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비움 [그〕kivoois [라]semetipso exinanitio [영]kcancisisolt-emp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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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육화할 때 자신의 신성을 계속 고집하지 않고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비우고 낮춰서 인간이 되셨음을 의미하는 신학 용어. 이 용어는 그리스도의 육화에서 의지적인 겸손을 표현하는 의미로 현대 독일 신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개념의 형성과 발전] 신약성서 : '케노시스' (kivowis)의 본래 의미는 '비움' 또는 '스스로 비움' 의 행동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신약성서에서 직접 사용되지는 않았다. 다만 필립비서의 '그리스도 찬가 (2, 5-11)에서 "그분은 도리어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니"라고 언급하면서 '케노시스' 의 부정 과거형인 '에케노센' ('ericooev)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예수가 스스로 낮추셨다는 의미는 성서의 다른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아버지, 제가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 곁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하소서"(요한 17, 5).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당신의 가난으로 여러분이 부요하게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2고린 8, 9).
예수의 육화는 그리스도 찬가 에서 겸손과 비움(ke-voco)으로 표현되었다. 이 찬가는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론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본문 중 하나이고, 자기 비움론(kenoticism)으로 알려진 육화에 관한 현대 이론의 근거로 인용된다. 사도 바오로는 팔레스티나 교회들에서 부르는 찬미가를 인용하여 이 찬가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성서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에 대하여 아담적 해석을 제안하고 있다. 즉 하느님과 동등해지고 싶어서 하느님께 불복종한 아담(필립 2, 6 : 창세 3, 4)과는 달리 마지막 아담인 예수(1고린 15, 45)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종의 모습을 취하였다는 해석이다. 결국 자기 비움의 신학은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라는 신앙 고백에 따르면, 예수의 인간성이 지닌 근본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교부들의 가르침 : 하느님의 자기 비움은 삼위 일체 하느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삼위 일체 하느님의 위격들 안에서 자기 스스로 또 다른 자신의 위격을 구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성부는 당신 자리를 고집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아들 성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성자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에 아버지의 구원 경륜을 펼친다. 성령도 아버지 성부와 아들 성자를 향해 하나로 친교를 맺도록 당신 스스로 아버지와 아들의 뜻을 따라 자기를 비운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의 참 신성을 파괴하지 않고 사람이 되실 수 있다고 교부들은 가르치고 있다. 테르툴리아노(160~23)는 "하느님은 자신을 모든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때 자신 스스로의 실체는 유지하면서도 가능하다" 라고 말하였다. 힐라리오(315?~367?)는 "하느님의 형상과 종의 형상, 그들은 서로서로 배제되기보다는 오히려 참으로 분류되지 않게 일치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일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오직 하나가 포기함으로써 다른 하나가 취해질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비운 자가 종의 모습을취하지만 그는 다른 인격이 아니다. 한 모습을 포기하는것이 그 실체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 비움의 행위만이 종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라고 말하였다. 또한 오리제네스(185~253)는 그리스도 영의 자기 비움을 강조하였다. 그의 그리스도론은 인간론(영, 마음, 몸의 통합체)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에서 말씀은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기에 말씀과 사람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영(靈)의 중개로 육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영으로 이루어지는 중개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불가능하고 그리스도, 즉 말씀의 영이 중개를 하여 육화가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의 영이 중개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리스도의 영이 중개를 하는 것은 영의 자기 비움, 즉 영이 자기를 비우고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러시아 정교회 : 988년 러시아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탄생하였다. 러시아 정교회는 슬라브 민족의 문화 안에 내재된 자기 비움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동화시켰다. 또한 역사를 통해 겪게 된 자기 비움의 체험은 교회 안에 자기 비움의 영성과 신학을 발전시켰다. 1015년 키예프 공국 왕의 아들들 사이에 벌어진 왕위 찬탈에서 보리스와 글렙 왕자는 자신들을 죽이러 온 자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자기 비움의 삶의 원형인 그리스도와 똑같이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았다. 그로 인해 보리스와 글렙은 러시아 정교회 최초의 성인이 되었다. 이는 자기 비움의 신학과 영성이 얼마나 러시아인들의 역사와 삶에 스며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초기 러시아 정교회의 시대적 영성은 우밀레니에(umile-nie) , 즉 무저항의 부드러운 영성으로 자기 비움의 러시아적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13~15세기까지 러시아는 타타르족 침략으로 250여년 간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는 러시아 백성 전체가 우니치제니에(unicize), 즉 자기 비움의 영성을 특별히 실천하였다. 이 당시의 정신적 지도자인 세르지 오(Sergius ofRadonezh, 1314~1392)의 삶은 모든 러시아 백성들에게 자기 비움의 삶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는 삼위 일체 수도원을 세우고 삼위 일체의 자기 비움 영성을 살도록 모범을 보였다. 또한 화가 루블료프(A. Rublev, 1360/1370~1430)는 삼위 일체의 자기 비움을 이콘으로 형상화하여 러시아 백성 전체를 자기 비움의 영성으로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영적인 힘을 보됐다.
19세기 러시아는 또 한번 사회주의 철학의 영향으로 진통을 겪었다. 결과적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면서 공산주의가 태동하였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도 자기 비움의 신학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나타났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FM. Dostoevskii, 1821~1881)의 후기 작품<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자기 비움의 신학과 영성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 작품들은 슬라브 민족주의 작가들로부터 뿌리가 내려져서 솔제니친(A. Solzhenitsyn, 1918~ )에 이르기까지 그 영성이 나타난다. 이러한 자기 비움이 드러나는 작품들은 단순히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표현한 것이기보다는 초기 러시아 역사와 함께 토착화하여 온 러시아 정교회의 영성, 자기 비움이 살아 내려온 러시아 역사의 산물이다. 러시아 문학에서 자기 비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며, 또한 서기 1000년경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아야 한다. 결국 성서에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이 바로 이 영성의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현대의 주장 : 현대 자기 비움의 신학은 육화에 관한 신학에서 출발하는데, 19세기 독일 루터교 신학자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는 또한 영국 성공회의 일부 신학자들도 받아들인 신학이다. 여기에는 자기 비움의 극단적인 해석까지 담고 있는데, 공통점은 말씀이 사람이 되면서 그 신성의 일부 또는 전부가 포기되었다는 논제를 담고 있다. 즉 말씀이신 주님이 당신의 신적인 전지전능함과 전 현존을 내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신성적 의식을 잃었으며, 심지어 육화의 순간부터 부활까지 하느님으로 계심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상에서 산 예수에게는 신성이 없다는 의미로까지 발전되어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그로 인해 자기 비움 신학은 주님 안에 신성과 참 인성이 있다는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 만날 수 있는 화해의 길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 비움의 신학은 신적 말씀(Logos)의 자기 비움 또는 겸손으로서 육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필립서에 언급된 그리스도 찬가에서 출발하였다. 이 자기 비움의 그리스도론은 토마지우스(G.Tommsis.+115)와 영국 성공회 주교인 고어(C. Gore, 1853~1932)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을 강조하였지만, 말씀의 육화는 전지전능한 말씀의 신성이 일시적으로 정지되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급진적인 시각들은 20세기 초에 사라졌지만, 온건한 형태의 자기 비움 그리스도론은 바르트(K. Barth, 1886~1968)와 라너(K. Rahner, 1904~1984)에 의해서 계속 주장되었다. (- 러시아 정교회 ; 세르지오, 라도네즈의 ; 솔로비요프, 블라디미르 세르기에비치)
※ 참고문헌  P.Henry, (DBSuppl) 5, pp. 7~161/ A. Gaudel, (DTC》8-2., pp. 2339~2349/ F. Loofs, 7, pp. 680~6871 L. Cerfaux, trans. G.Webb · A. Walker, Christ in the Theology ofSt. Paul, New York, 1959/ C.Gore, The Incarnation ofthe Son ofGod, Bampton Lectures, London, 1891/D. G. Dawe, A Fresh Look at the Kenotic Christologies, Scottish Journal ofTheology 15, 1962, pp. 337~349/ Richard P. Mcbrien ed., Encyclopedia of Catholicism, p. 7341 곽승룡, (도스토예프스키의 비움과 충만의 그리스도》, 가톨릭출판사, 1998. 〔郭承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