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自殺 (라]suicidium [영]sui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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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전 서른 님을 받고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의 자살.
피해자인 본인 스스로의 행위에 의한 죽음. 즉 희생자 자신의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인 행위로 인해서 직접적 · 간접적으로 결과되는 모든 죽음을 의미한다. 모든 자살 형태의 공통적 특징은 동기와는 관계없이 행위의 순간에 행위의 결과를 본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희생자 자신이 일어나게 될 결과를 스스로 알고 행하는 모든 죽음이 자살이다.
자살에 대한 이해는 시대적 ·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불행한 처사로 생각되어 왔고, 경우에 따라서는 충성의 표시로, 혹은 예우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처형 방법(사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의 권위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내려진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엄격한 의미의 자살은 아니다. 그리스도교가 늦게 전파된 사회 중에는 자살을 덕스럽고 영웅적인 행위로 생각하고 권장하는 곳도 있었다.
〔실태와 요인] 자살의 동기는 모든 영역일 수 있다. 즉 종교 · 문화 · 정치 · 도덕 · 성 · 연령 · 절기 · 사회 경제적 환경과 조건 등이 있다. 자살은 소외감 · 마음의 고통 · 고립 · 분노 · 죄책감 · 심한 우울증 등의 감정과 그로 인한 무력감을 느껴 이루어진다. 자살 사례 중에는 우발적인 충동보다는 계속되는 사회적 · 경제적 압박에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자살 통계를 보면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시골 사람들보다 도시 사람들이, 젊은이보다 노인들이, 가톨릭보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저개발국보다 선진국이 더 높다. 현대 산업화 시대에는 15~19세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젊은이의 경우 장래의 불투명성이 자살 충동의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갑작스러운 국가 경제 파탄은 사업 실패와 실업률을 야기시키고 그로 인한 경제적 · 심리적 고통으로 자살 행위가 증가된다.
이처럼 자살은 사회적 환경과 직접적이고 일정한 관계가 있다. 자살자의 행동은 언뜻 보기에 개인적인 기질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사회적 조건의 보완이나 연장으로써의 외부적 표현이다. 자살자의 심리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확실한 통계가 없으나 확실한 것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개인의 정신적 소인 자체는 사회의 정신적 상태의 반향인 것이다. 오늘날 자살의 증가는 진보적 문명의 병리적 현상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살의 경향은 사회적 원인에 의거한다고 봐야하며 집단적인 현상으로 설명해야 한다. 결속력이 강한 종교일수록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종교일수록 자살자가 많다는 사실은 종교도 사회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자살에 강력한 예방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의 통합성이 강할수록 그 예방력도 커진다. 사회의 통합성이 강할수록 자살이 드물게 일어나고 사회가 해체되면 될수록 증가한다. 즉 자살은 사회 집단의 통합 정도에 반비례한다. 고도로 통합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작은 가치밖에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타적인 자살이 많게 되며, 통합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해체된 사회에서는 개인이 사회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자살이 많게 된다.
[교회의 가르침] 성서 : 성서에서는 자살에 대한 직접적 금지나 권고가 없다. 때로는 공동선을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영예롭게 여기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역사적 사실로만 언급하고 있을 뿐 윤리적인 허용이나 인정은 아니다. 이미 모세의 법에 일반적 살인 금지 규정이 있기 때문에 자살 금지 계명은 따로 표현하지 않은것 같다. 아무리 삶이 고통스럽고 슬프더라도 하느님을 저주하거나 자기 생명을 끊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욥의 말을 통해 성서가 증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예외없이 창조주 하느님의 선물인 것이다.
교부 시대 : 교부 시대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일반적인 자살이 아니라 순교 정신으로 자살하거나 정덕을 지키기 위해서 자살한 경우 칭찬 받을만한 일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한 반면, 혹자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죄를 피해서든 불행한 생활을 끝맺기 위해서든 어떠한 구실로도 자살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영웅적인 거룩한 순명 정신으로 자살했다면 질료적 자살일 뿐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것을 인정해야하고 사례를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식적 · 의지적 자살은 항상 악행이 되고 죄책이 따른다고 가르쳤다.
중세와 근세 :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자살의 부당성에 대해 자기를 사랑하라는 자연법을 거역하는 행위이고, 공동선과 단체에 손해를 끼치거나 모독이 되며, 생명에 대해서 절대권을 가진 하느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남을 사랑하고 돕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며 가장 큰 이웃 사랑으로 인정하였다.
현대 : 현대 가톨릭 교회의 공통적인 견해는 자살 그 자체가 죄이며 항상 부당한 행위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다음 네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 자신을 죽이는 것은 타인을 죽이는 일과 마찬가지로 직접 살인에 해당한다. 둘째,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를 사랑하라는 자연법을 어기는 것이다. 넷째,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 의무를 저버리는 범죄이다. 그러나 자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즉,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자기 생명을 끊는 일, 독재자의 무력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하는 일, 자식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는 일, 애국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희생하는 일등이다. 이런 경우는 특별한 종류의 자살로 보아야 하며 일반적인 자살의 범위에 포함해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 :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자기 생명을 존속시켜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고의로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거나 자살하는 것은 살인과 마찬가지로 부당한 일이며, 하느님의 절대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살은 자기 사랑의 거부이고 생존 본능의 부정이며, 이웃과 여러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정상적인 심리적 요인에 의해 자살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책임성이 감소될 수는 있으나 면제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승고한 목적을 위해, 즉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 또는 형제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거나 위험 앞에 내놓는 희생은 일반적인 자살과는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자살에 대한 교회법적 규정 : 자살자는 순교자의 대열에서 제외시켜야하고, 의도적으로 자살한 사람에게는 장례 예식을 거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교회법적 전통이다. 1917년 구 교회법전은 의도적 자살자들을 십계명과 신적 절대권을 침해한 자들로 보고 벌칙을 부가하였다. 즉 이성 능력과 자유 의지를 갖고 자살한 자에게는 교회 장례식이 금지된다(구 교회법 1240조 1항 3, 2350조2항). 그러나 이성 능력 없이 자살한 자는 이 벌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자살자의 지향이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장례 예식을 거행할 수 있으되 추문을 피해야 하고 평범한 예절로 해야한다(1240조 2항). 그러나 자살자를 위해서 개인 미사는 드릴 수 있다. 죽기 전에 참회했다면 정식으로 장례식을 거행해야 한다. 자살 미수자에게도 벌칙이 가해진다. 평신도일 경우 관면을 받지 않으면 성품을 받을 수 없으며(985조 5항), 세례 때 대부모도 될 수 없다(762조 2항 , 766조 2항, 795조 2항 . 2256조 2항). 성직자일 경우 교구장이 정하는 기간 동안 성무 집행이 정지되며, 성직록에서 제외된다(2350조) .
새 교회법에서는 자살자의 장례식 거행 여부에 대해 전통적인 거절 원칙이 중지되고 공개적 추문의 연유가 되는 분명한 죄인들에게만 장례식이 금지되고 있다(1184조). 통계에 의하면 자살 행위의 20%는 정신 질환에서, 60%는 정신병적인 성격에서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자살 당시에 본인 스스로 자유 의지를 온전히 발휘하여 사태를 판단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살자의 주관적인 죄책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 교구 주교의 사목적 판단에 맡겨놓고 있다(1184조 2항). 주교는 객관적으로 항상 단죄되어야 할 자살 행위에 대해 판단하되 애덕을 최대한 베풀어 자살자의 인간적인 나약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법적 정신이다.
〔가톨릭 교회의 윤리적 결론] 오늘날 인본주의자들과 안락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인간의 권리로 옹호하고 있다. 성서에서는 자살에 대한 확실한 단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학은 언제나 자살을 거부해 왔고 가톨릭 윤리 신학도 모든 종류의 자살을 중대한 범죄로서 배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자살) 다른 사람을 죽이는(살인 · 안락사 · 낙태) 모든 형태의 살인은 직접적 살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몸과 생명에 대해 오직 책임있는 관리와 용익(用益)의 권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본 주인은 하느님이다. 따라서 자살이나 타살은 인간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지상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 몸의 전체를 보존하기 위해 지체나 부분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원리, 즉 전체성의 원리(principle of totality)에 따라 공동체를 위해 자기 생명의 유지가 덜큰 가치가 될 때, 예컨대 다른 사람의 보호, 자유나 정의의 가치 또는 공동체의 존속 등 더 높은 가치가 위협을 당할 때는 자기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둘째,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완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자살자는 더 이상의 자기 인격 성장을 막아버린다. 그는 하느님이 부르신 자기 완성으로의 성장을 거부한다. 그는 취소할 수도 없고 교정할 수도 없는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 자기 생명을 바치는 희생이 자기 완성의 아주 중요한 방법이라면 더 높은 선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간접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으며 또 때로는 요구되기도 한다.
셋째, 자살은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실망에 대한 최종적 표지이다. 자살은 생명의 주재권을 가지신 하느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대로 일생을 마쳐야할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자살은 자유로운 상태라기보다는 일종의 비정상적인 상황이거나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나 윤리 도덕의 타락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예방의 의무] 심리적으로 관찰할 때 자살 기도는 흔히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버림을 받았다거나 사회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도와 달라고 외치는 마지막 절규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자살하도록 그냥 놓아둔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윤리적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신앙과 종교적인 신념은 자살을 방지하는 데에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자살에 대한 정확한 윤리 판단과 예방적 노력만이 자살이란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고 사고를 줄이는 방편이 된다. 구체적으로 우선 윤리적 교육이 우선되어야 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신성 불가침성을 강조하는 등 참된 교육에 힘써야 한다. 둘째, 예방 의학적 측면에서 특히 정신질환이나 심리적 불안정 요인을 치료하고 깊은 관심으로 이웃을 도와 주어야 한다. 셋째, 사회적 측면에서 인구의 분산책을 서두르고 노동 조건의 개선과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 복지적 배려가 필요하며, 경제적 안정뿐 아니라 실업의 극소화, 건전한 정신 교육에 힘써야 한다. (⇨ 살인 ; 생명권 ; 아노미 ; 안락사)
※ 참고문헌 K.H. Peschke, Christian Ethics, Moral Theology in the Light ofVatican II, vol. 2, Dublin, 1986(김 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2권, 분도 출판사, 1990)/ H.Y. Lee, Il Suicidio, Aspetti Fenomenolo-gici e Teologici-Pastorarli, La Tesina per la licenza, Roma, 1990/ 김정우,<한국의 자살 실태와 교회의 대처 방안>,《사목》 238호(1998. 11), Pp.17~271 Niceto Blazchez, The Church's Traditional Moral Teaching on Suicide, Concilium 179(1985. 3), pp. 63~74(김 창훈 역, <자살에 관한 교회의 전통 윤리>, 《신학 전망》 77호(1987, 여름), pp. 58~69)/ D. Power, Riti funebri per suicidi e sviluppi liturgici, Concilium 21(1985), PP.108~1 17/ 구자민,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 입각한 윤리 신학적 고찰》, 가톨릭대학, 1998. 〔李漢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