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0년 11월 30일에 반포한 회칙.
[회칙의 기초] 이 회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주된 사상적 기초인 전인적 인본주의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 준다. 교황은 이 회칙을 반포하기 한 해 전에 발표한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979. 3. 4)를 통하여 자신의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 사상의 핵심을 가르쳤고, 그리스도로 인해 충만해진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온전히 깨닫게 교회가 걸어갈 모든 길은 일차적으로 인간에게로 통한다"(<인간의 구원자> 14항)라는 언급은 교황 자신의 관심이 인간이며,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라는 점을 매우 간결하면서도 힘 있게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교황의 인간에 대한 관심의 기초를 교황 자신은 인간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에서 찾는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바로 이 기초가 설명되어 있다. 즉 <자비로우신 하느님>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방법론의 결론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음을 주목해야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이 인간을 중심으로 삼으면 삼을수록-다시 말해서 보다 인간 본위가 되면 될수록-그 사명은 하느님 본위로 강화되고 구현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께로 지향하는 사명이 될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인간의 여러 사조는 신본 사상과 인본 사상을 분리시키고 심지어는 양자를 대립시키는 경향이 있었고 지금도 같은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깊고도 유기적으로 이 두 가지를 인간 역사 안에다 융합시키고자 한다"(〈(자비로우신 하느님> 1항).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법론의 구조는 분명히 전통적이며 토미증적이지만 이 구조 안에는 인간 경험의 현상 위에 드러나는 신적 계시의 빛이 늘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황의 방법론은 이미 처음부터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인간학적 구조의 복합적 구조 안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세속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또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이러한 존재론적 측면에 대해 철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면 인본 사상과 신본 사상 사이에서 그리고 경험과 계시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의미는 인간 실존에 대한 현상학적 전망이 존재론적 전망과 함께 서로 만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내 용]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메시아의 메시지(1~3항) : 이 부분은 교황의 인간학적 사상의 기초이자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회칙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였고, 하느님을 드러내고 알려 준 분이며 바로 하느님의 친아들이다. 이 점을 강조하면서 특별히 인간의 존엄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철저하게 인간의 길을 따라 걸었던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속,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친히 드러내 보인 하느님과의 온전한 결속만이 그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길임을 제시한다. 따라서 교회는 신본 사상과 인본 사상을 인간의 역사 안에 융합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곧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비로우신 분으로 당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길이다.
회칙은 이 길이 메시아가 전한 메시지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메시지가 복음 정신의 핵심을 구성하며, 그 핵심 내용은 한 마디로 자비로운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삶과 행적을 통하여 '사랑이 세상에 와 있다' 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에 힘 있는 사랑을, 인간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그의 인간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다 포용하는 한없이 자비로운 하느님을 현존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자비로운 사랑의 귀감이 되신 분이다. 회칙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인 분이라 설명하면서, 자비를 사람에게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는 하나의 길로 소개하고 있다. 구약성서(4항) : 하느님의 자비가 구약성서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곧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자비' 란 선민의 '죄와 불충을 덮어 주는 사랑의 특수한 힘' 을 의미한다. 특히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패의 순간과 믿음을 상실한 때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자비란 주님과의 친밀을 나타내는 알맹이요, 그들의 주님과 나누는 대화의 알맹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약성서에서는 정의에 대한 사랑의 우위가 다시 한 번 명확하게 계시되었다.
탕자의 비유(5~6항)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 자비의 진수를 신약성서에서 소개되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였다. 탕자는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죄 때문에 아들로서의 품위를 상실했다는 심한 자책감을 갖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쏟아 오던 그 사랑에 끝까지 성실하다. 이러한 부성의 본질에서 솟아 넘치는 사랑이 아버지로 하여금 자기 아들의 존엄성에 시선을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며, 나아가 방탕한 아들에게 잃어버렸던 자신의 품위를 똑똑히 보게 만듦으로써 인간 존엄성을 향한 진리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한 것이다. 탕자가 스스로에 대한 의식 한가운데서 얻은 깨달음이 자신의 품위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이렇게 탕자가 경험하는 내면의 변화 과정을 통해 교황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 준다.
파스카 신비와 우리 세대(7~12항) :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진리는 무엇보다도 파스카 신비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게세마니에서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계시하는 과정에 근본적인 변화를 알려 준다. 이제 그리스도 자신이 가장 큰 자비를 입어야 할 분으로서, 자비를 호소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성부의 큰 자비를 호소한 그리스도였지만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고통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십자가는 아들이 아버지께 온전한 정의를 이루어드린 곳이며, 동시에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가 가장 철저하게 계시된 곳이다. 이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 자비의 계시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보다 높이 존중되고 고양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비를 받음으로써 동시에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파스카 신비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무엇보다도 파스카 신비가 흘러 넘치기를 촉구한다. 교황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실존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 세계의 인간에게 끊임없이 강조되어 온 것이 정의라고 하지만, 이 세대에 사랑이 허용되지 않을 때 정의라는 것이 오히려 정의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직시할 것을 촉구한다. 자비가 자비를 불러온다는 평범한 진리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사명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자비와 교회의 기도(13~15항) : 교황은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해야할 매우 중요한 사명은 하느님의 자비를 증언하고 고백하며 선포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곧 교회가 살아야 하는 본연의 삶이라는 것이며, 그 이유는 자비가 창조주와 구세주의 가장 놀라운 속성이기 때문이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자비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회개가 이루어지며, 이 회개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을 교회는 잊어서는 안 된다. 교황은 선임 교황인 바오로 6세(1963~1978)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끊임없이 강조한 '보다 인간다운 세계' 를 만드는 과업이 교회에 맡겨져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 관계와 사회 관계에 정의만이 아니라 '자비로운' 사랑을 도입해야 하며, 사회가 '보다 인간다워질' 수 있으려면 용서의 계기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2천년대가 끝나가는 교회와 세계의 역사에 있어서 이 험난하고도 위급한 시점에 하느님의 자비를 애걸하라는 의무를 교회에 호소하면서 교회는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도해야 하고 또 기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주요 사상] 이 회칙은 자비와 정의의 관계에 대해 매우 훌륭한 가르침을 제공한다. 이 문제는 복음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교회가 사회 생활에 대해 가르치는 사회 교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자비는 정의를 구체화하는 것이며, 정의에 좀 더 완전한 내면적 내용을 제공해준다. 교회가 해석하는 정의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충실한 증거이며, 이는 교회의 특별한 사명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가 구원을 주는 신앙의 진리임을 고백함으로써 이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신자들의 생활에, 또 가능하다면 선의의 모든 인간 생활에 하느님의 자비를 이끌어들이고 육화시키려고 노력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비가 신앙과 조화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교회는 물리적 · 윤리적 악의 모든 출현 앞에서 오늘날 인류 생활의 지평선을 덮고 있는 온갖 위협들 앞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부르짖어야 한다.
회칙이 가르치는 하느님의 자비는 정의와의 관계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즉 첫째, 자비는 정의의 일반적인 기준을 능가하는 자비로운 사랑과 정의의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이로써 어떤 이해 관계없이 그저 구체적 인간을 사랑하고 가까이 계신 하느님을 느끼게 된다. 둘째, 탕자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자비로운 사랑의 영향 아래 부드러움과 민첩함으로써 모든 인간 관계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 셋째, 더 넓은 시각에서 더 인간다운 세상을 위하여 사회 · 문화적 분야, 나아가서는 정치 · 경제 분야 안에서 관계들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이처럼 사랑은 정의 위에 위치하며, 이 사랑의 우위성은 자비를 통해 명확히 계시된다.
회칙은 자비와 정의의 관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의를 위한 법적 구조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있어서 정의란 주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가르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이는 인간 존엄성 고양을 위한 정확한 인식을 촉구하는 교황의 관심 그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준다. 인간의 갈등과 분열, 불의의 현실 앞에서 구원과 해방을 열망하고 고뇌하지만 그러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사회 제도 및 구조적인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법적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요한 바오로 2세)
※ 참고문헌 Gino Concetti ed., Dio, Ricco di Misericordia, Roma, 1980, pp. 9~1271 이동익 , 《인간, 교회의 길》, 성바오로, 1998, pp. 42~60. 265~293/ 도날 도어 오경환 역,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 - 교황청 사회문헌 연구》, 분도출판사, 1987, pp. 257~290. [李東益]
<자비로우신 하느님> 慈悲 - 〔라]DivesinMisercordia
글자 크기
10권

돌아온 탕자를 받아들이는 아버지와 같은 자비로우신 하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