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家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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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가정인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미켈란젤로 작, 로마 시스티나 성당 내부 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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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가정인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미켈란젤로 작, 로마 시스티나 성당 내부 벽화) .

I . 성서학에서의 가정
〔성서의 가정관〕 구약에는 결혼 제도나 가정을 일컫는 명시적인 단어가 없다. 다만 부모와 자녀, 손자 또는 형제, 친척들이 함께 모여 대가족 제도의 삶을 취하고 있음을 레위기 18장 1-18절의 근친혼 금지 규정을 통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남녀 관계의 원론적 규정은 유대 사회의 윤리 사회성을 감지케 하는 척도임과 동시에 남녀 관계가 다소 비도덕적이었다는 점도 알게 한다. 따라서 결혼과 가정에 대한 구약의 법적 규범을 확대 해석한다면 남녀의 결합은 본능적 수준에서 시작되어 차차 윤리 사회 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사회진화론자들의 주장(J. Bachofen, H.L. Morgan)이 정당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의 가정, 결혼관도 구약 안에서 발견되는데, 야훼 유일신 사상에 대한 철저한 신관과 충실성을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비유한 것이 그것이다. 사실 남녀의 사랑, 충실, 가정의 조화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유대를 나타내 주는 상징적 모형이다. 이는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실재적 일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남녀의 체험, 이상적 가정 : 남녀의 사랑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한 체험이다. 야훼 전승 문헌은 아담의 갈빗대를 통한 하와의 창조를 언급하면서 결혼과 가정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창세 2, 24). 보다 후에 편집된 제관계 문헌은 사람을 만물의 영장과 지배자로 인식하면서 그 핵심적 특징으로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남녀가 구별되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창세 1, 26-27). 이 두 구절이 결혼과 가정에 대한 구약성서의 기본적 가르침과 고백이다.
유대인은 남자와 여자를 철저히 구분한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성과 완성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말하자면 남녀의 성 구별은 생명의 신비, 존재의 신비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남녀 나름대로 스스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성의 도움을 요구한다. 인간의 역설적 면이다. 남녀가 서로 구별되고 다르다는 것은 서로 보완적이어야 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연 원리이다. 따라서 사람은 필연적으로 연대적일 수밖에 없다. 연대의 첫 출발과 실현은 부부의 결합과 가정을 통해 이룩된다. 사실 사람은 그 자체로 온전하며, 자주적이고 만물에 앞선 고귀한 존재이나 동시에 불완전하며 완전을 찾아 자기 완성을 위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한 존재이다. 이는 삶을 통해 얻은 사람의 심리적, 사회적 공동 체험이다. 이 공동 체험을 야훼 전승 문헌의 저자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기에 그를 도울 짝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라 고백한다(창세 2, 18).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하느님께서는 그의 갈빗대를 뽑아 그의 짝 하와를 만드셨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너무나 기뻐한다. 그는 바로 자신의 뼈, 자신의 분신이며 자신과 같은 생명의 전달자이기 때문이다(창세 2, 23). 야훼 전승 문헌의 저자는 비록 아담이 하와에 앞서 창조된 것으로 묘사했지만 여기서의 핵심적 요소는 결코 창조의 순위나 남녀 종속 관계가 아닌 바로 창조의 주체가 하느님이며 인간은 홀로 있을 수 없기에 남녀의 결합은 필연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남녀는 서로 보완적 존재이며 동등한 반려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남녀의 결합은 부모와 가정을 떠나 새로운 삶을 이루는 개척과 창조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랑은 타자와의 일치를 통해 실현된다. 일치의 실현에서 행복이 주어진다. 따라서 남녀의 결합은 사랑의 가시적 실현이며 징표이다. 둘이 하나가 되는 물리적 결합은 자기 실현의 구체적 방법이며 이 결합을 통해 새 생명이 움트게 되어 있다. 따라서 사랑에는 늘 자유와 책임이 한 짝처럼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야훼 전승 문헌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곧 예수의 가르침과 같이(마태 19, 6), 본래 사람은 일남 일녀의 결합을 통해 가정을 이룩해야 한다는 원리의 확인이다. 이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과 품위에 적합한 가장 오래 된 제도였다는 민속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으로 전통적 가치를 지닌다. 또 다른 추정은 잘못된 현실, 성(性)에 대한 잘못된 인식, 일부다처제 등 일그러진 가정 제도에 대한 고발과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아브라함 이후에 펼쳐졌던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 생활에 대한 비판적 규범이며 척도가 된다. 창세기 2장의 선언은 원칙이다. 그런데 기존의 성서 해석과 같이 문화와 상황의 요구, 즉 인류 번식과 본능적 경향의 삶에 따라 이 원리가 다소 잠정적으로 유보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2장에 대한 예수의 해석은 원론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으로 평가된다(마태 19, 1-9).
제관계 문헌인 창세기 1장 26절은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며 그 핵심적 근거로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존재라고 선언하고 있다. 모상이란 하느님의 완전한 닮은꼴 이상의 그 어떤 본질적 상통성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품위와 존엄이다. 그런데 인간은 남녀로 구별되어 창조되었다. 때문에 남녀 인간, 이들을 통한 공동체만이 하느님의 품위를 장엄하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느님 사랑이 실현된 장소이며 하느님 현존의 구체적 표지이다(마태 18, 20).
구약 문화권의 가정 현실 : 불의와 무질서, 죄로 가득 찬 세상(창세 6, 5 이하)은 하느님의 분노를 산다. 가정 질서의 파괴도 분명 그중의 하나이다. 노아 홍수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창조 원리, 생명 원리, 조화의 원리에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노아의 아들 함은 생명의 원리인 성(性)에 대한 불경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창세 9,22 이하).
아브라함은 사래가 자녀를 낳지 못하자 사래의 배려로 여종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게 된다(창세 16장). 이집트 여인 크루라도 여종 출신의 첩으로 추정된다(창세 25장). 야곱은 레아와 라헬 자매를 차례로 아내로 맞이하고(창세 29장) 이어 그들의 여종 질바와 빌하를 소실로 맞이하여(창세 30장) 결국 네 명의 부인으로부터 열두 아들을 낳는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내력이다. 따라서 유대 문화권은 철저한 일부다처제의 유목 문화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롯의 두 딸이 부친과 결합하여(창세 19장) 자녀를 낳아 모압과 암몬족이 생겼다는 기술이다. 이것은 물론 모암과 암몬에 대한 멸시의 근거로 그 기원의 불륜성을 고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사회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혼혼(混婚)의 원시 시기를 추정케 하는 자료라 생각된다. 또한 루우벤의 추행(창세 35, 21)이 꾸중받고 저주의 대상이 되었지만(창세 49, 3)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 사이에 펼쳐진 사건(창세 38장 이하) 등은 사회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예화라 생각된다. 그러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근거가 하느님께 죄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창세 39, 9)은 남녀 관계 특히 결혼의 중요성과 성(性)의 품위를 선언한 귀중한 자료라 여겨진다. 어쨌든 구약은 일부다처제의 문화권에 속한다. 사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친아들이 70명이나 되었다(판관 8, 30). 엘카나도 아내 둘을 거느리고 있었다(1사무 1, 2). 다윗에게도 첩들이 많았다(2사무 5, 13). 솔로몬은 공식 아내가 700명이었고 동시에 300명의 첩 들이 있었다(1열왕 11, 3). 이것은 왕의 체면 문제와 관련하여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왕조 시대에 살던 평민들이 처첩(妻妾)을 거느렸다는 증언은 전혀 나타나있지 않다.
특히 출애굽기 21장 7-11절은, 비록 아버지가 딸을 팔 수 있다고 허용하지만 이 여종을 소유한 주인은 다시 그를 팔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비록 매매와 소유의 대상이 된 여인이라 하더라도 그 여인에게 인격성을 부여하고 있다. 구약의 규범은 어느 경우에든지 억울한 경우를 최소화해야 하며 약자를 보호해야 함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사랑이 남녀 관계의 핵심이라 할지라도 여인에 대한 편애가 자녀들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서는 안된다(신명 21, 15-17). 인격성, 사랑, 자녀에 대한 고른 사랑, 이 모든 것이 가정의 조화를 위한 기본 원리들이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욱 사랑했고(창세 29, 16-18), 엘카나는 자식없는 한나를 위로했다(1사무 1, 5). 이사악은 리브가를 맞이하여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잊게 된다(창세 24, 67). 사랑은 최상의 묘약이다. 따라서 사랑
은 그 특성상 일부일처제를 지향한다. 잠언 5장 18-20절이 이를 입증해 준다. "젊어서 맞은 아내에게서 즐거움을 찾아라. ··· 늘 그의 사랑으로 만족하여라 ··· 어찌 탕녀에게 빠지며 유부녀를 끼고 자겠느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하는 교훈이다. 현숙한 아내에 대한 칭송(잠언 31, 10-31)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풍요로움과 조화된 가정의 기쁨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의 책이라 불리는 아가서는 바로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며 동시에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예범이며 상징이다.
그러나 사람은 늘 본능의 유혹 앞에 서 있다. 본능을 따라 사는 삶은 결국 무질서와 죄를 가져오며, 끝내는 하느님께 대한 엄청난 배신으로 이해되었다. '일부다처제' 라는 유목민 특유의 생활 양식 가운데에서도 유대인들은 남녀의 품위와 가정의 질서를 분명히 인식했다(창세 12, 10-20 : 19, 1-11 : 26, 7-11 ; 34, 1-12)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과거와(에제 16장) 그 딸들에 대한 고발(호세 4, 13 이하), 그리고 정부들의 유혹(호세 2,4-15)을 언급하면서 온갖 음행을 질타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대한 배신이 곧 음행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분명히 간음을 금지하고 있다(출애 20, 14). 지혜 문학은 다른 부인의 유혹에 빠지지 말도록 당부하고 있다(잠언 5, 2-5).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범한 부도덕성을 성서는 분명히 꾸짖고 있다(2사무 13장 이하). 하느님께서 바세바를 범한 다윗의 잘못을 단죄하신 사실이 역사 기록을 통해 낱낱이 고발되고 있다(2사무 11-12장). 간음, 매음, 강간, 혼음, 오나니즘 등 본능과 원욕에 따른 부도덕한 관계는 모두 하느님의 분노를 자아내며 벌받게 마련이다. 구약성서는 사랑과 인격에 근거한 일 부일처제를 가정의 기본 원리로 하여 자녀 출산과 함께 하느님과 동족 앞에 정결한 삶을 살도록 늘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사랑과 성실의 관계에서 이해한 구약의 정신은 바로 가정이 하느님을 이해하는 첫 배움터임을 분명히 일깨워 준다.
신약의 가르침 : 신약에도 구약과 마찬가지로 가정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연관된 자료를 통해 삶의 기초가 되는 가정이 구약의 연장선 위에서 어떻게 그 가치가 보완되고 이해되었는지 종합해 볼 수 있다.
마태오 복음 5장 27-32절은 간음 금지의 명령에 내면적 지향을 첨부하여 요구하고 있는 복음적 삶의 철저한 양식이다. 세례자 요한의 헤로데에 대한 질책은 본능과 권력의 남용에 의한 부도덕한 남녀 고발의 대표적 예가 된다(마르 6, 14-29 ; 마태 14, 1-12 ; 루가 9, 7-9). 한편 바울로는 부부의 관계, 가정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에 연결시켜 설명하고(에페 5, 21 이하), 사랑과 질서를 이룩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사도행전과 바울로의 서간에서 확인하듯, 가정은 사도 시대에 있어서 신도들이 모여 성찬례를 거행했던 교회 그 자체이기도 했다(갈라 6, 10 ; 사도 17, 4-12 : 필레 2장 : 1고린 16, 19 ; 로마 16, 5 ; 골로 4, 15 ; 사도 16, 15). 비록 바울로의 후기 가르침이 남존여비 사상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고에 머물러 있긴 해도 부부와 부모 · 자녀의 관계를 사랑과 질서, 순종과 헌신이라는 그리스도의 삶의 핵인 아가페를 통해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에페 5, 21-33 ; 6, 1-4 ; 골로 3, 18-21 : 1베드 3, 1-7). 특히 그는 고린토전서 5장 1-5절에서 계모와의 부도덕한 동거 생활을 이방인에게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가증스러운 폐습이라 대노하여 지적하고 나아가 온갖 음행을 엄하게 꾸짖고 있다(1고린 6, 12-20). 그는 또한 나름대로 신앙과 가정 생활의 조화를 위하여 그 특유의 사목적 지침을 제시하기도 했다(1고린 7장). 사목 서간에서 바울로는 감독과 보조자의 자격으로 한 여자만을 아내로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1디모 3, 2. 12). 이것은 당시 아직도 일부다처제의 풍습이 살아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원의 본질은 남녀의 관계, 가정을 뛰어넘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 실현 방법인 세례는 바로 유대인-이방인, 자유인-노예, 남자-여자라는 삼중의 차별성을 깨는 평등한 새로운 인간의 구현,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창조된 인간을 지향하고 있다(갈라 3, 28). 그러나 오늘날 여성신학계에서는 바울로의 후기 가르침과 성서적 분위기가 여전히 여성 경시, 가부장제의 남성 중심 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하면서 예수 운동의 핵심인 남녀 평등의 구현, 곧 사랑과 일치의 완전한 친교 공동체를 이룰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당시 법과 규정, 문화 전통을 극복한 예수는 소외된, 잊혀진, 경시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위한 실천에서 새로운 사회, 인간 구현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늘 나라의 실현이다.
물론 예수 친히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지만(루가 2, 31 이하) 그리스도에 대한 추종은 때로 부모, 형제, 친척, 가정까지 버려야 하는 결단도 요구한다(마태 10, 34-39 ; 루가 12, 51-53 ; 14, 26-27). 소년 예수의 가출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루가 2, 41 이하). 하느님 나라를 위한 철저한 봉헌의 삶은 필연적으로 결혼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종말론적 선택을 요구한다(마태 19, 12 ; 1고린 7, 25 이하). 구원의 삶, 부활의 삶, 영생의 삶은 바로 현실의 가정을 초월한 전혀 새로운 양식의 삶이기 때문이다(마르 12, 18-27 ; 마태 22, 23-33 ; 루가 20, 27-40). 따라서 가정이란 결코 이기적 집단이 아닌 하느님 나라를 향한 개방성, 그리고 이웃을 위한 연대적 삶 안에서만 그 참 가치가 확인되는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가정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친교의 현장이 된다.
〔실천 원리〕 가정의 의미와 중요성은 생명의 존엄과 직결된다. 사람은 특히 성장하여 자립할 때까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무는 가정의 실천 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 이 사랑에 대한 자녀들의 응답인 부모의 공경이 가정을 이루는 요소이다. 곧 혈연에 기초한 사랑의 관계가 가정이다. 따라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권위와 순종은 법적 개념 이전에 형성된 사랑에 그 뿌리를 둔 자연 원리이다. 본능적 사랑과 윤리적 규범의 필연적 관계이다. 이를 우리는 흔히 자연법이라 부른다.
가정은 사회의 모체이며 인간의 기본 제도로 삶의 중심이다. 가정은 또한 인간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해 주는 근거이며 희망을 갖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가정은 고통을 극복케 하는 능력의 원천이며 문학, 예술, 종교 등 영감과 창작의 원천이다. 가정이란 인간의 삶 바로 그 자체이다. 따라서 가톨릭의 사회 교리는 가정의 보호와 권리를 위해 국가 사회에 앞선 개인의 존엄과 가정의 가치를 선언하고 있으며 합당한 삶의 영위를 위해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가정의 가치 선언은 언제나 인간 존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인간 제도는 인간을 그 목적과 동기로 한 인간 중심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이와 같이 사회 정치 제도도 가정을 목적과 동기로 삼아 올바른 인간관, 건전한 가정관을 통해서만 사회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존재론적으로 볼 때 가정은 언제나 사회와 국가에 앞선 우선적 가치임을 직시해야 한다. 건강한 가정만이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교회를 이룬다.
※ 참고문헌  Enciclopedia Cattolica V, Famiglia 편, Vatican, 1950/ Enciclopedia Filosofica Ⅱ, Famiglia 편, Venezia-Roma, 1957/ P. Grelot, Le couple humain dans L'écriture, 《LD》 31, Paris, 1962/ E. Hillman, Polygamy reconsidered, New York, Orbis books, 1973/ J.E. Kerns, The the-ology of Marriage, New York, 1964/ J. Leclercq, Marriage and the family,New York, 1941/ O.M. Liebard, Love and Sexuality, Wilmington, N.C.Consortium Books, 1978/W. McManus, Marriage guide for engaged catholics, New York, Deus Books, 1961/E. Schußler-Fiorrenza, In Memory of Her, 1983(김애영 역, 《크리스챤 기원의 여성 신학적 재건》, 종로서적, 1986, pp. 139~307). 〔咸世雄〕
II . 동양 철학에서의 가정
중국 문화권에서 가정은 한문 글자 ''家'' 의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가족 공동체' 를 의미한다. 종교학자 조셉 기다카와(J. Kitagawa)는 유교 사회가 지닌 세계관의 두 초점으로서, 하나는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라고 언급하였다. 그만큼 가족은 유교적인 도덕 규범 · 사상 · 문화 · 제도 등의 모든 영역에서 그 핵심을 이루면서 개인 존재와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고 동시에 세계 구성의 근본 요소를 이룬다. 따라서 '가정' 의 의미는 유교적 인간 이해, 인간관계의 질서 및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 요소가 되고 있다.
〔가족과 개체〕 유교의 가족 제도 내지 가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먼저 개체의 인격을 근본으로 하는 유교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유교 사회는 친족 질서를 중요시하는 대가족적인 사회 집단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이 가족 관계의 구조에서는 그 권위가 제일 항렬이 높고 연로한 어른에게 있다 하더라도, 가족 질서의 기준은 각자에게 있다. 곧 나를 중심으로 부모 · 조부모 · 증 조부모 · 고조부모와, 아들 · 손자 · 증손 · 현손의 '4등친' (四等親)이라는 친족이 구성된다. 따라서 유교의 가족 질서를 평가하는 척도인 '촌수' (寸數)도 자기를 기준으로 모든 가족 관계의 구성 원리와 범위를 측량한다. 그만큼 유교의 가장 중심 사고는 개체성에 그 기준을 둔다.
유교적 가족 관계의 기본 구조의 특성은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고, 그 도덕 규범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로 지적된다. 이이(李珥)도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사친장〉(事親章)에서 효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이는 자기 몸을 베어내고, 살을 깎아서라도 부모를 섬기는 것을 효도의 모범으로 강조하는 당시의 통속적 효도 의식이 유교적인 효도의 기본 태도는 아니라고 명확하게 지적한다. 그는 효도가 나오는 근원을 해명하면서, "천하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나 자신이요, 나 자신이 가장 귀중하기 때문에 부모가 귀중하다"고 언급한다. 사람이 남한테 재물을 주면 재물이 많으냐, 적으냐, 중한 것이냐, 가벼운 것이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정도가 달라지듯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자기의 소중한 생명 곧 자기 몸을 남겨 준 부모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교의 가족적 도덕 규범으로서 효도' 는 그 출발점을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근본을 두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유교에 대하여 가족주의에 속박되어 개인을 매몰시킨다는 비판은, 그 역사를 통한 사회적 폐단에 대한 지적일 뿐, 유교의 근본적 인식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가정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은 부모 자식 관계이지만, 발생적으로는 부부 관계가 가장 앞선다는 사실이다. 《주역》의 <서괘전>(序卦傳)에서는 "먼저 천지가 있은 다음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다음에 남녀가 있으며, 남녀가 있으니까 그 후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다음에 군신 관계도 성립한다"고 언급한다. 곧 '부자' 관계에 앞서서 '부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부자 관계만을 유교적 가족 질서의 유일한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유교의 본래 입장은 아니다.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 의례(家禮)에서도 혼례를 근본으로 삼는다. 곧 혼례를 '인륜의 대사(大事)' 라 하여, 혼례가 바로 잡히지 않고 부부의 윤리가 바로잡히지 않으면, 부자의 윤리, 가족의 윤리, 사회의 윤리 모두가 붕괴된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유교적 가족 의식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 속에 부부 관계에 대한 의식도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유교적 생명관과 가족 의식〕 유교적 생명관 : 유교의 가족 의식을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인이 오랜 전통을 통하여 생활해 왔던 유교적 가족 질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유교적 생명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그리스도교적인 의식이 깊이 침투되면서, 잠재적으로는 유교의 전통적 생명관을 받아들이지만, 의식적으로는 거부함에 따라 유교적 가족 의식을 이해하는 데 큰 곤란에 부딪치게 된다. 유교적 전통의 생명관과 그리스도교적 생명관을 단순화시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적 생명관은 일차적으로 모든 개체는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육신은 부모로부터 받았지만 하느님이 육신 하나하나에게 직접 진정한 생명인 영혼을 부여해 주었다. 이러한 개체의 영혼은 신(神) 앞에서 신에게 직접적 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관계이다. 이에 비하여 유교적인 생명관은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유교의 생명관은 인간이 한 개체로서 천(天)과 관계를 맺는 성품이 부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생명은 혈통의 연속성 속에서 독립된 고리들이 하나의 긴 사슬을 이룬다. 곧 고리 하나하나에 개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교적 생명관에서는 인간이 죽은 뒤 이 세상을 떠나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해도 이 세계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혼백' (魂魄)이라는 새로운 형태로서 그 후손들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조상과 후손의 공동체로서 가정 : 유교적 생명관의 가장 뚜렷한 사례로 유교 전통 사회에서 가정마다 설치되어 있는 조상의 사당(祠堂) 곧 가묘(家廟)를 들 수 있다. 살아 있는 후손과 죽은 조상이 함께 존재하면서 제사 의례를 통하여 만나는 유교 가정의 사당은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비유하자면 성전(聖殿)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한 가정의 사당에는 부모와 조부모 등 선조들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고 있다. 그런데 이 신주는 죽은 조상을 기념하는 상징물이 아니라 조상의 혼백이 이 신주에 깃들어〔依憑〕 있는 곳이다. 따라서 조상과 후손은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예를 들어 모든 후손들이 출입을 할 때마다 마치 자녀들이 출입할 때 부모나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듯이 사당에 인사를 드리고 드나든다. 또 어떤 좋은 음식이나 그해 첫물의 음식이 생기면 먼저 어른에게 드리고 그 다음 자녀들이 나눠 먹는 것처럼 새로운 것, 귀한 것은 사당에 먼저 드리고 그 후 후손들이 나눠 갖는다. 이런 행위는 선조들이 결코 유리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어떤 면에서는 비인도적이라고 지적될 수 있겠지만, 죽은 사람에게도 죄가 새로 밝혀지면 징벌을 한다. 그 예로 잘못된 재판의 경우이지만, 조선 초기의 선비인 김종직(金宗直)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참변 때 그는 이미 죽은 다음인데도 무덤을 파고 시체를 꺼내어 목을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형벌이 내려졌다. 이것은 사후에도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의 생명이 지속하는 것을 말해 준다. 물론 사후에도 공로가 인정되어 관직이 높아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사후 에 받은 벼슬로서 '증직' (贈職)은 본인에게 적용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죽은 자의 조상에게까지도 적용된다. 이런 사실은 유교 사회가 인간을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존중하는 생명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인의 의미 : 혼인의 경우에도 조상 제사의 의미를 매우 중요시한다. '무엇 때문에 혼인하는가? 라고 물을 때, 당사자의 애정은 개인적이며 감정적인 문제로 가볍게 여겨지고 그대신 '조상 제사를 받들고 후손을 계승하기 위한 것' (奉祭祀 繼後嗣)이 가장 큰 목적이 된다. 혼인에 의한 자손 출산으로 맺어지는 혈연 관계의 가족적 유대는 가정의 존립을 위한 근본이 된다. 따라서 맹자 (孟子)는 "불효에 3가지가 있으나 대를 이을 자식을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 라고 하였으며, 아들을 낳기 위해 비상한 관심을 지녔던 전통이 있다. 그 결과 아들을 낳을 수 없는 경우에는 친족 사이에 입양 제도가 일반화되었으나, 혈통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이성(異姓)의양자는 허용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혈기(血氣)가 이어지며, 형제 자매 사이에 같은 혈기를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에서 동기(同氣)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떤 면에서 혼인의 중요한 목적이 유교인의 신앙적인 목적과 연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개체의 생명의 문제가 아니라, 이 생명이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각 개인의 생명은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고 후손과 더불어 있으며 개인의 행동은 그 후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의 처벌을 받을 때 가족들이 공동 처벌을 받게 되는 연좌법(連座法)도 유교적인 생명관, 가족관으로 볼 때 단지 불합리하고 비인도적인 형법이 아니라 정당성이 상당히 인정되었다.
가족의 유대와 연속성 : 유교 고전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유교적 가족 의식의 혈연적 연속성에 대한 신념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어리석은 늙은이가 산을 옮긴다' [愚公移山)는 우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공(愚公)은 어떤 대가족의 제일 웃어른이었다. 그는 큰 산 밑에 살다 보니 장을 보러 갈 때는 한바퀴 둘러서 700리 길을 가야 하는 불편이 있
으므로 그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가족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어리석은 우공의 가족들은 '흙을 파내서 산을 없애면 될 것' 이라는 의견에 일치하였다. 이 말을 듣자 그 옆집의 꾀 많은 늙은이는 "자네 같은 늙은이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이며, 풀 한 포기 뽑을 힘도 없는데 이 큰 산을 어떻게 없앤다는 것이냐?라고 조롱을 했다. 그러자 우공은 "나야 얼마 못 살지만 내가 못하고 죽으면 내 아들이 할테고, 아들이 못하면 손자로, 손자의 손자로 무궁하게 이어갈 것이니, 어찌 무궁한 후손으로 유한한 산을 못 없애겠는가?" 라고 대답했다. 이 우화 속에는 매우 본질적인 유교적 생명관과 가족관에 관한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적어도 '나는 나이고 내 자식은 자식이다' 라는 식의 엄격한 개별적 단절이 아니라, 내 자식과 내 후손은 나 자신의 연속으로 믿는다' 라는 신념으로서, 부모와 자식, 조상과 후손 사이에 존재의 필연적인 연속성이 성립한다는 유교적 가족 의식의 근본적 확신이 바탕을 이룬다. 이러한 생명관이 있기 때문에 《주역》의 <곤패>(坤卦)에서는, "선을 쌓은 집안에는 내가 다 복을 받을 수 없지만 반드시 후손에게 경사가 있고, 악을 쌓은 집안에서는 반드시 후손이 재앙을 받는다" 라 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한 상벌이 후손에게로 계승되는 가족적 유대의 연속성에 대한 확신을 내포하고 있다. 조상의 묘를 명당에 써서 후손이 죽은 조상의 힘 곧 음덕(陰德)을 입을 수 있다는 풍수설(風水說)에 의한 장속(葬俗)이 유교 전통사회에 성행하였던 것은 잘못된 속신(俗信)이지만 조상과 후손의 유대 관계에 대한 유교적 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유교 사회에서는 살아서는 조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죽은 뒤에도 후손에 대한 책임을 갖게 된다. 곧 이 세상에 대한 한 사람의 책임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자손의 문제까지 연결되는 가족적 연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유교의 혈연 중심적 가족 의식 속에는 개인이 단절되고 고립되는 소외가 심각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개인이 가족적인, 혈족적인 연속성 속에서 유대의 범위가 확산되어가고, 고립과 소외를 벗어나는 생명에 대한 이해가 유교적인 가족 의식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교적 가치의 실현 단계로서 가정〕 유교에서 가정의 뿌리는 가족 구성원인 개체이다. 곧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가는 근본 동력은 나 자신이며, 나아가 천하가 다스려지는 근본 문제는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 개인이 자기 인격의 수양(修身]을 근본으로 하여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齊家],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平天下)으로 그 실현을 확산시켜 간다. 그렇다면 이 천하를 다스리는 출발점은, 개인적 인격 수양의 다음 단계인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회적인 규범으로서의 윤리적인 체계는 가족적인 윤리 속에서 출발한다. 가족 관계에 윤리가 세워졌을 때 바로 윤리 그 자체가 정립되며, 거기에서 모든 사회 질서가 확장될 수 있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의식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예로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가 인간적인 도덕성을 실현하는 근본이다”(孝弟也者, 爲仁之本也)라는 공자의 말씀을 들 수 있다. 즉 인간다운 삶의 근본은 가족적인 도덕의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도덕의 근본은 우리 마음속에 심어져 있지만, 인간이 이 세계와의 관계를 확장하는 과정은 먼저 친족을 사랑하는 마음 에서 시작한다. 친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모든 사물까지 사랑할 수 있다.
맹자가 격렬하게 비판했던 같은 시대 사상가로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있는데, 이 양주와 묵적에 대해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고〔無君〕 부모를 부모로서 여기지 않는다〔無父〕' 고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묵적은 겸애(兼愛)주의자 곧 박애주의자인데, 박애 정신의 출발점은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부모를 다른 사람과 평등하게 보게 되며 부모로 여기지 않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양주는 위아(爲我)주의자 곧 이기주의자로서 자신에 대한 사랑에만 집착하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데만 집착하면 사회적인 질서를 무시하여 파괴하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교 전통에서는 반유교적 가치로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는다' 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조건을 내세웠으며, 이단(異端)의 특징으로서도 이 조건을 적용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도덕 규범의 새로운 인식을 추구하였던 정약용은 인간이 추구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서의 인(仁)을 두 사람〔二人〕, 즉 두 사람의 관계로 해석하여 "인간 됨이란 두 사람의 관계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인' (仁) 속에서는 한 인간을 중심으로 윗사람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아랫사람과의 관계라는 상하 좌우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그 윗사람과의 관계가 '효' (孝)이고, 아랫사람과의 관계는 '자' (慈)이며, 이웃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는 '제' (弟, 悌)로 제시된다. 이러한 '인' (仁)의 형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자애롭고 형제간에 우애 있는 효(孝) · 제(弟) · 자(慈)의 가족적 상호 관계의 도덕 규범이 바로 덕의 기본 형식이요 일반적 규범 체계의 기본 범주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된다. 곧 모든 윤리적 질서는 바로 효 , '제', '자' 의 가족적 도덕 규범을 확산하면서
성립되는 것이니 이 규범은 위로 향하고 옆으로 향하고 아래로 향함으로써 모든 방향으로 상호 교류하는 통로를 열어 주고 있다.
따라서 유교적 가족 윤리도 효 를 중심으로 하는 위를 향한 수직적 질서가 아니라 모든 방향에서 교류하는 상호적 질서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가정의 확장은 국가(國家)를 하나의 가족적 관계로 이해하여, 임금을 군부(君父)라 하고 왕후를 국모(國母)라 한다. 나아가 그 극단적 확장으로는 장재(張載, 橫渠)가 《서명》(西銘)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주(天地)를 하나의 가정으
로 이해하여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임금을 그 맏아들(宗子)로 제시하여 우주 일가(一家) 의식을 확인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유교의 윤리 체계는 자기에서 출발하지만 가정을 통해서 사회로 점점 확산되어 가는 확장적인 윤리 체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유교 전통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따르면, 유교가 가족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독자적 위치를 충분히 확보해 주지를 못하고, 개체가 가족 질서 속에 매몰되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속박적인 가족주의적 생활 관습은 농경 사회적 전통에 적합하였으나 현대 산업 사회에는 부적합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물론 유교 이념이 한편으로 개인적인 수신(修身)의 문제를 매우 중시하고, 자신의 문제를 모든 문제의 근본으로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가 사회적 공(公)의 규범도 강조되고 있다. 유교적 가정 개념은 개인을 가족으로 결합시키고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기초를 이루는 조직이라 본다. 바로 이런 논리에서 유교 이념에 뒷받침되어 왔던 전통적 가정은 가족주의, 혈족주의에 폐쇄되지 않고, 개인의 수양론적 내면성과 개체 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사회적 세계적 질서의 확보로 성장 확대되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혼인)
※ 참고문헌  琴章泰, 《유교 사상과 한국 사회》, 성균관대 출판부, 1987/ 金斗憲, 《조선 가족 제도 연구》, 을유문화사, 1949/ 成百曉, 《小學集註》, 전통문화연구회, 1993/ 赤塚忠 외, 조성을 역, 《중국 사상개론》, 이론과 실천, 1987. 〔琴章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