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국 林鍾國(1906~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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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신부 송별 기념(1962년 9월 18일)

임종국 신부 송별 기념(1962년 9월 18일)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906년 9월 5일 서울 영등포구 동작동에서 태어나 1932년 12월 17일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명동 성당에서 위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장연 본당 보좌를 거쳐 1935년 인천 답동 본당 보좌로 부임하여, 당시 노쇠했던 본당 주임인 드뇌(E. Deneux, 全學俊) 신부를 도와 박문학교 및 박문유치원의 경영을 담당하였다. 1937년 6월 답동 본당 5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1938년 부녀자들로 소화 데레사회를 조직하고, 1946년에는 남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복사반을 조직하였으며, 예수 성심회(1953), , 가톨릭 학생회(1955), 성우회(1956), 레지오 마리애(1957) 등을 조직하는 등 평신도들로 하여금 참여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59년 5월 천호동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먼저 본당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1959년 7월 부인회인 안나회를 조직하였고, 1960년에는 초등부 주 일 학교를 설립하여 어린이들의 교리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한편 전교 활동의 활성화와 영세식 등을 통해 신자수가 증가하자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사재를 모두 부지 매입 기금에 헌납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한 결과, 1961년 7월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약 5개월이 지나 완공하였다. 1962년 9월 8일자로 서울대교구 경리 신부로 임명되었으나, 약 10개월 만에 다시 천호동 본당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이미 본당 사정과 신자들을 잘 알고 있던 임종국 신부는 본당의 정착에 노력하고 신자들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사목 중점을 두었다. 1964년 1월 기존의 샛별 쁘레시디움을 산타 마리아 쁘레시디움으로 개칭했고, 1965년 12월 중등부 학생들의 남녀혼성으로 구성된 루르드의 성모 쁘레시디움을 창단했으며, 1966년 1월에는 사랑하올 모친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는 등 더 많은 신자들이 단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1965년 7월 수녀원 건물을 준공한 뒤 같은 해 11월 15일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여 신자 교육과 전교 활동에 큰 도움이 되게 하였다. 하지만 지병이 악화되어 1967년 3월 성모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이듬해 6월 14일에 은퇴하여 일선 사목에서 물러나 있다가, 1986년 4월 23일 노환으로 향년 80세에 선종하였다. (- 답동 본당 ; 천호동 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답동 교회, 《답동 대성당 100년사》, 1989/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황해도 천주교회사》/《새벽》 19호, 1974/ 천호동 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천호동 본당 40년사》, 199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