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성문서(聖文書) 중 하나. 이스라엘 지혜 문학의 일차적이고 대표적인 문헌.
〔이름과 경전 내의 위치〕 '잠언'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살' (מָשַׁל)인데, 그 어근은 '같다, 비슷하다, 비교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어 성서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 '파로이미아' (Παροιμίες)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마샬' 은 본래 서로 같거나 비슷하거나 또는 반대되는 두 가지 사실이나 사람을 대비시키는 짧은 말이다.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직접 또는 간접으로 교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알맞게 표현된 말은 은쟁반에 담긴 황금 사과와 같다" (25, 11), "자기 땅을 가꾸는 이는 양식으로 충만하고 헛것을 뒤쫓는 자는 지각없는 자이다"(12, 11)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마샬' 은 이와 같은 원래의 의미만이 아니라, 경구 시 · 운문으로 된 신탁· 비유 · 우화 등 넓은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넓은 의미 때문에 다양한 형식의 말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일컫는 명칭으로 채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라틴어 성서에서는 '마샬' 을 한자 '격언' (格言)과 의미가 비슷한 '프로베르비움' (proverbium)으로 옮겼다. 여러 서양 언어에서 이 명칭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한자권에서는 '바늘잠' 〔箴〕과 '말씀 언' 〔言〕으로 이루어진 '잠언' (箴言)이 쓰이는데, '잠' (箴)이라는 말 자체가 본래 문체의 하나로 경계(警戒)의 뜻을 펴는 글을 일컫는다. 이러한 명칭상의 의미를 볼 때 '마샬' 은 형식에, '잠언' 은 내용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다.
히브리어,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는 이 책을 첫 구절에 따라 '솔로몬의 잠언들' 이라고 부른다. 반면, 현대의 서양 언어에서는 '잠언들의 책' 또는 '잠언들' 이라고 한다. 한자권에서는-시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그냥 '잠언' 이라는 말로 책 전체를, 또 그 안에 담긴 개개의 격언을 일컫는다.
잠언은 일반적으로 욥기와 시편 다음에 배치되는데,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모세 오경과 예언서에 이은 성문서에, 칠십인역 성서에서는 모세 오경과 역사서에 이은 시서(詩書)에 속한다. 이 책은 또한 법 문학 예언 문학·역사 문학 등처럼 독자적 유형을 이루는 지혜 문학으로 분류된다. 잠언과 함께 욥기와 코헬렛, 제2 경전의 집회서와 지혜서도 여기에 속한다. 잠언은 바로 이스라엘 지혜 문학의 일차적이고 대표적인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잠언을 처음부터 끝까지 간단히 일별해 보아도, 이 책이 한 작가에 의해 저술되거나 수집된 잠언집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여러 모음을 그것들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하나로 모은 문헌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여러 군데에 나오는 제목이다. 먼저 "솔로몬의 잠언"(1, 1 ;10, 1 ; 25, 1)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특히 1장 1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임금"과 "다윗의 아들" 이라는 솔로몬의 두 가지 정식 칭호도 함께 쓰여, 이 첫 절이 앞 부분(1, 1-9, 18)만이 아니라 책 전체의 표제로 붙여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30장은 "아굴의 말" 31장은 "르무엘의 말"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이상의 경우처럼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현인들의 말씀" (22, 17 ; 24,23)이라는 표현이 나와 각각 그 이하가 현인들이 지은 금언을 모은 것임을 시사한다. 30장 15-33절은 이른바'수(數) 잠언' 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례로 '···한 것이 셋, ···한 것이 넷이 있다' 처럼, 공통된 성격을 지닌 사물이나 사람을 점층적으로, 곧 X + 1로 나열하는 방식이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인 31장 10-31절은 각 절이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를 따라가며 시작하는 '알파벳 노래' 로 앞 부분과 구분된다. 이렇게 볼 때 잠언은 길이와 내용이 다양한 여러 단락으로 나누어졌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각 단락의 내용까지 간략히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① 표제(1, 1) : 솔로몬의 잠언
② 목적(1, 2-7) :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베푸는 것이 목적임을 밝힌다. 지혜 추구의 바탕이 주님을 경외함, 곧 올바른 신앙이라는 사실도 명시한다.
③ 훈계와 경고(1, 8-9, 18) :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스승이 제자를 타이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 아래 한 가지 내용을 길게 말하는 것이 이 첫 단락의 특색이다. 여러 주제 가운데 특히 사람과 가정을 파괴로 이끄는 불량한 친구와 해로운 여자의 위험이 강조된다. 이 단락의 관심사는 또 무엇보다도 지혜가 바람직한 삶의 바탕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혜가 의인화되어 젊은이들을 자기에게 부르기도 한다.
④ 솔로몬의 첫째 잠언집(10, 1-22, 16) : 앞 단락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균형을 이루는 두 줄의 짧은글〔二行聯句〕로 되어 있다. 이 글들은 대부분 서로 관련없이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즉 현실의 한 면에 대한 사실 또는 진실을 축약된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지혜와 정의와 근면과 신앙으로 이끌고자 한다. 특히 의인과 악인, 슬기로운 사람과 교만한 자 또는 우둔한 자,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자 등을 대조시키는 가운데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후반부(16-22장)에서는 하느님의 대리인인 임금과 관련된 잠언들도 나온다.
⑤ 현인들의 첫째 잠언집(22, 17-24, 22) : 앞 부분과 같이 삶의 다양한 면들을 보여 주는 이 단락은 짧은 경구들 그리고 그보다 수가 더 많은 긴 잠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아멘엠오페의 교훈》이라는 이집트 문헌을 개작한 부분(22, 17-23, 14)은 이스라엘 지혜 문학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잘 보여 준다.
⑥ 현인들의 둘째 잠언집(24, 23-34) : 이 짧은 단락은 현인들의 첫째 잠언집과 같은 형식으로 특히 대인 관계에 관한 교훈과 게으름에 관한 경고를 담고 있다.
⑦ 솔로몬의 둘째 잠언집(25, 1-29, 27) : 대부분 솔로몬의 첫째 잠언집처럼 두 줄(=한 절)로 된 짧은 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역시 앞 부분처럼 생활의 여러가지 사항과 관련되어 있다. 옛사람들의 삶에는 임금과 왕실도 중요한 구실을 하였기 때문에, 그에 관한 잠언들 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28-29장에서는 부, 부자와 가난, 가난한 자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기도 한다.
⑧ 아굴의 첫째 잠언(30, 1-14) : 마싸라는 이방 민족인 아굴이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고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⑨ 수 잠언(30, 15-33) : 주로 부정적 또는 긍정적 종류의 자연 현상이나 인간 부류를 수 잠언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⑩ 르무엘의 잠언(31, 1-9) : 마싸 부족의 모후(母后)가 자기 아들 르무엘 임금에게 말하는 교훈 형식으로, 여자와 술과 빈민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⑪ 훌륭한 아내(31, 10-31) : 경제적 · 종교적으로 가정의 중심 역할을 하여 가족들에게 칭송받는 현모양처를 '알파벳 노래' 형태로 기린다. 이 여인은 특히 5장과 7장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제시되는 질 나쁜 여인들과 대조를 이룬다.
〔문학 양식〕 칠십인역이 잠언을 시서(詩書)로 분류하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이 책은 다른 지혜 문학서 들처럼 전부 운문으로 되어 있다. 운문으로 된 많은 잠언은 시편과 마찬가지로 병행법(竝行法) 또는 대구법(對句法)이라는 특징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떠한 사실을 한 번의 서술로 마치지 않고 그와 관련이 있는 다른 사실을 대비시켜, 마치 입체 사진을 보여 주는 것처럼 하는 문학 방식이다. 두 사실의 관계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병행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동의적 병행법으로, 둘째줄에서 같은 의미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분노에 더딘이는 용사보다 낫고 제 영을 다스리는 이는 고을을 정복한 자보다 낫다"(16, 32). 둘째는 반의적 병행법으로, 둘째 줄에서 반대되는 사실을 대조시키는 것이다. "게으른 손바닥은 가난을 지어내고, 부지런한 이들의 손은 부유하게 만든다"(10, 4). 셋째는 점층적 병행법으로, 첫째 줄에서 관찰한 바를 둘째 줄에서 이어받아 다음 단계의 생각을 펴는 것이다. "말이 많은 데에 허물이 없지 않고, 제 입술을 조심하는 이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10, 19). 위에서 언급한 '수 잠언' 및 '알파벳 노래' 와 함께 "악인앞에서 흔들리는 의인은 흐려진 샘물이요, 못쓰게 된 우물이다" (25, 26)와 같은 직유(直喩)와, "사랑 어린 푸성귀 먹을 거리가 미움 섞인 살찐 쇠고기보다 낫다" (15,17)와 같은 비교도 이용된다.
잠언은 내용까지 고려하여 서술과 경고로 구분할 수도 있다. "주님의 눈은 어디에나 있어 악인도 선인도 살피신다" (15, 3)와 같은 격언은 체험으로 얻은 사실을 서술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나름대로 생각을 계속하여 실천적 결론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잠언들도 근본적으로 모두 이 유형에 속한다. 반대로 "우둔한 사람 앞에서 떠나가라, 너는 예지의 입술을 알지 못하였으니"(14, 7)와 같은 경고 잠언은 직접적인 명령과 함께 그 근거를 대는 것이다. 물론 이 명령은 법적인 계명이 아니라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권고이다.
두 줄씩 두 줄씩 한 쌍을 이루거나 그 이상의 경우도 없지 않지만(24, 19-20 ; 23, 6-8), 잠언들은 원칙적으로 두 줄이 한 쌍을 이루면서 서로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특히 첫째 부분(1, 8-9, 18)에서는 주로 장문이 쓰임을 볼 수 있다(주정꾼의 모습을 그리는 23, 29-35처럼 독립된 시도 참조). 단문과 장문 잠언의 시대적 선후 관계는 형식만 보아서는 판단할 수 없다. 단순히 장문에서 단문으로 축약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단문의 잠언 못지않게 장문의 교훈도, 특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긴 역사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그러한 본보기를 따랐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단문과 장문은 지혜 문학의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잠언의 전형적인 형태는 오랫동안 축척된 체험을 간략하게 두 줄로 표현해 낸 단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와 저술 시기〕 잠언의 저자로 가장 먼저 대두되는 인물은 책 첫머리와 다른 구절(10, 1 ; 25, 1)에 나오는 솔로몬이다. 사실 솔로몬은 전통적으로 잠언만이 아니라 코헬렛과 아가와 지혜서까지 저술한 저자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이 네 책은 욥기와 시편 뒤에 연이어 배치된다. 사실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르면 솔로몬은 지혜의 화신과 같은 인물이었다(1열왕 3, 3-14. 16-18 ; 5, 9-14 ;10, 1-9. 23 ; 집회 47, 14-17).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에서는 이 임금을 지혜의 본격적 출발점으로 여겨 후대의 지혜 문학까지 그의 이름으로 저작 · 수집 · 편찬하였다. 표제에 언급된 솔로몬의 이름(1, 1 ; 10, 1 ; 25, 1)은 이전통에 따라 후에 편집자가 붙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율법을 모세와, 시편을 다윗과 연계하는 것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재 잠언에 들어 있는 격언 가운데 솔로몬이 직접 지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외국인들을 직접 거명하는 구절(30, 1 : 31, 1), 그리고 외국 지혜 문학서를 이용하는 구절(22, 17-23, 14) 만 보더라도, 잠언이라는 책이 여러 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잠언의 저자를 구체적으로 찾는 데 단서를 제공하는 구절이 있다. "이 역시 솔로몬의 잠언으로서 유다의 임금 히즈키야의 사람들이 수집한 것들이다" (25, 1). 여기서 사람들은 당시의 활발한 국제 교류에 따라 직접 외국에 가거나 그곳의 지혜 문학서들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던 이들이다. 이들이 임금이나 나라의 정책에 따라 국내외의 잠언을 모았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만들기도 하였을 것이다. 잠언 본문에는 또 "현인들"이 자주 등장한다(1, 6 ; 22, 17 ; 24, 23). 이들은 서기관이거나 임금 및 정부의 고문이었을 수도 있고, 고등 교육 기관의 교사였을 수도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교육 제도에 관하여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식 교육 기관이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어떤 형태로든 학교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집회 51, 23 참조). 이러한 교육 기관 중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만이 아니라, 상류층의 자제들을 여러 목적으로 양성하는 곳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 고등 교육 기관에서 가르치던 '현인들' 이 잠언을 만들고 수집하는 데에 일정 역할을 하였을 수 있다. 사실 잠언은 전체적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창녀를 경계시키는 내용 등을 고려할 때에, 1장 4절이 밝히는 것처럼 1차적으로 '젊은이들' 이 주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 잠언은 또한 그 성격상 개인들이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 전체가 장구한 경험을 농축하여 공동으로 지어낼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다듬어진 잠언들도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외국까지 포함한 여러 곳과 많은 사람들에게서 유래하는 잠언들을,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세 정신적 지주 가운데 하나였던 '현인들' 이(예레 18, 18 참조) 수집하고 정리하고 때로는 직접 만들어 편찬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가 다양함은 저술 시기의 폭이 넓음을, 저자가 불분명함은 저술 시기가 명확하지 않음을 뜻한다. 잠언은 많은 경우 민족 또는 인간 공동의 오랫동안의 경험이 축적된 것이기에, 그것이 최종적으로 꼴을 갖추거나 글로 쓰이기 시작한 때를 정확히 지적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잠언은 역사와 관련 없이 삶의 공통된 면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그 생성 시기를 잡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잠언의 저술과 편집 시대가 추정되기는 하지만, 가설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다른 한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양대 축으로 하는 고대 근동은 옛날부터 지혜에 대하여 큰 관심을 기울였다(창세 41, 8 : 1열왕 5, 10 : 이사 19, 11. 12 : 47, 10 : 지혜 17, 7 : 예레 50, 35 : 51, 57 ; 다니 1, 20 ; 2, 24 ; 사도7, 22 등).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이스라엘에서도 일찍부터, 아마도 왕정 이전의 씨족 사회에서부터, 때로는 복잡하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인생 길에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 주는 지혜와 그러한 지혜의 결정체인 잠언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솔로몬 치하에서 문화가 꽃을 피울 때 지혜 문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수 있다. 그 뒤로도 왕실은 지혜 문학의 한 중심지로 활동을 계속한다(25, 1). 이런 오랜 노력의 결과가 기원전 6세기 유배 이후 시대에 잠언이라는 책의 형태로 정착되었다고 여겨진다.
〔목적과 신학〕 잠언을 짓고 또 기존의 잠언이나 잠언 집들을 수집하고 편찬한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가르쳐 올바른 사람으로 키우려는 데에 있다(1, 2-3). 여기에서 '젊은이들' 을 특정 연령층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인생을 가르치는 것이며, 인생 교육은 나이와 관계없다. 지혜 교육의 대상은 1차적으로 '젊은이들' 이지만, 2차적으로는 인생 길을 시작하는 어린이들과 인생 길을 걷고 있는 어른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올바른 사람은 단순히 도덕적 인간을 일컫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 관계를 슬기롭게꾸려 나가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사람을 말한다. 지혜는 '삶의 예술' 을, 잘사는 법을 가르친다. 여기에서 '잘산다는 것' 은 사회적 · 경제적 · 종교적 의미를 내포한다. 지혜는 곧 잘살게 해주는 바탕이며 방법이다. 지혜가 있고 없음에 따라 인간이 현세에서 바라는 것들도 결정된
다. "그(지혜)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왼손에는 부와 영광이 있도다"(3, 16). 그래서 지혜는 이 세상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지다(3, 13-18 ; 8, 11. 19 ; 16, 16). 이러한 지혜의 귀중함과 고귀함은 그것이 의인화되기에 이른다(1, 20-33 ; 9, 1-6 등). 이 의인화는 본래 지혜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문학적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혜는 하느님의 세상 창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존재, 모든 피조물의 맏이로 기려지게 된다(8, 22-31).
잠언의 지혜에 관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현세적 응보사상에 근거한다. 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면 그에따른 상을 받고, 반대로 잘못하면 그에 따른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적 지혜관과 현세적 응보사상에는 욥기나 코헬렛과 달리 일종의 낙관론이 깔려있다. 세상 만사가 정해진 대로 바르게 진행되고, 인간은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지혜로 그것들의 원칙과 법칙을 파악하여 자기가 원하는 삶의 결실을 맺어 가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만물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고 인간의 지혜가 만사를 파악하고 모든 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풀어 갈 수 있다고 여길 정도의 맹목적인 낙관주의는 아니다.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손에 달려 있음도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 속에 많은 계획들이 있어도, 오로지 주님의 뜻만이 이루 어진다"(19, 21 ; 16, 1-4. 9. 33 ; 19, 14. 23 ; 20, 24 ;21, 30). 그들은 결국 응보 사상도 기계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곧 '올바르고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부(富), 악하고 우둔한 사람에게는 빈곤 이라는 등식이 항상 성립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부가 반드시 인간의 선과 지혜, 또 그에 따라 하느님이 내리시는 상이나 복의 표징은 아니다. 부는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할 수도 있고, 지혜나 선이 늘 부를 가져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28, 6. 11. 22). 이러한 사실은 욥기와 코헬렛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시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도 지혜는 종교와 무관하게 추구되었다. 삶의 종교적인 면은 사제들과 예언자들의 몫으로 간주된다. 예컨대 "사람 마음속의 근심은 그를 짓누르고, 좋은 말 한마디는 그를 기쁘게 한다"(12, 25)처럼, 현인들은 신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 삶의 한 면을 고찰하고,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진리를 밝히려고 애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개방적으로 외국의 지혜 문학까지, 때로는 저자의 이름까지 직접 밝히면서 그대로 수용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배타성과 철저성은 믿음과 관련 없는 삶의 부분을 남겨 놓을 수가 없었다. 지혜 역시 신앙 속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창조주로서 세상 만사를 주재하시는 하느님 자신이 바로 지혜의 원천이심을 천명하게 된다. 이러한 믿음에 따라 잠언의 최종 편집자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 곧 올바른 신앙이야말로 모든 지혜의 근원임을 자신의 책 머리에서 명시한다(1, 8). 신앙이 구약성서가 말하는 지혜의 바탕이고, 시작이며 마침인 것이다(2,5 ; 9, 10 ; 15, 33 ; 욥기 28, 28 ; 시편 111, 10 ; 집회 1,14). 이렇게 하여 율법과 예언과 지혜는(예레 18, 18) 저마다 자기의 영역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선택된 백성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지침이 된다. (→ 구약성서 ; 성문서 ; 지혜 문학)
※ 참고문헌 G. von Rad, Weisheit in Israel, Neukirchen-Vluyn,1970(허혁 역, 《구약성서 신학》 3권, 분도출판사, 1980)/ O. Plöger,Spriiche Salomos. Biblischer Kommentar AT XVII, Neukirchen-Vluyn,1984/ G. Ravasi, Proverbi, Nuovo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Milano,1988, pp. 1247~1258/ J.L. Crenshaw, 《ABD》, pp. 513~520. 〔任承弼〕
잠언
箴言
〔히〕מָשַׁל · 〔그〕Παροιμίες · 〔라〕Liber Proverbiorum · 〔영〕The Book of Proverbs
글자 크기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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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장 1절에는 "솔로몬의 잠언"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솔로몬의 재판>, 니콜라스 포우신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