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죄나 보속할 죄벌이 남아 있는 사람이 현세나 내세의 연옥에서 받게 되는 잠시적 벌. 지옥에서 받는 영원한 벌, 즉 '영벌' (永罰, damatio)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모든 죄는, 소죄까지도 피조물들에 대한 불건전한 집착을 초래하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나 죽은 후에 연옥이라고 부르는 상태의 정화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정화로 죄의 잠벌에서 벗어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472항).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하면 죄는 용서를 받지만 잠벌은 그대로 남는다. 잠벌은 '가벼운 죄' (소죄)에 따르는 벌이나, 고해성사로써 용서받은 '죽을 죄' (대죄)로 말미암아 남아 있는 벌이다. 이러한 잠벌에 대한 개념은 죄와 벌은 구분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보속 및 연옥 교리와 연관되어 형성되었다. 모든 죄에는 용서받았을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벌이 반드시 따르며, 또 그 벌은 현세에서나 후세에서 어김없이 기워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지옥은 영원한 멸망의 상태이므로 지옥벌은 영원히 지속되지만, 현세에서의 벌이나 연옥의 벌은 잠정적인 것이기에 현세에서 마땅하게 기워 갚지 않았으면 연옥에서 보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념의 발전〕 초기 교회 시기부터 교부들은 성서의 구절들(예를 들어 1고린 3, 15 ; 1베드 1, 7)을 참고로 잠벌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중에서 잠벌에 대한 가르침에 큰 영향을 준 교부는 테르툴리아노(160~223)였다. 그는 예수의 산상 설교 중 "진실로 당신에게 이르거니와, 마지막 과드란스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마태 5, 26)라는 언급에서 빚을 갚는 곳이 죽은 이들의 감옥' (άδης, Hades)이라고 해석하였다. 결국 살아 있는 동안 하느님과 화해하지 못하고 결합되지 못한 사람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며, 마지막 한 푼까지 깨끗이 갚아야만 그곳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상에서 다 기워 갚지 못한 죄의 결과가 있다면 죽은 후에도 당연한 벌을 받아야만 '죽음의 세계' 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잠벌에 대해 자신의 저서 《대화집》(Dialogues)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진리이신 그분께서 어떤 사람이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확인하신 것으로 보아(마태 12, 31)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최후로 심판하기 전에 정화하는 불이 존재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로 보아 우리는 어떤 죄들은 현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죄들은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39).
중세의 신학자들,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죄(culpa)와 벌(poena)을 구분하였고, 베드로 롬바르두스(1095~1160)는 '죄과(罪過)가 있는 상태' (reatus culpae)와 '마땅히 벌받아야 할 상태' (reatus poena)를 구분지었다. 죄는 사랑과 참회 행위에 의해서, 즉 하느님의 용서하심으로 즉시 사해지지만 죄에 상응하는 벌은 없어지지도 줄지도 않고 오직 기워 갚아야 한다. 제2차 리용 공의회(1274)는 "자기 죄에 대한 참회의 진정한 결실로써 보속하기 이전에 자기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죽은 이들은 사후 '연옥의 벌' (poenis purgatoris)로써 정화된다"라고 선언하였다(DS 856). 잠벌에 대한 보속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죽은 후 '정화하는 벌' 에 의해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고해성사에 관한 결의문> (1551)에서 '연옥이라고 부르는 상태의 정화로 죄의 잠벌에서 벗어난다' 라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영벌과 마찬가지로 잠벌은 "하느님께서 외부에서 가하시는 일종의 복수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죄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DS 1712~1713)라고 하였다.
〔대사와 연옥〕 대사 : 잠벌과 관련되어 형성된 개념이 대사(大赦, indulgentia)이다. 대사는 이미 용서받아 소멸된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벌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이다. 잠벌을 사면해 주는 대사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작용한다. 대사의 근본 목적은 현세 생활 중에 잘못하였지만 용서받은 죄에 따르는 응분의 잠벌을 면제하는 데 있다. 그러기에 교회법은 "대사는 죄과에 대하여는 이미 용서받은 죄에 따른 잠시적 벌에 대한 하느님 앞에서의 사면이다" (992조)라고 규정하였다. 현세의 벌은 보상, 예방, 교정의 기능을 지닌 데 반해, 내세의 벌은 보속과 정화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소죄나 잠벌이 남아있어서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고 죽었으면 연옥에 가서 그 벌을 겪어야 한다. 연옥은 잠벌의 '상태' 로서 잠벌을 겪으면서 정화해 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연옥 : 잠벌의 개념은 연옥의 교리를 발전시키는 데 작용하였으며, 연옥의 특징을 분명히 밝혀 준다. 말하자면 연옥은 잠정적인 과정이고 하느님께 대한 지복직관(至福直觀)이 지연된 상태이다. 또한 하느님과의 결합을 저해하는 결함을 말끔히 씻어 내는 정화의 과정이기에 이 과정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속의벌' 은 연옥의 교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정화나 형벌 중 어느 개념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연옥 교리의 뜻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벌이 야기시키는 고통 또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마지막 정화 과정, 이 두 가지 뜻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도 연옥의 의미가 달라진다. 잠벌은 연옥이 뜻하는 정화 · 성숙의 과정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새로이 해석되어야 한다.
연옥은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느님과 결정적으로 만나게 되는 상태, 즉 인간이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과정이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현세 중에도 이루어지지만 죽음의 순간에 그 만남은 결정적이다. 그런데 죄의 잔재가 남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이 상태는 고통이 수반되는 정화의 차원을 지니지만, 아울러 해방의 차원도 지닌다. 우리가 지상에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벗어나는 힘겨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을 정화시키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연옥 불' 을 통과하고 연옥의 벌을 겪게 된다. 인격적이고 역사적 과정이라 할 수 있을 연옥은 인간 인격체가 자기의 모순, 자기의 이기심을 하느님과의 마지막 상봉의 순간까지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이기심의 마지막 결점까지 씻어 낼 수 있다. 그 만남의 순간은 우리가 결함을 보다 뚜렷이 의식함으로써 겪게 되는 고통의 순간일 것이다. 그런 순간은 결정적 행복이 시작되는 때이며 하느님의 구원 사랑에 의해 마련된다. 사랑은 정화시키는 힘이 있고 또 그래서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 잠벌은 정화해 주고 성숙시키는 사랑의 그 같은 고통을 뜻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과의 만남은 인간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체험을 겪게 한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히브 10, 31). 인간과하느님의 만남은 두려운 사건으로서 체험된다. 인간은 자신의 죄악성, 무능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불처럼 태워버리고 압도하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감당하기 어려움을 체험한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마치 자신을 태워 삼켜 버리고 정화시키는 불 앞에 서는 것처럼 무서움을 느낀다. 인간이 자신의 죄스런 처지를 볼 때, 죽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결정적 만남 즉 하느님의 심판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태워 버리는 불과 같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연옥은 완성되지 않고 사랑 속에서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인간이 거룩하고 무한하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의 한 순간이다. 연옥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상태, 그래서 인간이 정화되는 만남이다. 그러기에 잠벌은 하느님이 실정법에 의해 부과하는 벌이 아니라 죄의 본질 자체로부터 연유하고 고통을 유발시키는 결과로 알아들어야 한다.
교회는 잠벌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현실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사랑을 실천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께 대한 친교를 회복하면 죄의 영벌은 면제되지만 잠벌은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은 갖가지 고통과 시련을 인내로 견디고, 때가 되면 죽음을 침착하게 맞음으로써 죄의 잠벌들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비와 자선 행위와 더불어 기도와 여러 속죄 행위로 '묵은 인간' 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인간' (에페 4, 24)으로 갈아입도록 힘써야 한다"(1473항). (→ 대사; 보속 ; 연옥 ; 영벌)
※ 참고문헌 가톨릭대학 교리사목연구소 · 주교 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역,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정진석, 《교회법 해설-교회의 성사법》 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J.B. Libanio · M.C. Bingemer, 김수복 역, 《그리스도교 종말론》, 분도출판사, 1989. 〔崔榮喆〕
잠벌 暫罰 〔라〕poena temporalis 〔영〕temporal punis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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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