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벌

將臺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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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장대벌 순교자 현양비(왼쪽) . 수영 장대벌에서는 동래 지역 천주교인들이 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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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장대벌 순교자 현양비(왼쪽) . 수영 장대벌에서는 동래 지역 천주교인들이 주로 처형되었다.

장대벌은 장대가 있는 벌판이라는 뜻. 장대는 지휘관이 올라가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돌로 쌓은 대(臺)를 말한다. 조선 시대 군영의 연병장 정면에 장대가 있었고, 연병장에서는 군사들의 훈련과 열병이 있었다. 또한 장대벌에서는 군문 효수형을 선고받은 중죄인들의 처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천주교 박해기에는 많은 신자들이 각 군영의 장대벌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는데, 현재 울산 장대벌과 수영 장대벌이 순교 성지로 조성되어 있다.
① 울산 장대벌 : 경상남도 울산시 중구 남외동에 위치해 있는 울산 장대벌은 조선 시대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가 있었던 곳이다. 이 곳에서 경신박해(庚申迫害)와 병인박해(丙寅迫害) 당시 천주교인들의 처형이 이루어졌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오치문(吳致文)이 백지사(白紙死)로 순교하였다. 병인박해가 계속되던 1868년에는 언양 대재〔竹嶺〕 교우촌에 살던 허인백(許仁伯, , 야고보), 김종륜(金宗倫, 루가),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등이 체포되어 울산 장대벌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를 당하였다. 이들 세 명의 시신은 허인백의 부인에 의해 거두어져 인근에 매장되었다가 이후 수습되어 경주 산내면 진목정 교우촌의 안산에 합장되었다. 1932년 허인백과김종륜의 손자는 그들의 유해를 다시 대구시 월배 천주교 묘지에 이장하였다. 1973년에는 순교자들의 유해가 병인박해 순교 기념 성당으로 건립된 신천동 복자 성당구내로 다시 옮겨졌다. 순교 터인 울산 장대벌은 1977년 교회에 매입되어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지는 등 사적지 보존 작업이 진행되었다.
② 수영 장대벌 : 조선 후기 경상 좌수영에 있었던 수영 장대벌에서는 병인박해 당시 동래 지역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다. 당시 동래 지역 전교회장이었던 이정식(李廷植, 요한)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 이관복(李寬福, 프란치스코) · 박조이(朴召史, 마리아) 부부, 조카 이삼근(李三根, 베드로) 등 일가족 4명과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 차장득(車長得, 프란치스코), 이월주(李月柱, 야고보), 옥조이(玉召史, 바르바라), 김선달(알렉시오 또는 베드로), 옥 바르바라 등은 1868년 8월 처형되었다.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 이정식의 가족 4명의 시신은 부산 가르멜 수녀원 뒷산에 묻혔다가 1977년 9월 한국 순교자 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양재현, 차장득, 이월주, 옥조이의 묘소는 찾지 못하여 기념비만을 건립하였다. 1987년 6월 광안(廣安) 본당 신자들의 사적지 조성 헌금으로 순교 터를 확보하여 이듬해 7월 부산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가 성역화에 착수하였다. 1988년 9월 순교 기념비 제막식 및 현양 미사가 교구장 이갑수(李甲秀, 가브리엘) 주교의 주례로 이루어졌다.
※ 참고문헌  마백락, 《경상도 교회와 순교자들》, 대건출판사, 1989/《신앙전래이백년사ㅡ彥陽天主教會史》, 彥陽天主敎會, 1993/ 차기진,<경상도 일대의 성지와 사적지>,《사목》 252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2000.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