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치백 林致百(1803~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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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셉. 일명 군집(君執). 서울 한강변 마을의 부유한 집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었고, 10년 동안 한문을 배우러 서당을 다닌 후 활쏘기와 다른 무술도 열심히 익혔다. 또 음악과 시를 좋아하여 향락을 즐기는 무리들과 어울렸지만, 문란한 생활은 하지 않았다. 1830년경 처음으로 천주교를 알게 되었는데, 호감은 있었지만 입교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1835년 박해가 일어나자, 포졸이 되어 신자들을 도와 주기도 하였다. 이후 삼개(麻浦)로 이사하였는데, 그의 집에는 신자들의 출입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846년 5월 아들인 임성룡(林成龍)이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옹진(甕津)의 수영(水營)으로 갔으며,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자수하여 옥에 갇혔다. 며칠 후 서울로 압송된 임치백은 포청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나 처음으로 교리에 대한 강론을 듣고 세례를 받았다. 그에 대해 포장(捕長)이 십계명도 외우지 못하면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나무라자, 무식한 자녀들도 부모께 효도할 수 있듯이, 나는 배운 것은 없지만 천주께서 나의 아버지이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하여, 천주를 향한 마음이 누구보다도 열렬함을 나타냈다. 결국 3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1846년 9월 19일 정오부터 해가 질때까지 매를 맞은 후, 포청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43세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下/ 《右捕盜廳謄錄)《《日省錄》.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