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송파구 잠실 본동 187번지 소재. 1977년 12월 7일 청담동(清潭洞) 본당과 천호동(千戶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예수성심. 관할 구역은 잠실 주공 1 · 2 · 3 단지, 잠실 본동 일부. 〔교 세〕 1977년 1,814명, 1982년 8,193명, 1987년 14,136명, 1992년 14,644명, 1997년 6,682명, 2001년 6,620명. 〔역대 신부〕 초대 이병문(李炳文) 베드로(1977. 12~1983.8), 2대 김정수(金晶壽) 레오(1983. 8~1989. 10), 3대 류영도(柳榮道) 디오니시오(1989. 10~ 1994.8), 4대 황인국(黃仁國) 마태오(1994. 8~1998. 9), 5대 박항오(朴恒五) 마르티노(1998. 9~1999. 10), 6대 박인선(朴仁善) 도미니코(1999 9~현재) .
1975년 9월 천호동 본당 관할 구역인 잠실 동쪽 지역에 대단위의 시영 아파트가 세워짐에 따라 그곳 지역 신자들의 공동체가 필요하게 되어 1977년 시영 공소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청담동 본당 관할 구역인 잠실 서쪽 지역은 신흥 개발 지구로 선정됨에 따라 교세도 자연히 증가하여 본당 규모의 사목이 필요하게 되어 1977년 5월 14일 잠실 공소가 개설되었다. 하지만 공소가 개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교세가 급격히 증가하자 교구에서는 조속한 시일 내에 본당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1977년 12월 7일 잠실 공소와 시영 공소를 합하여 잠실 본당을 설립하였고, 초대 주임으로 이병문 신부가 부임하였다. 당시 관할 구역은 잠실 공소 구역이던 잠실 주공 아파트 · 잠실동 · 신천동 · 삼전동 · 방이동과, 시영 공소 구역이던 잠실4동 · 송파동 지역이었다. 세대 수로는 청담동 본당에서 편입한 392세대와 천호동 본당에서 편입한 77세대 등 모두 469세대였다.
초대 주임 이병문 신부는 1977년 12월 17일 잠실 공소로 사용되었던 신세계 상가 2층에 소재한 50평 규모의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사제관용 15평 아파트를 청담동 본당의 지원금과 잠실 공소 운영금으로 충당하여 매입하였다. 1978년 1월 잠실 · 시영 구역을 6개 구역, 57개 반으로 개편하였고, 같은 해 2월 12일 본당 주보 〈잠실〉을 창간하여 700부를 발행하였다. 그리고 신자수에 비해 성당이 협소하자 1978년 4월 23일 본당 설립 신축위원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각 단지별로 기금 청약 신립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10월 28일에 본당 신축 이전까지 사용할 임시 성당으로 4단지 후문 앞 엘리트 상가 3층 113평을 매입한 후 입주하였으며, 12월 9일에는 사제관을 임시 성당으로 이전하였다. 1979년 1월 15일 본당에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을 설치하였으며, 2월 25일에는 제1대 사목 위원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3월 4일 단지 미사를 봉헌하여 단지 내 신자들의 긴밀한 유대 관계와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같은 날 까리따스 수녀회 소속의 2명의 수녀가더 부임하여 초등 · 중 · 고등부 교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5월에 신자들의 도움 꾸리아가 창설되었고, 6월 10일에는 잠실 청년회가 결성되었다. 1979년 10월 28일 잠실동 200-3 소재 341.7평을 매입하여 성당을 건립하기로 확정한 후 1980년 3월 8일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성전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신축 기금 모집에 모든 신자가 참여하였으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점점 어렵고 힘들어진 가운데 1980년 10월 말 성당이 완전히 준공되지 못한 상태로 우선 사제관과 수녀원을 임시 성당에서 신축 성당으로 모두 이전하였다. 1981년 3월 21일 성당 신축 공사를 완료하여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해 5월에 동잠실(東蠶室, 현 신천동) 본당을 분리하여, 잠실 동쪽 지역(장미, 시영, 진주 아파트)을 새 본당에 이관하였다. 한편 성당을 신축하였으나, 신자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6월 12일 성당을 증축하기 위해 잠실동 200-4 소재의 대지 53.6평을 매입하였다. 1982년 3월 23일 성당 증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이듬해 6월 4일 공사를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82년 6월 20일 마천동(馬川洞) 본당 소속의 가락 공소를 이관받아 1983년 5월 29일 가락 지구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기위한 준비에 착수한 후, 8월 가락동(可樂洞) 본당을 분리하였다.
2대 주임 김정수 신부는 1988년 4월 용인군 식금리에 교육관 신축 공사를 시작한 후 이듬해 4월 30일 공사를 완료하여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1988년 8월 석촌동 본당을 분리하였고, 1992년 12월 6일 본당 창립 15주년 행사와 더불어 《잠실성당 15주년사》를 발간하였으며, 1993년 10월 잠실7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4대 주임 황인국 신부는 1995년 4월 16일 청소년 상담실인 '늘푸른터' 를 운영하기 시작하여 지역 사회 봉사와 선교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1996년 2월 잠실5동 본당을 분리하였으며, 7월 22일에는 지하 교리실과 만남의 방 구조 변경, 사무실 확장, 전기 승압 공사 등 본당 개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쾌적한 환경으로 바꾸었다. 1998년 4월 10일 용인 교육관을 교구에 헌납하였으며, 5월 3일 '전신자 성서 읽기 운동' 을 전개하였다. 5대 주임 박항오 신부는 부임 직후인 1998년 10월 10일 '선교와 우리의 희망' 이란 주제로 정월기 (鄭月基, 프란치스코) 신부의 강의를 마련하여 본당 신자 교육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1999년 1월 30일 '선교 100일 운동' 과, 6월 1일 '묵주 기도 1억단 바치기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6대 주임 박인선 신부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이하는 2002년에 신년 음악회, 성서 40주간 시행, 부활절 전야 철야 피정, 성지 순례, 전신자 참여 시노드 토론 마당 등의 기념 행사를 전개하여 공동체의 쇄신과 내적 성숙을 위해 노력하였다.(→ 서울대교구 ; 천호동 본당 ; 청담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본당현황>(사목방문자료), 천주교 잠실 성당, 2001/ 《청담 본당 십년사》, 천주교 청담동 교회 , 1984/ 천호동 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천호동 본당 40년사》, 천주교 천호동 교회 1999. 〔白秉根〕
잠실 본당
蠶室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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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