. 〔역대 신부] 초대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1956.11~?), 2대 김후상(金厚相) 바오로(1957. 8~1961. 1), 임시 세스테뱅스(D. Serstevens, 지정환) 디디에(1961. 1~7), 3대 박성운(朴聖雲) 베네딕도(1961. 4~1964. 6) 4대 세스테뱅스(1964. 6~1969. 12) , 5대 서석기(徐錫基) 베드로(1969. 12~1972. 9) , 6대 김진소(金眞召) 대건 안드레아(1972. 9~1973. 8) 7대 세스테뱅스(1973. 8~11), 8대 김반석(金盤石) 베네딕도(1973. 11~1975. 7) 9대 박중신(朴伸信) 시몬(1975. 7~1976. 12), 10대 전대복(全大福) 라우렌시오(1976. 12~1980. 1 , 11대 왕수해(王壽海) 세례자 요한(1980. 1~1981. 1), 12대 조정오(曹正吾) 요셉(1981.1~1984. 5), 13대 박종근(朴鍾瑾) 안드레아(1984. 5~1987.5), 14대 박인호(朴寅虎) 베드로(1987. 5~1990. 5), 15대김기수(金基洙) 사도 요한(1990. 5~1994. 1), 16대 전종복(全鍾福) 사도 요한(1994. 1~1994. 9), 17대 박종탁(朴鍾卓) 마태오(1994. 9~1997. 8), 18대 정천봉(鄭千峯) 베네덕도(1997. 8~2000. 1), 19대 유종환(俞鍾桓) 마태오(2000. 1~현재).
[공소 시기와 본당의 설립] 공식 기록에 의하면 임실지역에는 1882년 거뜸이 공소가 설립되었고, 그 뒤 대명리(1885), 박실(1888), 마시동(1895), 방골(1897), 회경동 · 신전리(1898)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어 상이암·새티(1900), 李文 쑥재 · 시암내 · 구석리(1901), 수방뫼(1902), 양수정(1909), 구사발이 · 상운리(1910), 두실(1913)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 공소들은 1889년부터 전주(全州, 현 전동) 본당 관할에 속하였다가 1935년 남원 본당의 설립으로 신설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56년에 이르러 전주교구 3대 교구장 김현배(金賢培, 바르톨로메오) 주교의 사목 방침 중 하나인 '1군(郡) 1본당주의' 에 따라 임실읍 성가리에 위치한 작은 집 한 채를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던 중, 9월 6일 남원 본당에서 분리되어 임실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임명 되었으나 고령에다 노환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11월부터 교구 당가 김이환 신부가 초대 주임을 겸임하였다.
〔발전과 변모) 1957년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후상 신부는 덕치와 물우리에 공소를 설립하였고, 1958년 8월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한 후 교구 당국으로부터 시멘트 1,000포를 지원받아 공사를 시작하였다. 본당 신자들과 두실, 신전, 성수 등의 공소 신자 200여 명이 성당 건축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59년 5월 성당(129평), 사제관(67평), 수녀원(9평)을 완공하고 봉헌식과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성당 신축에 전력을 다하다 건강이 악화된 김후상 신부는 휴양으로 전임되고, 1961년 1월 임시 주임으로 벨기에인 세스테뱅스 신부가 부임하였는 데, 이때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이 마련되었다. 이어 3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성운 신부는 본당 내에 강당을 신축하였고, 강진 공소 강당과 성수 공소 강당도 신축하였다. 또한 덕치면 사곡리, 관촌면 회봉리, 성수면 성수리 소재의 산을 매입하고 개간 사업을 전개하여 지역의 어려운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임시 주임에 이어 다시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세스테뱅스 신부는 평소 교회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주장해 왔는데, 본당에서도 신자뿐 아니라 지역 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들을 펄쳤다. 산간 지대의 어려운 농촌 현실을 인식한 세스테뱅스 신부는 신자들뿐 아니라 농민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편으로 유산양(乳山羊) 사육을 장려하여 '임실산양 협동 조합' 을 설립하였고, 1968년 6월에는 39평 규모의 치즈 공장을 건립하였다. 1969년 세스테뱅스 신부가 농촌 사목 전담 신부로 전임된 뒤 5대 주임으로 부임한 서석기 신부는 어린이 놀이터를 개설하여 지역 거주 어린이들에게 개방하였다. 10대 주임 전대복 신부 재임기였던 1978년 농민회가 조직되었는데 임실 농민회는 1979년 노풍 피해 보상 운동' , 1985년 소 값 보상을 위한 기도회' 등을 개최하여 농민의 권익 투쟁에 적극나섰다. 1990년대에 들어 성당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고, 오수 · 관촌 · 강진 공소 등에 신심 단체가 결성되었다. 1994년 16대 전종복 신부가 8개월 만에 전임되고 17대 주임으로 박종탁 신부가 부임하였을 당시 본당과 공소에는 3개의 쁘레시디움만 있었고, 신자들의 활성화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전종복 신부는 전 신자 성지 순례와 성령 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신자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유도하였으며, 그 결과 1996년 6월 '천상의 은총 어머니' 쁘레시디움을 시작으로 본당과 공소별로 8개의 쁘레시디움이 창설되었다. 1997년 8월에는 오수 공소를 선교 본당으로 분리 · 설립하였고, 1998년 9월 성당 내부공사를 실시하였다. 18대 주임 정천봉 신부는 1999년 7월 40평 규모의 교육관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대 주임으로 부임한 유종환 신부는 '기도하는 삶, 성서를 삶의 중심에, 선교에 열정을 다하는 삶' 이라는 사목 목표 아래 본당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원본당 ; 전주교구)
※ 참고문헌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I , 천주교 전주교구, 199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