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910년 4월 25일 서울에서 태어나 1936년 3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황해도 사리원 본당 보좌와 수원(현 북수동) 본당 보좌를 거쳐, 1937년 5월 병환 중이던 강릉(현 임당동) 본당의 김인상(金寅相, 야고보) 신부 대신 임시로 강릉 본당으로 부임하였다가 2개월 후에 경기 양평군 마룡리(현 용문) 본당 6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청주(현 서운동) 본당 2대 주임(1940. 7~1941 6), 사창 본당 3대 주임(1941. 6~1943. 5), 강릉 본당 6대 주임(1943. 5~1945. 12)을 거쳐 1945년 12월 장항 본당 2대주임으로 부임하여 1947년 성당을 신축한 후, 1948년 9월 왕림 본당 9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1949년 6월 21일부터 시행된 유상 몰수 · 유상 분배에 의한 농지 개혁법에 의해 본당 소유 15,000평의 토지가 몰수당함에 이르자 임 신부는 본당 신자들과 함께 봉담면 사무소, 화성군청, 경기도청에까지 진정서를 제출하여 11,987평을 위토(位土)로 인정받아 완전 몰수를 면하였다. 대방동 본당 2대 주임(1955. 5~9), 후암동 본당 5대 주임(1955.9~1958. 7)과 당산동 본당 2대 주임(1958. 7~9)을 거쳐 수원(현 북수동)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59년 6월 수원 지역에서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하였으며, 1961년 6월 성당 제의방 출입구 앞에 루르드의 성모상을 건립하는 등 본당 신자들의 활동과 본당 환경을 정비하였다. 그 해 9월 천호동 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한 달 후인 10월 110개의 의자를 마련하여 성당에 비치하였으며, 그 해 11월 오오묘한 매괴' 쁘레시디움과 다음해 5월 4일 '천사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반장들의 임무를 중시하여 매주 사제관 응접실에서 반장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본당 활동에 적절히 활용하는 정책을 펴 나갔다. 1963년 6월 신당동 본당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어려운 본당 자금 사정에도 불구하고 피정과 교리 교육 강화를 통한 사목 활동을 하였으며, 1964년 5월 본당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였고, 1965년 10월에는 문화관을 증축하였다. 4년 간 재임한 후 1967년 4월 노환으로 은퇴하여 1년 간 성모병원에 입원 하고 있다가 1968년 12월 8일 간경화증으로 향년 58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북수동 본당 ; 신당동 본당 ; 왕림 본당 ; 천호동 본당)
※ 참고문헌 <황해도 천주교회사》 《대전교구 30년》1 《수원교구사》 《신당동 본당 40년사)(1948~1988), 천주교 신당동 교회, 1988/《북수동 본당 7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북수동 성당, 1994/ 천호동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 편, 《천호동 본당 40년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천호동 교회 제9지구지구장좌 본당, 1999. [白秉根]
임종구 林鍾求(1910~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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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임종구 신부와 천호동 성당 최초의 반장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