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배교한 후 경상도 흥해(興海)에서 유배 생활 중 사망한 최해두(崔海斗)의 참회록(懺悔錄) .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지만 책의 문체나 내용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즉 저자가 《경세금서》(輕世金書)와 같은 수준의 교회 서적을 읽었고, 성인전을 좋아했음이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식층에 속해 있었고, 교리 지식도 깊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유박해 때 배교한 후 경상도 흥해로 귀향간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 책의 저자가 최해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해두는 이 책에서 《경세금서》 외에도 조과경(早課經), 진복 팔단(眞福八端), 회죄경(悔罪經) 등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리고 천주십계 중 6계까지의 해설을 첨가하면서 자신의 배교를 크게 뉘우치고 통회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필사본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최해두는 자신의 처사촌인 윤유일(尹有一, 바오로)의 권고로 입교한 후,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최창현(崔昌顯, 요한) 등 당시 교회 지도급 인물들과 교류하였다. 1810년 신유박해 때 그는 자신의 숙부인 최창주(崔昌周, 마르철리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시 피신하였으나, 이후 자신의 부친인 최상은(崔相殷)이 대신 체포됨으로써 즉시 자수하였다. 그러나 포도청에서 심문받던 도중 배교한 후, 같은 해 5월 10일 흥해로 유배되었고, 오랜 유배 생활 끝에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순교자와 증거자들》, 1993. 〔白秉根〕
<자책> 自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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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