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존재가 다른 것으로부터 있게 된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있는 것.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완전한 충만함을 갖고 있는 '존재 자체' (ipsum esse). 이 용어는 사물의 근거를 문제삼는 고대 철학이 스콜라학에 수용되면서 절대적 존재인 하느님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존재 자체인 하느님은 모든 '우연유' (偶然有, ens contin-gens)의 궁극적 근거인 '필연유' (必然有, ens necessarium)이며, 제1 원인(causa prima)이다.
〔의미의 발전〕 고대 철학자들은 세계의 구성과 기원 문제 그리고 사물의 생성과 변화를 고찰하면서, 이들의 공통 원리, 즉 '아르케' (ἀρχή)가 무엇인지를 탐구하였다. 탈레스(Thales, 기원전 624?~546)는 그것이 '물' 이라하였고,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85?~525)는 '공기' 라고 하였다. 이후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르케에 대한 탐구를 유(有, ens), 즉 존재자의 존재와 생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83~322/321)는 이전의 학설을 종합하여 이 문제를 존재론적인 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문제를 다룬 <형이상학》을 저술하였고, 그 학문을 '제1 철학' 이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제12권에서 이전 시대 철학자들이 '아르케' 라고 불렀던 것은 우주의 운동원리이고,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제1의 원동자 곧 가장 신적인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최초의 원동자가 플라톤의 주장처럼 세계 밖에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가, 아니면 세계 안에 내재하는 질서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세계 안에 내재하면서도 그 위에서 통괄한다고 설명하였다. 즉 자연의 목적인은 자연과 무관한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관을 가진 이른바 '공동적인 질서 세움' 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운동인과 목적인은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주는 전체적 통일을 유지하는 궁극적인 원리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우주 운행의 원리를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타자(他者)를 움직이는 '부동의 제1 동자' (primus motor im-mobilis)라고 이름 붙였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을 받아들여 스콜라 철학과 신학의 풍부한 결실을 가져왔다. 특히 그는 존재의 근거 문제를 탐구하여 철학과 신학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 냄으로써 모든 존재자의 궁극적인 근거이며 존재 자체인 하느님 인식을 지향하였다.
〔개념의 형성〕 '자존유' 라는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론에서 핵심 논제인 '유의 존재(esse)와 본질(essentia)의 구별' 그리고 모든 우연유의 보편적 원인, 즉 '제1 원인' 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되었다. 스콜라 철학은 '유' 의 존재론적 구조인 존재와 본질의 문제를 해명하였다. 그러나 존재와 본질을 논할지라도 근원적으로는 존재 자체' 가 존재의 근거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존재와 본질 : 중세 철학에서 처음으로 존재와 본질을 구분한 사람은 아비첸나(Avicenna, 980~1037)였다. 그는 필연유의 경우 존재와 본질이 실재적으로 일치하지만, 우연유는 존재와 본질이 실재적으로 구별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우연유 토마스는 무한한 존재 자체인 하느님과 대비하여 우연유를 유한유(有限有)라고도 부른다-에 대해 존재와 본질의 개념을 구분하고, 실재적으로 구별된다고 하였다.
개념 구분에 있어서 토마스가 말하는 '엔스' (ens) 즉, 유는 '존재의 현실' (actus essendi)을 의미한다. 또한 유는 '있는 주체' 이거나 '가능적인 것' 을 뜻한다. 즉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고 현실화되지 않은 유' 라는 것이다. 반면 '본질' 은 "그것에 의해 어떤 것이 일정한 존재를 갖는 것" (Hoc per quod aliquid habet esse quid)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어떤 사물에 대하여 "그것이 무엇이냐?" 란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그리고 '존재' 는 "어떤 것이 그것으로인해 현실적으로 있는 것이다" (Esse est id quo aliquid actuest)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그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있다" 라고 대답하면, 존재가 제시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는 '존재의 현실' 을 의미한다. 한편 '존재 그 자체' 는 존재의 현실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 안에 어떤 제한성이 없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만나는 존재자는 모두 우연유이며, 우연유는 제한되고 다수화되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존재가 제한되고 다수화되는 원리가 '본질' 이다. 왜냐하면 본질은 가능태(potentia)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은 그 제한성으로 인해 존재를 무제한적인 존재와 구별함으로써, 한 유를 다른 모든 유와 구별하였다.
이러한 구분에 근거해서 토마스는 우연유에서 본질과 존재의 실재적 구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문제삼는 것은 존재와 가능적인 본질 사이의 구별이 아니라, 존재와 '현실적인 본질' 사이의 구별이다. 즉 우연유의 본질은 그 존재 밖에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사람이 무엇인지, 불사조(不死鳥)가 무엇인지는 사물계에 그런 것이 존재하는가와는 별도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존재와 본질이 합치하는 존재를 제외한 모든 우연유에 있어서는 본질이 존재와 구별된다. 실재적으로 존재가 본질과 같은 것은 본질의 개념에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우연유의 존재는 본질의 개념에 내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연유에 있어서 존재는 본질과 실재적으로 구별된다. 따라서 존재와 본질이 동일한 '유'는 '하나' 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존재는 가능태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에 제한이 없어 존재 질서에 있어서 무한하다. 이와 같이 유일하며 무한한 존재는 '자립하는 존재 자체' (ipsum esse subsistens)이며, 자체 내에 존재의 충만함과 모든 완전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존재를 토마스는 '하느님' 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토마스는 하느님과 다른 우연적 존재 사이의구별은 하느님의 필연성과 다른 존재자의 우연성의 차이에 있다고 하였다. 하느님은 '순수 현실태' 이므로 무한하고 유일하지만, 다른 모든 존재는 현실태와 가능태, 본질과 존재가 합성된 것이므로 유한하고 다수이다.
존재와 본질의 근거 : 우연유의 존재와 본질은 하나의 공동 근원에서 유래되지 않으면 하나인 존재자를 구성하지 못한다. 즉, '유' 의 원리인 본질과 존재는 '근원적 일성' (根源的 一性, Ursprungseinheit)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근원적 일성은 존재와 본질 두 가지 중 하나에서 유래되거나 아니면 존재와 본질의 이중성에서 유래되는 제3의 '유' 에서 기인한다. 이런 제3의 '유' 는 존재와 본질로 합성되기 때문에 근원적 일성을 지닐 수 없다. 또한 '일성' 의 근거는 본질일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의 현실성은 본질의 가능성에서 기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본질의 가능성은 존재의 현실성에서 기원한다. 그러므로 존재가 본질 안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존재 안에 근거한다. 본질은 존재의 규정적 양태이며, 유한적 실현에 있어서 존재의 가능성이다. 그런데 이런 양태와 가능성은 근원적으로는 존재 자체(ipsum esse)에 근거해야 한다. 그것은 '유' 가 어떤 양태를 취할 것인지의 규정을 존재 자체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 에 있어서 존재와 본질의 근원적 일성은 필연적으로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는 다른 존재에서 유래되는 존재가 아니고 '존재 자체' 이며, 모든 존재 현실의 충만으로서 절대적 존재, 즉 하느님이다.
우연유와 필연유 : 우리가 세계 내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는 우연유이다. 이런 우연유는 자체 내에 존재 이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이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원인을 가져야 한다. 이런 원인을 '필연유' 라고 한다. 왜냐하면 모든 우연유는 자기 존재의 근거를 필연적으로 다른 것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우연유도 존재의 궁극적 근거일 수 없다.
그러나 필연유는 우연유처럼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와 본질이 같은 존재이며 '존재 자체' 이다. 즉 다른 것으로부터 더 이상 존재를 부여받지 않는 존재이며, 스스로 완전한 충만을 가지고 존재하는 '자존유' 이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는 우연적 존재의 궁극적 근거이고, 원인 계열에 있어서 '제1 원인' 이다. 또한 필연유는 '위격적 존재' 이다. 왜냐하면 그가 부여한 자연의 작용에는 목적성이 있으며, 그 존재의 유비적 분유자 중에는 인격적 존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연유는 인격적 존재자들과 자연의 궁극적 근거이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를 하느님이라 부른다.
한편, 토마스는 자신의 주저 《신학 대전》에서 '다섯가지 길' 로 하느님 존재를 논증하였다. 즉 부동의 '제1동자' (第一動者, primus motor), '제1 능동인' (第一能動因, prima causa efficiens), 모든 우연유가 필연성을 가지는 원인, 모든 우연유의 선성(善性)과 진성(眞性) 그리고 완전성의 모형인(模型因, causa exemplaris), 모든 우연유를 목적으로 질서 지어 주는 '통치자'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가 바로 하느님이라고 하였다. (→ 아리스토텔레스 ; 유 ; 토마스 아퀴나스 ; 형이상학)
※ 참고문헌 정의채,《형이상학》,열린, 10th ed., 1997/ ─,《존재의 근거 문제》, 열린, 4th ed., 2000/ Thomas Aquinas, Ⅰ, q.2, a.3/Thomas Aquinas, 정의채 역,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와 본질에 대하여》, 서광사, 1995/ M. Müller · A. Halder, 강성위 역 《철 학소사전》, 이문출판사, 1988/ J. Duplacy,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교 전망 편집부, 1984, pp. 380~381/ DJ. Allan, The philosophy fAristoteles,Oxford Univ. Press, 1970(장연란 역,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이해》,고려원, 1993)/ E. Coreth, Grundriss der Metaphysik, Tyrolia Velag,Innsbruck · Wien, 1994/ E. Craig, 《EP》 1, pp. 333~334. 〔權九植〕
자존유 自存有 〔라]ens a se 〔영〕self-existence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