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길 林和금(1911~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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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안드레아. 1911년 12월 10일 강원도 통천에서 출생. 1938년 덕원 신학교를 졸업한 뒤 3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고 그 해 6월 함북 회령 본당의 보좌로 임명되었다. 응기 · 나진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38선으로 남북이 갈린 이후 월남하여 양평 본당 3대 주임(1948. 2~1949. 9)으로 임명되었고, 서울 후암동 본당 초대 주임(1949. 9~1950)으로 부임하여 본당을 건립하였다. 1950년 1월 성신대학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1 · 4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난하였다가 몇 달 동안 미국에 다녀온 후 대구 효성여자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후 1955년 1월 대구 매일신문사의 취체역(取締役) 사장으로 취임하여 제작진을 개편하고 자유당 정권의 언론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정부의 부패를 폭로하다 신문사가 피습되는 사건을 겪기도 하였다. 1956년부터 가톨릭신문사 사장(1956. 6~1959. 6), 대구 신암동 본당 6대 주임(1956~1961. 1)으로 있다가 가톨릭대학 교수로 전임되었고, 1965년 8월에는 부학장에 임명되었다. 법원리 본당 3대 주임(1967. 8~10), 용산 본당 7대 주임(1967. 10~1971.5)을 거쳐 1971년 6월 은퇴한 후 서울 성가 수녀회가 운영하는 성가병원 · 소명여중고 · 양로원 등에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였고, 천주교 노인 복지회 대표로 있으면서 노인 복지를 위해 일하였다. 1988년 3월 21일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아 축하식을 가졌으며, 이해 7월 29일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참고문헌  매일신문사, 日新聞 五十年史》, 1996/ <가톨릭신문>, 1988. 8. 7, 11면.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