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65-7소재. 1947년 7월 15일 약현(藥峴, 현 중림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 명칭은 잠실리(蠶室里)였으나, 1975년경 현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잠원동, 반포1동, 반포3동. 〔교 세〕 1969년 579명, 1975년 747명, 1980년 875명, 1985년 4,693명, 1990년 7,665명, 1995년 3,470명, 2000년 11,613명. 〔역대 신부〕 초대 이우철(李宇哲) 시몬(1947.7~1980.5), 2대 탁현수(卓鉉洙) 아우구스티노(1980. 5~1982. 9), 3대 이기헌(李基憲) 베드로(1982. 9~1987. 9), 4대 장대익(張大翼) 루도비코(1987. 9~1994.9), 5대 김수창(金壽昌) 야고보(1994. 9~1999. 10) , 6대 양홍(楊弘) 에우세비오(1999. 10~현재).
1888년에 설립된 갓등이(현 왕림) 본당의 2대 주임인 알릭스(J. Alix, 韓若瑟) 신부는 당시 광주군 언주면에 있던 숫골 공소(현 강남구 청담동)를 방문한 내용을 1894년 3월 23일자로 교구에 보고하면서, 숫골을 박해 이전부터 있던 마을로 파악하였다. 이 숫골 공소의 존재를 통해 지금의 서초 · 강남 지역 일대에 일찌기 병인박해 이전부터 신자들이 거주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890년대 중반에 서초 · 강남 지역 일대는 갓등이 본당에서 약현 본당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해방 당시에 이 지역의 공소는 잠실리 · 양재리 · 서초리 · 청담리 · 언구비 공소 등 다섯 곳이었다. 1947년 7월 15일 당시 약현 본당 보좌신부이던 이우철 신부는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 13번지 5호(현 서초구 잠원동 신동초등학교 옆)에 고아들을 보육하기 위해 성심원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성심원 내에 소성당을 건립함으로써 이 지역의 공소 신자들은 주일 미사에 참례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성당은 비록 교구 공문에 의해 정식으로 설립된 본당이 아니었으나, 본당의 성격을 갖게 되자 교구는 본당으로 인정하였다. 당시 잠실리 본당의 관할 구역은 지금의 잠원동에서부터 사당동, 방배동, 반포동, 서초동, 양재동, 역삼동, 논현동, 신사동, 압구정동, 청담동, 개포동 등으로 서초 · 강남 지역의 신앙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잠실리 본당과 성심원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휴전 이후 미군과 가톨릭 구제회(N.C.W.C)등의 원조로 432평의 목조 성당(1954.7 목조 2층으로 595평 규모의 원사(1955.5)를 준공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 강남 지역 개발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면서 신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본당 분리를 준비하기 위해 이우철 신부는 말죽거리 27의 2번지와 21의 3번지, 그리고 서초리 산 17의 1번지 등 모두 6백 평의 성당 부지를 매입해 두었다. 1964년 새 본당 건립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였고, 양재리 공소의 신자들도 자신들의 지역에 본당을 유치하고자 기금을 모으고 교구청에 청원을 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전개하였다. 이에 1965년 7월 20일 양재동 본당이 신설되어 과중한 지역 사목의 부담을 안고 있었던 잠실리 본당은 잠원동을 중심으로 신사동, 반포동, 서초동 일부 지역만을 관할하게 됨으로써 보다 내실화된 사목을 펴나갈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서초 · 강남 지역에 대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잠실리 본당의 관할 구역인 잠원동 일대에도 커다란 변화가 초래되었다. 잠원동 일대가 아파트 설립 지구로 지정되고, 이 지역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이전해 옴에따라 신자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잠실리 본당과 성심원이 있던 잠원동 부지가 1976년 10월 1일 서울시 도시 계획에 의하여 아파트 단지로 책정됨으로써 본당의 신축 문제를 시급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서울대교구의 도움으로 4백 평의 성당 신축 부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성당의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 3월 2일에 개최된 사목 협의회는 '성당 신축 추진 위원회' 를 발족하기로 하였으나, 곧바로 발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본당이 해체될 위기를 맞게 되었다. 즉 3월 14일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 및 관리국장, 사무국장 신부 등이 사목 방문을 통해 잠원동 본당의 해체 문제를 제기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사목 위원들은 잠원동 본당의 역사와 지역에서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이 계획은 취소되었다.
1980년 5월 13일 2대 주임으로 탁현수 신부가 부임하면서 잠원동 본당과 성심원은 분리되었으며, 본당 사목 체제도 서서히 정비되어 갔다. 탁현수 신부는 부임 직후 가장 먼저 미사 대수를 확대함으로써, 전례 및 신앙생활의 토대를 구축하기 시작하였으며, 교리 및 성경 공부의 기회를 확대하였다. 그리고 전례 봉사와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기존의 각 단체에 대해 신앙 단체로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체시킨 후 새롭게 등록받는 조치를 취하였다. 1982년도에 등록된 단체로는 성부 안나회, 성모회, 근심하는 이의 위로 쁘레시디움,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 하늘의 어머니 쁘레시디움, 주일학교 교사회,복사회, 대학생회, 그리고 전례 봉사단 등이었다. 또한 증가된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성당 확장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본당에 교적을 둔 교우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1981년 9월에 이르러 본당 관할 구역을 잠원동 전 지역, 신사동 일부, 주공 3단지, 그리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재정비하였다.
3대 주임 이기헌 신부는 성전 이전 및 신축을 사목 협의회 개편을 통해 가시화하기로 하고, 1983년 4월 사목 협의회를 개편하였다. 1983년 8월 28일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신축 성전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성당이 신축되기 전까지 신동초등학교 옆공터에 건평 1백 평 규모의 가건물을 지어 임시 성당으로 삼았다. 1984년 4월 19일 성당을 신축 성당 지하실로 옮겼으며, 5월 25일 상량식을 거행한 후, 11월 3일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기헌 신부는 성당 신축과 병행해서 신심 단체 확대 및 활성화에 주력하여 정의의 거울 쁘레시디움, 순교자들의 모후 꾸리아, 연령회, M.E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신앙의 날제정, 신자 재교육 실시, 구역 미사 집전, 가정 방문 등으로 본당 사목의 기틀을 다졌으며, 성가 경연 대회와 함께 파티마 축제를 열어 본당 신자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84년 여름에 본당 정기 간행물인 <파티마>를 창간하였으며, 1986년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여교우 신앙 강좌를 개최하였다. 한편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1986년 7월 13일 현 교육관 부지 1백 61평을 매입하였다.
4대 주임 장대익 신부는 1987년 12월 8일 본당 내에 '가톨릭 문고 를 열어 교우들에게 도서 대여를 시작하였으며, 1988년 4월 27일 성당 냉난방 설비 공사를 시작하여 8월 4일 완공함으로써 성당 환경을 개선하였다. 또한 성전 건립과 각종 신심 단체의 활성화로 본당의 기틀이 다져지자 주일학교 내실화에 착수하여 교육관 신축과주일학교 책걸상을 새로 장만하였다. 1988년에는 모든 성인의 모후 남성 꾸리아, 찬송하올 어머니 꾸리아, 부부로 구성된 천주의 성모 쁘레시디움이 결성되었다. 이후 1991년 6월 23일 청년 레지오 승리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잠원동 청년 연합회가 발족되었다. 1989년 새로 개편된 사목 협의회의 사목회 교육 분과위원회는 1989년 6월 18일 주일 미사 때부터 미사 시작 10분 전에 '5분 교리' 를 실시하기로 하여 교우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92년 11월 15일 교육관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후 1994년 5월 30일 완공하였다.
5대 주임 김수창 신부는 부임 직후 가정 방문과 더불어 본당 현황을 파악하고 본당 운영의 합리화 작업을 추진하였다. 1995년 7월 30일 잠원동 성당 50년사 편찬위 원회를 출범시켜 본당사 편찬을 위해 노력하였다. 1996년 5월 15일 성당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31일 외부 조경 공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성당 보수 공사를 마친 후 잠원동 본당은 본격적으로 성서의 생활화 운동과 사회 복지 활동의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북한 형제 돕기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성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를 창립하여 이를 실천해 나갔다.1998년 3월 1일 성당 보수 공사 완료를 축하하는 봉헌 미사를 거행하였으며, 1999년 3월 30일 본당 외부 조경 공사를 완료하였다. 현재 잠원동 본당은 1999년 10월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양홍 신부의 사목 아래 본당 공동체 활성화에 진력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이우철)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잠원동 본당 오십년사》, 천주교 잠원동 교회 , 1997. 〔白秉根〕
잠원동 본당
蠶院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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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