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천안시 입장면 신덕리 198-9 소재. 1988년 8월 17일 성환(成歡) 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관할 구역은 입장면 전 지역과 직산면, 성거읍 일부 지역. 〔교 세] 1988년 968명, 1990년 922명, 1995년 954명, 2000년 1,022명. 〔역대 신부] 초대 김영곤(金英坤) 안드레아(1988. 8~1993. 8), 2대 풍세(G.Poncet, 서봉세) 질베르토(1993. 8~1999. 2), 3대 정지풍(鄭址豊) 아킬레오(1999. 2~현재).
1900년 구포동(九苞洞, 현 안성)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공베르(A. Gombert, 孔安國) 신부는 안성 일대뿐만 아니라 천안군 목천면 일부, 진천군 백곡면 일부, 평택과 그 인근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였는데, 1930년경에는 천안에서 전교 활동을 펼치면서 입장 지역에 공소를 설립하였다. 입장 공소 신자들은 강당은 마련하지 못하였으나 '독정리' 와 '유리' 지역의 교우 집을 공소 모임 장소로 사용하면서 공소의 기틀을 잡아 나갔다. 1939년 천안(天安, 현 천안 오룡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공소는 신설 본당 관할이 되었고, 1960년 천안 본당에서 성환 본당이 분리됨에 따라 성환 본당으로 이전되었다. 공소 강당 없이 신앙 생활을 하던 신자들은 1973년 묵주 만드는 일을 하던 이규환(프란치스코)이 하장리 땅을 기증함에 따라 마침내 공소 강당을 마련하였다.
1988년 8월 입장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성환 본당으로부터 329세대 863명의 교적을 이관받았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영곤 신부는 사제관이 마련되지 않아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강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나 강당에서의 미사 봉헌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1990년 김영곤 신부는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 1,115평을 매입하여, 1991년 조립식 성당 86.2평과 교육관 21평을 건립하였고, 1992년에는 사제관과 수녀원 건물(100평)을 완공하였다. 2대 주임으로 부임한 풍세 신부는 조립식 성당의 한계를 고려하여 1995년 '성당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3년 계획' 을 세워 성당 건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였으며, 1996년에는 교적 전산화를 시작하였다. 1999년 2월부터 성거산 무명 순교자 성지를 본당에서 관할하게 되었으며,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지풍 신부는 1999년 7월 회의실과 교리실 준공에 이어 이듬해 4월에는 학생 교리실 및 창고를 건립하는 등 자율적인 본당 운영과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rrow대전교구 ; 성환 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편, 《대전교구 30년》, 대전교구 홍보국, 1988. 〔金善美〕
입장 본당
笠場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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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