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동 본당

紫陽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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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광진구 자양3동 553-339 소재. 1977년 8월 25일에 성수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빈천시오 아 바오로. 관할 구역은 자양3동, 노유1 · 2동 전 지역과 자양1 · 2동 일부, 성수동 일부 지역. (교세) 1977년 1,067명, 1981년 2,380명, 1986년 3,894명, 1990년 4,527명, 1995년 5,470명, 2001년 5,158명. [역대 신부] 초대 산도발(J. Sandoval, 소선도) 요셉(1977. 8~1978. 10), 2대 가시야스(G. Gasillas, 추규웅) 가브리엘(1978. 10~1979. 7) 3대 차베스 우르비나(J.Chavez. Urbina, 하창우) 사베리오(1979.7~1981. 12) , 4대 알라로스(P. Alrarez, 안병철) 바오로(1981. 12~1984.6), 5대 코르푸스(H.Comus, 이진호) 히지노(1984. 6~1986.4 6대 콘트레라스(J.Comteras, 고) 요셉(1986. 4~1990.6), 7대 호세 마르케스(J.Jose Marquez, 마)요한( 1990. 6~1997.5), 8대 프란코(M. Franco, 김) 마우릴리오(1997. 5~2002. 9), 9대 사카리아스(E. Zacarias, 유진호) 에우제니오(2002.9~현재)
성수동(聖水洞) 본당에서는 1974년 12월 성당 부지 349평을 구입하였으며 1976년 9월 기공식을 가졌다. 1977년 3월 야간 학교인 성신학원을 설립하였고, 5월 야간 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77년 7월 성당이 완공 되었고, 8월에 성수동 본당에서 358세대 955명이 분리되어 본당으로 설정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과달루페회의 산도발 신부가 부임하였다. 1977년 9월 사제관을 마련한 데 이어 1978년 3월 유치원 개원식이 있었고, 5월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2대 주임 가시야스 신부는 1979년 1월 중 · 고등 학생 피정과 어린이 겨울 방학 교리를 실시하였다. 3대 주임 차베스 우르비나 신부는 1980년 6월부터 매월 첫 금요일 성체 강복 행사를 시작하였고, 청년 연합회를 구성하였으며, 10월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4대 주임 알라로스 신부의 재임기인 1982년 7월 소록도 방문이 있었고, 9월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 신부 초청 특별 강론이 있었다.
5대 주임 코르푸스 신부는 어머니, 화해와 쇄신, 청년 피정 등 각종 피정을 열었고, 6대 주임 콘트레라스 신부는 사회 복지, 성령 기도, 순교자 성월 등 각종 특강을 개최하였다. 1988년 8월 시골 공소 청년 봉사가 실시되었고, 1990년 1월 사랑의 나눔 운동이 열렸다. 7대 주임 호세 마르케스 신부는 1993년 9월 성전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1994년 1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의 평화를 위한 단식 미사를 개최하였으며, 6월에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가 있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본당의 날을 기념하여 나바위 성지로 성지 순례를 갔다. 1995년 9월 '북한 쌀보내기 운동' 이 전개되었고, 본당 장학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8대 주임 프란코 신부는 1997년 9월 본당 설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실시되었던 '성서 쓰기 대회' 를 시상하였고, 1999년 1월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2000년 8월 외짝 교우들을 위한 대희년 교리가 시작되었고, 9월에 인애대학(노인대학)을 개설하였다. 9대 주임 사카리아스 신부는 2002년 10월 본당 설립 25주년 성지 순례를 개최하였다.
자양동 본당은 인애유치원 설립으로 인하여 인성 교육과 자녀 교육, 선교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1억원을 목표로 소년 소녀 가장을 돕기 위한 장학회를 설립하여 매년 500만원의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가장 시급한 청소년과 청년들의 미사 참여와 단체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 大教區 教區總覽》 가톨릭출판사, 1984. 〔金志煥〕
② 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동구 자양동 20-5 소재. 1987년 2월 16일에 대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삼위 일체. 관할 구역은 자양동 전 지역과 대동 일부 지역. 〔교 세] 1987년 848명, 1992년1,284명, 1997년 1,146명, 2001년 978명. [역대 신부] 초대이범배(李範培) 바오로(1987. 2~1987. 8), 2대 이창덕(李昌德) 마르코(1987. 8~1992. 8), 3대 윤세병(尹世炳) 세례자 요한(1992. 8~1998.2), 4대 손만재(孫萬載) 세례자 요한(1998. 2~2000. 2), 5대 황화인(黃和仁) 도미니코(2000.2~현재).
제2대 대전교구장인 황민성(黃旼性, 베드로) 주교는 교구 내 교세 확장과 본당 증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에 1977년 5월 대전교구에서는 대동 본당 관할 구역인 자양동 지역에도 본당을 설립하고자 자양동 20-5(189평)와 20-48(277평) 소재의 대지를 매입해 두었다. 대지 매입 후 한동안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던 자양동 지역은 1985년 9월 옹벽 공사와 10월 가건물 공사가 완료된 후, 12월 제3대 대전교구장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의 집전으로 가건물 축성식이 거행되어 대동 본당 관할 공소로 출발하게 되었다. 1986년 10월 자양 공소에 서용태(徐容泰, 타대오) 신부가 파견되어, 본당 신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1987년 2월 16일 자양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이범배 신부가 부임하였고, 같은 해 6월 본당 주보를 삼위 일체로 정하였다. 2대 주임 이창덕 신부는 1988년 6월 본당에 노틀담 수녀원 분원을 설립하였으며, 1989년 4월에는 성전 건축 기공식을 거행한 뒤 5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다. 3대 주임 윤세병 신부는 부임 직후 성당 앞과 조경 공사를 마무리하였고, 1993년에는 교육관과 주차장 공사를 마쳤다. 그리고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한 지 약 5년만인 1994년 5월 5일 대지 576평, 연건평 642평 지하 1층, 지상 3층의 성당을 완공하여 경갑룡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성전 완공으로 외적인 본당 환경이 마무리 되자 그 다음부터는 신자들의 교육과 영성 함양에 치중하여 자양동 본당에는 현재 17개의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과 1개의 꾸리아가 발족되어 활동하고 있고, 꾸르실료 교육과 M.E 교육 등 본당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구 도시 공동화 현상으로 교세가 둔화되는 현상을 보이고있다. (→ 대전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교구 30년》, 대전교구 홍보국, 1988.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