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유 (?~1801)

張德裕

글자 크기
10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그는 말총으로 갓을 만드는 일을 하며 남대문 밖 이문동(里門洞)에서 살았다. 1796년에 김종교(金宗敎, 프란치스코)에게 교리를 배워 영세하였고 체포될 때까지 신자들과 함께 밤낮으로 교리를 강습하고 기도를 드리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는 함께 교리를 강습했던 누각동(樓閣洞)에 사는 김국빈(金國彬)과 서로 친하게 지냈으며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과 함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약속하였다.
그는 1800년에 대묘동(大廟洞)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주로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이 도망간 곳에 관한 심문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신자는 김국빈 외에는 별로 없고 황사영의 거처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런 다음 이미 주문모 신부, 정약종과 함께 죽고 살기를 같이 하자고 약속하였으니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랄 뿐이라고 진술하였다.
그 후 포도청에서 형조로 옮겨져 심문을 받았을 때 그는 1차 심문에서 갑자기 마음이 약해져 예수를 욕하며 배교하고 말았다. 아울러 이때 그는 세례는 했지만 세례명은 처음부터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2차 심문에서는 정신을 가다듬어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다. 즉 앞서 1차 심문 때 예수를 욕되게 비방하여 천주께 죄를 얻은 데 대해 후회 막심하다며 간절히 통회하였다. 오로지 빨리 순교하기만을 소망하던 그는 1802년 1월 29일 이경도(李景陶, 가롤로), 최설애(崔雪愛)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 신유박해)

※ 참고문헌  조광 역주, 《사학징의》 Ⅰ,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pp. 232~236/ <달레 교회사》 상,p. 601/ 車基真, <서소문 밖>, 《한국가톨릭대사전》 7,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徐鍾泰〕