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영 任喜永(?~1801)

글자 크기
9
신유박해 순교자. 본관은 풍천(豊川). 세례명은 미상.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금사 2리 점들의 양반 출신이다. 그의 부모와 형제 자매들은 모두 천주교 신자였으나 자신만 외교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부친의 몇 차례에 걸친 설득에도 듣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중 부친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의 부친은 "나를 위해 제사를 드리면 내 아들이 아니니, 상복도 입지 말라" 고 유언하였다. 그는 상복은 입었으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제사는 드리지 않았다. 1800년 봄 부친의 소상(小祥)이 돌아왔는데 그때에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이 일로 여주관아에 체포된 그는 천주교 신자와 똑같이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이를 본 옥중의 교우들은 그의 부친에 대한 공경에 감탄하여 천주교 신자가 될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임희영은 옥중에서 대세(代洗)를 받았고, 1801년 4월 25일 여주 관아 남문 밖에서 최창주(崔昌周, 마르철리노), 이중배(李中培, 마르티노), 원경도(元景道, 요한), 정종호(鄭宗浩) 등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l 《보감》 《帛書》 《純祖實錄》 《闢衛編》 柳洪烈, 韓韓國天主教會史》 上, 가톨릭출판사, 1989.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